코로나 후 문 닫은 목욕탕 앞에서 그는 왜 막걸리를 땄나
[김성호 평론가]
"처음에는 에세이 필름으로 담고 싶지 않았어요. 너무나 사적 다큐이고 싶지 않았는데... 근데 이렇게 철저히 몸부림치다가 1년 뒤에서야 겨우 제 내레이션을 붙이고 '아, 이건 에세이 필름이구나'하고 인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큐멘터리 <대기실>은 지하철역에서 달리는 남자의 뒤를 쫓으며 시작한다. 어딘가로 내달리는 사내의 뒤를 카메라가 쫓아간다. 그가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는 채로 영화는 다음 이야기를 꺼낸다. 이미 끝나버린 지 제법 된 공간의 이야기다. 그 공간이 아직은 쓰임을 다 하고 있을 때, 윤병현 감독은 그곳을 즐겨 이용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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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기실 스틸컷 |
| ⓒ 반짝다큐페스티발 |
제4회 반짝다큐페스티발(반다페) 섹션8에서 소개된 <대기실>은 윤병현 감독의 30분짜리 단편이다. 지난해 김현원, 홍유라 감독과 합작한 <경계의 고도>로 반다페를 처음 밟았던 그다. 사라지는 동네의 풍경을 담은 전작으로부터 저 자신의 추억이 깃든 사라진 목욕탕으로 제 관심을 옮겨온 윤병현 감독의 작업을 또 한 번 반다페가 양팔 벌려 맞아들였다.
작품은 에세이 필름, 그러니까 만드는 이의 목소리가 그대로 반영된 다큐의 분과다. 실제로 영화 안에 감독의 목소리가 담겼다. 그 의식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는 지하철역에서 목욕탕이었던 공간으로, 목욕탕과 얽힌 제 옛 경험과 목욕탕이며 목욕과 관련한 옛이야기까지 오르내린다.
공간을 찍은 영상과 이미지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턱없이 부족하다. 같은 화면이 수차례 등장하고 동일한 이미지가 오래 스크린 위에 머무르는 것도 피할 수 없다. 내레이션으로써 보여주는 것 이상의, 때로는 초월하는 이야기를 풀어내 비약하고 연결 지으려 든다.
"사람이 뒤를 돌 때, 과거의 시간이 아니라 미래를 보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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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기실 스틸컷 |
| ⓒ 반짝다큐페스티발 |
명확한 발견이 있는 영화가 아니다. 관객에게 명징한 방식으로 통하려 드는 작품도 아니다. 저 자신의 이야기를 제 목소리로써 풀어내는 에세이 필름의 외피를 둘렀고,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모두 부족한 이미지를 작가의 떠다니는 의식 위에 펼쳐 놓는 실험적 시도를 감행한다. 통상적인 다큐가 사실을 기록해 관객에게 알리려는 목적성을 전제한다면, 이 영화는 소통의 감도를 높이는 데는 거의 수고를 들이지 않는단 점에서 차별화된다.
소통보다는 표현에 중점을 두고 있으나, 그 표현조차 서사와 감각, 양과 질 모두에서 얕고 옅다. 같은 공간에서 그마저도 다각적이지 않은 시선으로 촬영한 영상과 이미지가 반복되며 지속되는 가운데, 의도는 대부분 가라앉아 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서사가 흡인력을 발하지 못하는 영화가 마땅히 고민해야 하는 승부의 지점 또한 돌출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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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기실 스틸컷 |
| ⓒ 반짝다큐페스티발 |
결국 에세이 필름이 되었을 뿐, 얼마든지 다른 영화도 될 수 있었다고 말하는 <대기실>은 영화의 경계가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는 부차적인 문제라는 양 저만의 자리를 구하려 든다. 설사 그것이 별 유효하지 않은 결과와 닿는대도 감당할 준비는 되어 있다는 듯. 그 자세엔 썩 괜찮은 구석이 있다.
망한 대중목욕탕은 감독의 방 베란다에서 보일 만큼 가까운 곳이었다고 한다. 영화는 직접 그 장소에서 찍은 건물 외벽을 한 장면으로 품었다. 어렸을 적부터 가족들과 자주 가던 그 목욕탕의 기억은 이미지며 영상이 아닌 오로지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 그 기억을 기록하는 건 영화가 될 수 있을까. 보통은 아니라고 하겠으나 <대기실>을 보자면 아주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기억까지 망하지는 않는다는 영화적 실험은 질적으로는 몰라도 물리적으로는 성공한 듯 보인다. 적어도 영화제의 문턱을 넘어 관객 앞에 저를 드러내는 데는 성공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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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짝다큐페스티발 포스터 |
| ⓒ 반짝다큐페스티발 |
다만 아쉬운 점도 많다. 작가의 시선과 뻗치는 사고의 가지가 영화의 이미지며 소리와 좀처럼 맞물리지 않는다. 무엇을 위해, 어떤 효과를 기대하며 작품을 이와 같이 만들었는지 설득해 내려는 영화적 시도 또한 없거나 유효하지 못하다. 만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진 듯한 영화가 단출한 이미지와 과잉된 목표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할 때 괴로운 것은 감독이 아니라 관객이다.
물론 비약하는 사고가 지적 자극을 유발하는 대목이 없지 않다. 가느다란 끈으로 목욕탕으로부터 개인적 경험과 역사, 섹슈얼리티와 권력까지를 어찌저찌 꿰어냈단 건 감행하기 쉽지 않은 시도이자 성과일 수 있겠다. 무엇을 위한 꿰어냄인지 설득하지 못한다 해도 에세이 필름의 특성상 역시 스리슬쩍 넘어갈 수는 있을 테다. 그것으로 되었다 싶은 관객은 웃을 것이고 모자라다 한 관객 또한 쓰긴 해도 웃음을 지을 것이다. 다른 공간도 아니고 그저 '대기실'일 뿐이지 않은가.
섹션8에서 엿보게 되는 반다페의 지향이 무엇일까. 무엇을 위한 실험인지가 명확하지 않아도 실험적 시도 그 자체만으로 반겨 마땅한 영상이 존재할까. 영화와 다큐와 에세이와 창작 사이에서 울타리 안과 밖은 어떻게 구분되어야 하는가. 그와 같은 고민조차 무용한 것일까. 실험영화의 자리가 여전히 있어야 한다는 의지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모든 실험이 각자의 목표를 두고서 성공을 꿈꾸기를 바라는 내게는 다소 아쉬움이 남지만 말이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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