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F-21 날았지만 KAI는 ‘구조 시험대’…민영화 불씨 재점화

KF-21 보라매 양산이라는 호재에도 불구하고,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둘러싼 지배구조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민간 기업들의 지분 확보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민영화’와 ‘경영 체질 개선’ 요구가 동시에 분출되는 양상이다.
2일 업계에 따르면 한화그룹은 KAI 지분을 확대하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4.41%)와 한화시스템(0.58%)은 최근 KAI 지분을 매입해 총 4.99%를 확보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지분 확보를 한화의 엔진 및 무장 기술을 담아낼 ‘완제기 플랫폼’을 선점하려는 의도로 보고 있다. 동시에 향후 KAI 민영화 논의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 같은 움직임은 KAI를 둘러싼 민간 주도 경영 전환 논의에 불을 지폈다는 평가다. KAI 민영화 논의는 2000년 이후 수차례 반복됐지만 매번 실패했다. 최근 방산 호황과 기업가치 급등으로 업계는 그간 정체됐던 민영화 논의가 본격화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최근 KAI의 사업 지연과 수주 부진이 맞물리며 지배구조 개편 필요성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폴란드향 경공격기 FA-50PL의 납품 일정은 미국산 장비 통합 및 수출 승인(EL) 절차 지연을 이유로 기존 2025년 말에서 2027년 중반으로 약 2년 연기됐다. 국내 소형무장헬기(LAH)의 인도 일정 역시 행정 절차 등의 이유로 2025년 3분기 실적 발표에서 순연되며 부담이 커지고 있다.
업계는 이러한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정책기관 중심의 공기업식 지배구조를 지목한다. 록히드마틴, 보잉 등 글로벌 항공우주 기업들은 민간 주도의 빠른 의사결정과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속도전’을 벌이는 반면, KAI의 경우 한국수출입은행 등 정책기관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가 과감한 리스크 감수나 적기 투자를 어렵게 한다는 지적이다. KAI는 국책은행인 수출입은행이 최대주주로 공적 자금의 지배를 받고 있다.
KAI로서도 민영화 논의를 마냥 외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권 교체기마다 반복되는 수장 공백과 인사 논란은 경영 연속성을 해치는 고질적 병폐로 지적돼 왔다. KAI는 블랙호크(UH‑60) 성능 개량, 전자전기(EW) 시스템, 천리안 5호 위성 등 2024~2025년 전후로 진행된 3대 전략 사업 수주에서 잇따라 고배를 마셨다.
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KAI는 지난해 블랙호크 성능 개량, EW, 천리안 5호 위성 등 굵직한 3대 전략 사업 수주에서 잇따라 낙찰에 실패했다”며 “수장 부재 등 경영 불안정 상황에서 공격적인 수주 전략을 펼치지 못한 결과”라고 진단했다.
민간 기업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한화에 이어 LIG넥스원 또한 KAI 인수를 위한 내부 검토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들이 KAI에 주목하는 배경에는 ‘완제기 플랫폼’이라는 전략적 가치가 자리 잡고 있다. 엔진(한화)이나 유도무기(LIG) 등 개별 기술을 보유한 기업 입장에서는 이를 통합해 구현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KAI가 KF‑21, FA‑50, 무인기 등 핵심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어, 인수 후 기술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매력적 자산”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 역시 민영화 필요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최기일 상지대 교수는 “무한 경쟁 시대에 지속 가능한 K‑방산의 발전을 위해서는 방산 생태계의 DNA 자체를 바꾸는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방산 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한 절충안도 제시된다. 장원준 전북대 첨단방산학과 교수는 “정부가 지분을 완전히 매각하기보다는 일부 민간 지분을 키우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영국의 BAE 시스템즈 모델처럼 경영권은 민간에 넘기되, 정부가 국가 안보 사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황금주’ 개념을 도입해 효율성과 안보를 동시에 잡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민간 인수에 따른 방산 독과점 우려에 대해서는 ‘사업 부문별 분할 매각’ 시나리오가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가령 고정익 부문은 특정 대기업이, MRO(정비·보수) 부문은 항공 전문 기업이 가져가는 방식으로 나누는 구조다. 최기일 교수는 “독과점 폐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물적 분할을 통한 부문별 매각이 최적의 대안이 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부문별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이수민 기자 breathmi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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