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기 왕성한 신부, 파견나간 성당서 부당한 일 벌어지자 한 일

김성호 2026. 4. 3.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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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1306] <나이브스 아웃: 웨이크 업 데드 맨>

김성호 평론가

부제를 폭행하여 징계위에 선 신부가 있다. 권투선수 출신으로 사제 서품을 받은 주드(조쉬 오코너 분)다. 세 명의 주교가 징계위에서 그를 심판한다. 그중 하나가 질책하듯 말한다.

"투사가 필요하긴 해. 그런데 세상과 싸워야지. 우리끼리가 아니라. 성직자는 양치기고 세상은 늑대야."
그러나 주드가 곧장 반박한다.
"아닙니다."

처지에 어울리지 않는 반박에 스스로 주춤했던 그가 다시금 입을 연다.
"외람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늑대와 싸우기 시작하면 나와 다른 것들은 모두 늑대가 되죠. 싸우려는 본능에 굴한 저와 달리 그리스도께선 세상을 치유하러 오신 겁니다. 전 그걸 믿습니다. 그저 좋은 사제가 되고 싶습니다. 저처럼 무너진 자에게 주의 용서와 사랑을 전하는, 세상엔 그런 것들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럴 수 있는 기회를 한 번만 더 주십시오."
▲ 나이브스 아웃: 웨이크 업 데드 맨 스틸컷
ⓒ 넷플릭스
미친놈에게 장악된 성당으로 간 신부

지난해 말 공개돼 최근까지 꾸준한 관심을 받고 있는 넷플릭스 영화 <나이브스 아웃: 웨이크 업 데드 맨>은 혈기왕성한 젊은 신부 주드가 주임 신부 한 명 뿐인 침니록의 작은 본당으로 파견을 나가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침니록에 위치한 '영원한 불굴의 성모 성당'이 바로 그곳으로, 주임 신부는 기묘한 명성을 가진 제퍼슨 윅스(조슈 브롤린 분)다. 동료 사제를 폭행하고 징계를 받을까 걱정하던 주드의 입장에서 작다곤 해도 성당의 '넘버 투' 격인 보좌 신부로 가는 건 승진이나 다름없는 일. 절로 입꼬리가 올라가는 그에게 그를 아끼는 주교가 주의를 당부한다. 저는 윅스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사제복만 입었지 거의 미친놈'이라고 말이다. 그의 말이 옳단 게 얼마 지나지 않아 확인된다.

바로 여기, 침니록의 '영원한 불굴의 성모 성당'이 영화 <나이브스 아웃> 3편의 무대다. 말인즉슨 이 성당에서 사람이 죽어나간다는 것이다. 라이언 존슨의 21세기 최고 탐정물 시리즈 <나이브스 아웃>은 언제나 고전적 추리물의 뼈대를 취한다. 사람이 죽고 그 이유며 방식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 탐정 브누아 블랑(다니엘 크레이그 분)이 경찰과 협조해 사건을 해결한다. 3편도 마찬가지. 블랑이 성당으로 와 언제나처럼 진실에 다가선다. 이번엔 주드의 곁에서 그를 도와 진실를 찾는다.

라이언 존슨의 시리즈가 언제나 세상을 겨냥하고 있단 건 주목할 대목이다. 벌써 수세기가 된 탐정물이 다분히 고전적이고 양식적 장르물로 재현되지 않도록 현실과의 접점을 영리하게 마련한다. 전설이 되리라 믿어 의심하지 않는 첫 편만 봐도 그렇다. 고풍스러운 저택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스스로 자수성가했다 믿는 백인 기득권층의 허위의식과 선민의식을, 또 그 아래 실제적인 노동을 책임지는 이주노동자와 그들이 받는 차별과 혐오의 문제를 담고 있다.
▲ 나이브스 아웃: 웨이크 업 데드 맨 스틸컷
ⓒ 넷플릭스
평범한 탐정물이 아니다

2편 <글래스 어니언>에선 당시 주목 받던 실리콘밸리 기업가와 사회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발하던 인플루언서들을 전면에 등장시킨다. 일론 머스크나 스티브 잡스, 피터 틸 등 실리콘밸리의 혁신가라 불리는 이들과 이들을 추종하는 유명인들이 넘쳐나던 실상 가운데서 영화는 기술혁신이란 미명 아래 돈과 권력을 추종하는 민망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내보였다.

3편은 그 완성도면에서 아쉬움이 많았던 전편을 무리 없이 넘어선다. <웨이크 업 데드 맨>이란 부제에서부터 쉬이 떠올릴 수 있듯, 이미 죽었어야 마땅한 것들이 살아나는 현실을 겨냥하고 있다. 성전이라는 귀한 곳이 '신부 옷만 입은 미친놈'에게 장악돼 있고,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신도들은 하나같이 교회와 경전, 신앙이 아닌 위의 미친놈만 추종하는 현실이 그저 영화 속 이야기는 아닌 것이다.
▲ 나이브스 아웃: 웨이크 업 데드 맨 스틸컷
ⓒ 넷플릭스
영화처럼, 아니 영화보다 망가진 현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다원주의며 민주주의, 법치주의의 질서가 위협받고 곳곳에서 극우파가 준동하는 상황이 현실 가운데 공공연하다. 신앙과 교회, 경전이 힘을 발하지 못하는 영화 속 모습이 꼭 그와 같다. 차별과 혐오의 언어로써 제 열광적 지지자가 아닌 이들을 희롱하고 배제하는 제퍼슨 윅스의 태도 또한 실재하는 정치가를 떠올리게 한다.

"안 해본 게 없어요. 인종문제도 때리고, 젠더, 트랜스젠더 문제, 국경, 노숙자 문제, 전쟁, 부정선거, 낙태, 기후 문제, 인덕션 문제, 이스라엘, 도서관, 백신, 젠더 대명사, AK-47, 사회주의, 흑인 인권, 인종론, 질병통제센터, 다양성, 5G, 전부 다 해봤는데 아무 반응도 없어요. 왠지 모르겠지만 이젠 다들 시큰둥해요."

뿐인가. 제퍼슨 윅스의 핵심 지지자인 사이 드레이븐(다릴 맥코맥 분)은 더욱 노골적인 대사를 뱉는다. 공화당에 줄을 대어 성공하려 했던 그는 끝내 유권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낙향해 이 성당의 신도가 된다. 그가 보좌신부인 주드에게 말한다. 제가 건드릴 수 있는 모든 주제를 건드려보았음에도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고. 주드가 그를 달래며 "기본으로 돌아갈 때가 아닌가 싶다"고 하자, 사이의 답이 가관이다.
▲ 나이브스 아웃: 웨이크 업 데드 맨 포스터
ⓒ 넷플릭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구할 수 있다면
"기본이면 사람들이 싫어하는 걸 보여주고서 그걸로 피해를 볼 거라고 겁주는 거요?"

그의 답이 과연 현실 가운데 작동하고 있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나이브스 아웃: 웨이크 업 데드 맨>은 이처럼 당혹스러운 상황에서도 제 역할을 해내는 이들의 이야기다. 주드는 어떻게든 성당을 모두에게 열린 성스러운 공간으로 되돌리고자 애쓴다. 브누아 블랑은 용의자로 몰릴 수 있는 주드를 보호하며 이성을 무기로 진실을 드러내려 든다.

믿음과 이성, 좀처럼 손잡지 못할 것처럼 보였던 두 가지 진실한 힘이 더해져 도저히 막아낼 수 없을 것 같던 광기와 비이성의 폭주를 멈추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지난하고 괴로우며 좀처럼 기대되지 않는 길이지만 마침내 용서와 사랑으로 세상을 치유하려는 주드의 시도가 효험을 발한다.

요컨대 영화는 그저 탐정물이며 추리물에 그치지 않는다. 장르를 넘어 현실을 빗대어 고발하고 미래에의 희망을 진작한다. 광신과 혐오, 광기와 폭력에 점령당한 것처럼 보이는 오늘일지라도 기본으로 돌아가 서로를 의지할 수만 있다면 가능성은 있으리라고 북돋는다. 절망 앞에서도 끝끝내 포기하지 않는 신부 주드를 맡은 조쉬 오코너의 특별한 연기가 극에 진솔함을 더한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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