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생태감수성' 키우기... 딱 3주가 필요했다

김성재 2026. 4. 3.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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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길새길중학교 3학년, 생태감수성 학교숲 모니터링 현장 르포 2

[김성재 기자]

학교 밖은 달랐다

3월 19일, 두 번째 수업. 교내에서 학교 밖으로 반경이 넓어졌다. 교실에서 교내로, 교내에서 학교 주변으로, 학교 주변에서 지역으로. 시야가, 반경이 넓어질 때마다 아이들이 만나는 나무도 달라진다.

학교 주변 공원과 가로수 구간으로 나서자 풍경이 달라졌다. 바닥에는 지난 겨울을 버텨낸 낙엽들이 쌓여 있었다. 침엽수들은 푸르렀고, 상록수 잎에는 윤기가 돌았다. 수피 틈에 이끼가 자리 잡고 있었고, 뿌리 주변에는 이른 봄풀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학교 안의 얄상한 나무들과는 달랐다. 오랫동안 그곳을 지키고 있던 나무들이다.

나무를 관찰하다 보니 나무 주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바닥에 쓰레기들이 있었다. 아이들이 먼저 발견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다. 나무를 들여다보기 시작하자 그 주변을 보기 시작했다. 생태감수성이라는 말이 뜻하는 바가 바로 이런 것일 수 있다. 한 생명을 주의 깊게 바라보는 순간, 그 생명을 둘러싼 주변이 시야에 들어온다.

가로수를 조사하러 간 팀의 한 학생은 길에서 마주친 동네 어른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눴다. 조사지를 든 채로.

"학교에서 매일 수업만 하다가 야외에 나가서 나무들을 조사해보니 너무 즐거웠다." - 소감지 중 손영수 (3학년 1반)
▲ 역곡천 역곡천에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 김성재
역곡천, 그 버드나무

3월 26일, 세 번째 수업은 역곡천이었다. 학교에서 꽤 먼 거리였다. 그만큼 아이들은 신이 났다. 평소엔 그냥 지나쳤을 길이었지만, 이날은 달랐다. 역곡천에 도착하자 아이들의 시선이 한쪽으로 쏠렸다. 강 건너편에 버드나무가 서 있었다. 잎이 길게 늘어지고, 줄기는 굵었다. 학교 화단의 얄상한 나무들과 같은 '나무'라고 부르기 어색할 만큼 달랐다.

"역곡천을 가까이 가보니 옆에 있는 나무가 가장 인상 깊었다. 그 나무는 사람 키의 10배도 돼 보였고, 긴 나무에 잎이 촉촉촉 했다." - 소감지 중 김민찬 (3학년 1반)

"버드나무, 3/26일 역곡천에서 만났다. 크기만 10m 정도 되는 교목이었고, 그 둘레도 다른 나무의 2–3배는 돼 보였다. 잎은 늘어져 있었으며 매우 길고 컸다. 아직 꽃은 피지 않았지만 그 스케일이 너무 커서 감탄했다." - 소감지 중 황승준 (3학년 2반)

수업 후 걷은 소감지에서 버드나무는 1·2·3반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많이 언급된 나무였다. 학생들은 공통적으로 '생각보다 크다'고 했다. 역곡천은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다. 이 아이들이 평소에도 지나쳤을 길이다. 이름도 몰랐고, 키가 얼마인지도 몰랐다. 이날 처음으로 올려다봤다. 버드나무는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다. 아이들의 시선이 바뀐 것이다.
"역곡천에서 잉어도 보고 개도 보고 비둘기와 청둥오리가 공생하는 것도 보고, 흐르는 하천과 숲의 감각다리도 걸어서 좋았다." - 소감지 중 이하나 (3학년 3반)

역곡천 주변을 걷던 중 한 아이가 발걸음을 멈췄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 자리였다. 작은 야생화 무리 앞이었다. 강사는 그 순간을 기억했다.
"무심코 지나칠 법한 작은 야생화 무리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정말 예쁘다'며 몰입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습니다. 학생들 내면에 이미 존재하던 생태감수성을 틔우는 소중한 장면이었습니다."
▲ 역곡천 1 학생들이 역곡천을 건너고 있다.
ⓒ 김서앶
세 번의 수업을 거치며 아이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비교가 나왔다. 같은 나무인데,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달랐다. 이 비교는 교사가 유도한 것이 아니다. 세 공간을 직접 걸으며 나무를 재고 관찰한 아이들이 스스로 도달한 인식이다.
"학교에는 비교적 작고 비슷한 종류의 나무가 많았고, 공원에는 큰 나무가 많았고, 역곡천에는 다양한 나무들이 있었는데 역곡천이 가장 인상 깊었다." - 소감지 중 고은결 (3학년 1반)

"역곡천에서는 자연이 주가 된 느낌이어서 '진짜'라고 표현하고 싶었다." - 소감지 중 김서준 (3학년 2반)

한 학생이 소감지에 쓴 '진짜'라는 단어가 눈에 걸렸다. 학교 화단의 나무는 '가짜'가 아니다. 하지만 공사로 뒤엎어진 땅 위에 심어진 나무와, 하천 옆에서 오래 자리를 잡고 자란 나무 사이의 차이를 이 학생은 감각적으로 구분해낸 것이다. 토양과 시간과 생태계의 맥락이 나무를 다르게 만든다는 것을, 용어는 몰라도 몸으로 이해한 셈이다.

강사는 세 번의 수업을 거치며 아이들에게서 한 가지 변화를 봤다. "첫 수업으로 교내 나무를 조사할 때만 해도 학생들이 결과치를 빨리 내려고 시도하였으나 두 번째 세 번째 수업이 반복되면서 제법 진지한 관찰자의 태도를 보이는 학생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숫자를 채우는 것에서 나무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과제 수행에서 관찰로. 그 전환이 3주 사이에 일어났다.

"나무의 키와 수관폭, 나뭇둘레를 측정해 보면서 나무와 친해진 것 같아서 즐거웠다." - 소감지 중 송시은 (3학년 2반)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

수업이 끝나고 소감지를 걷었다. 손으로 눌러쓴 문장들을 읽다가 몇 번 멈췄다.

"수업 전에는 자연환경을 풍경 전체로 봤다면, 수업을 들은 후에는 나무가 하나하나 보이게 됐다." - 소감지 중 공소연 (3학년 1반)
"수업을 듣고 나서 나무가 눈에 잘 띄게 됐다. 나무의 기둥을 보고 나무가 아프지 않은지, 나무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 - 소감지 중 송시은 (3학년 2반)

'풍경 전체'에서 '하나하나'로. '보이지 않던 것'에서 '눈에 띄는 것'으로. 공소연 학생과 송시은 학생의 말은 같은 것을 가리킨다. 이름을 알고, 키를 재고, 상태를 확인한 뒤에는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된다. 관계가 생긴 것이다. 이것이 세 번의 수업이 남긴 것이다.

이 수업을 위해 협력한 이승훈 <부천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 팀장은 생태감수성 교육을 더 긴 흐름의 시작점으로 본다. 그는 "생태감수성 교육이 학교 안팎의 자연환경과 생물다양성을 탐구하고 이를 발판으로 삼아, 에너지전환이나 세계시민교육과 연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역곡천 버드나무는 오늘도, 앞으로도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학생들이 내일도 그 나무를 알아보고 관심을 가질지는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3주 동안, 이 아이들은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나무를 올려다봤고, 키를 쟀고, 이름을 지어줬다.

이번 수업을 담당했던 옥길새길중학교 환경 교과 선생님은 수업 이후 학교 공간을 대하는 아이들의 태도가 조금은 달라졌다고 얘기한다.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나무와 관계를 맺고 측정 및 관찰하는 활동 및 학교 안과 밖의 생태를 비교하는 활동 등을 통해 나무를 학교의 단순한 배경이 아닌 각각의 생명체로서 다시 돌아보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나무에 대한 인식이 바뀌게 된 것을 계기로 앞으로도 관련된 활동을 찾고 계속 해나가고자 합니다."

기후위기 시대에 가장 필요한 교육은 어쩌면 거창한 것이 아닐 수 있다. 매일 지나치던 나무 한 그루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것. 그 나무가 말라 있다는 걸 알아채는 것. 그 알아챔이 쌓일 때 비로소 생태 감수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해당 소감지의 내용이 기사에 반영될 수 있음을 사전에 고지하고 학생들의 의견을 수집하였습니다.

덧붙이는 글 | '생태감수성 교육'은 부천형 ESD(지속가능발전교육)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 '부천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 부천교육지원청, 공공학교, 시민사회, 부천시'가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의 일부다.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학교자율시간 도입으로 ESD를 정규 교육과정에 실질적으로 구현해야 함에 따라 부천에서는 2024년부터 ‘SDGs 실천교실’이란 타이틀로 '생태감수성, 토종씨앗, AI혁신기술, 공정무역, 윤리적소비, 세계시민교육' 등을 담아내 시범적으로 교육 현장에 적용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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