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 고백한 트럼프? 미국 없는 세계질서 시작됐다 [임상훈의 글로벌리포트]
[임상훈 기자]
|
|
| ▲ 1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렬이 워싱턴 DC 백악관 크로스홀에서 이란 전쟁 관련 대국민 연설을 하기 위해 나오고 있다. |
| ⓒ AP 연합뉴스 |
전쟁에서 진짜 승리는 상대를 얼마나 많이 파괴했느냐로만 판단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전쟁 뒤의 질서를 누가 정리하는가, 동맹을 누가 안심시키는가, 커진 비용과 위험을 누가 통제하는가에 있다. 많이 때린 나라가 반드시 이기는 것이 아니라, 때린 뒤의 세계를 자기 뜻대로 정돈할 수 있는 나라가 비로소 승자로 불릴 수 있다.
그 기준으로 보면 이번 연설은 승리의 보고서라기보다 출구를 찾는 담화에 가깝다. 트럼프는 승리를 선언했지만, 바로 그 선언의 방식 속에서 미국이 더 이상 예전처럼 세계를 움직이지 못한다는 사실도 함께 드러냈다. 이 연설이 보여준 것은 미국의 압도적 자신감이 아니라, 강한 말을 앞세워 미완의 전쟁을 먼저 봉합해야 하는 패권의 피로였다.
트럼프 연설의 첫 번째 모순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핵심 목표가 거의 달성됐다고 말하면서도 앞으로 2주에서 3주 동안 더 강한 타격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이미 이겼다고 말하는 사람의 입에서 왜 추가 폭격 계획이 먼저 나오는가, 이 질문 하나만으로도 이번 연설의 성격은 상당 부분 드러난다.
원래 승전 연설에는 최소한 세 가지가 따라야 한다. 무엇을 달성했는지 분명한 기준이 있어야 하고, 언제 어떻게 전쟁을 마무리할 것인지 시점이 제시돼야 하며, 그 뒤의 질서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설명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연설에는 그 셋이 모두 희미했고,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상대를 크게 파괴했다는 자기평가와 앞으로도 더 때리겠다는 계획뿐이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이 연설은 전황의 완결을 알리는 보고라기보다, 미완의 전황 위에 먼저 의미를 덮어씌우려는 정치적 언어로 읽힌다. 전쟁이 끝났기 때문에 승리를 선언한 것이 아니라, 승리라고 먼저 말해야만 빠져나올 명분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시장의 반응도 같은 방향을 가리켰다. 연설 직후 유가는 다시 급등했고 증시는 흔들렸다. 정치의 문장은 승리를 말했지만, 돈의 언어는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고 답한 것이다.
|
|
| ▲ 2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 인근 페타 티크바에서 이스라엘 보안군과 응급 구조대원들이 이란의 공습으로 파괴된 주거 지역을 살펴보고 있다. 이날 이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을 "석기시대로 되돌려 놓겠다"고 선언한 이후 텔아비브를 향해 미사일을 발사하며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분쇄적인 공격을 가하겠다고 위협했다. |
| ⓒ AFP 연합뉴스 |
바로 이 지점에서 미국의 문제가 드러난다. 패권국이라면 자기가 연 전쟁이 만든 항로 불안까지도 끝내 책임지고 정리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연설은 미국이 질서를 보증하는 나라가 아니라, 자신이 만든 혼란의 비용을 타국에 떠넘기는 나라처럼 보이게 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본래 전쟁을 벌이기 위한 자동 동원 장치가 아니다. 회원국 가운데 하나가 공격받았을 때 함께 방어하는 집단 방어 체제이며, 바로 그 점이 이 동맹의 법적, 정치적 출발점이다. 이 기본 성격을 먼저 놓고 보면, 이번 전쟁에서 미국이 유럽 동맹국들에 요구한 것은 나토의 원래 문법과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프랑스가 호르무즈 공격 임무는 나토의 본령이 아니라고 반박한 장면은 그래서 중요하다. 이것은 단순한 외교적 신경전이 아니라, 미국이 동맹의 성격 자체를 자기 필요에 맞게 밀어붙이고 있다는 인상을 남긴 사건이었다. 프랑스의 반응은 미국의 전쟁 참여 요청을 거부한 것이면서 동시에 나토가 무엇을 위한 기구인지 원칙을 다시 확인한 것이기도 했다.
스페인이 공역을 닫고 이탈리아가 기지 사용을 거부한 일도 같은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이 두 사례는 미국이 더 이상 동맹망을 마치 자기 지휘 체계처럼 자동 동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과거 같으면 조용히 조정됐을 문제가 이번에는 공개적 거리두기의 형태로 드러났고, 그 자체가 이미 균열의 증거가 됐다.
동맹은 원래 회원국들에 안심을 주는 장치여야 한다. 그런데 이번 전쟁에서 미국은 동맹을 함께 지켜야 할 공동 질서가 아니라 필요할 때 끌어다 쓰는 작전 하청망처럼 다뤘다. 동맹이 스스로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면, 패권은 군사력의 부족보다 먼저 신뢰의 마모에서 약해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
|
| ▲ 3월 29일(현지시간) 소셜 미디어에 공개된 이 사진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 프린스 술탄 공군기지에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이 날아들면서 미 공군의 공중조기경보통제기(AWACS)가 파괴되었다. 이날 이란의 공격으로 최소 12명의 미군 병사가 부상을 입었고 그중 2명은 중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
| ⓒ AFP 연합뉴스 |
패권은 남의 땅에 군사시설을 세울 힘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그 시설을 받아들인 나라들이 그것을 자기 안전의 일부로 믿을 때만 유지된다. 그런데 이제 그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 질서의 기반도 함께 흔들리고 있다.
중국과 파키스탄이 내놓은 평화구상에서 더 중요한 것은 그 내용의 완성도보다도, 미국이 시작한 전쟁의 사후 질서를 미국 밖의 나라들이 먼저 말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전쟁은 워싱턴이 밀어붙였는데, 평화의 언어와 중재의 형식은 베이징과 이슬라마바드 쪽에서 나오고 있다. 누가 총을 먼저 쐈는가보다 누가 전쟁 뒤의 문장을 먼저 쓰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점에서, 이것은 미국 패권의 약화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영국, 프랑스, 일본이 따로 조율에 나선 움직임도 같은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이것은 단순한 외교 일정이 아니라, 주변국들이 이제 미국이 빠진 상태, 혹은 미국만으로는 충분히 관리되지 않는 상태를 현실적인 조건으로 계산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세계는 지금 미국 없는 질서 관리의 예행연습을 조금씩 시작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이번 전쟁이 드러낸 것은 미국의 압도적 우위가 아니다. 나토의 균열, 호르무즈의 혼란, 평화 구상의 분산은 미국이 전쟁 뒤의 질서를 더 이상 독점적으로 정리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강한 타격 능력은 남아 있지만, 패권의 핵심 기능은 이미 흔들리고 있다.
이 모든 장면 뒤에는 미국 국내 정치의 한계도 놓여 있다. 트럼프는 군사적으로는 누구보다 강한 말을 쏟아냈지만, 미국 유권자들은 장기전을 감당할 의지도, 그 비용을 계속 받아들일 준비도 충분하지 않았다. 바로 그 불일치 때문에 이번 연설은 승리의 자신감이라기보다, 더 끌고 가기 어려운 전쟁 앞에서 먼저 명분을 만들고 출구를 정당화하려는 말에 가까웠다.
미국의 쇠퇴란 미국이 가난해지거나 약소국으로 전락했다는 뜻이 아니다. 미국은 아직도 압도적인 군사력과 막대한 경제력을 갖고 있다. 문제는 그 힘이 더 이상 세계를 조직하는 힘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트럼프의 4월 1일 연설은 그 사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 장면이었다. 그는 승리를 선언했지만, 실은 끝내지도 책임지지도 못하는 전쟁 앞에서 패권의 무능을 고백하고 있었다. 그 연설은 승전사가 아니라, 세계를 주도하던 미국의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스스로 실토한 담화였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진솔하게 사과한 노무현 대통령...이재명 대통령에게도 기대합니다
- '구멍 난 도로' 누가 메우는지 알면 깜짝 놀랄 겁니다
- "서북청년단이 다시 오다니요"... 제주시청 앞에 퍼진 청년의 분노
- [이충재 칼럼] 조국·한동훈, 명분이냐 실리냐
- 언론사 '좌파 낙인' 분류표 공개한 국힘, 내용 보면 기가 찹니다
- 우리 아빠 머리 잘라 줄 이발사님은 어디 없나요?
- 하얀 점퍼 입고 오세훈 마중 나온 국힘 시·구의원들... 당과 거리두기?
- 종량제봉투 제작 현장 간 김성환 "재고 등 공급 여력 충분"
- AI 잘쓰는 법? 기획서의 정의부터 바꿔라
- 엄포가 아니었다... 이란, 미국 빅테크 기업들 공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