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뉴욕은 너무 비싸다”로 승리한 뉴욕시장

힘든 시민 삶 헤아리는 공약에
투표 안 하던 청년층도 지지해
큰 격차로 이긴 정치신인 맘다니
정당대결 구도 약해진 6·3선거
여야 다 싫다는 무당층도 27%
정당보다 능력·생활공약 살펴
정치꾼 아닌 지방일꾼 뽑아야
서울시민들은 출근 때 왜 지옥철은 나아질 기미가 없는지 불만을 터뜨린다. 하루 670만명이 타는데 왜 시 예산을 우선적으로 배차 간격을 줄이는 데 투입하지 않는지 의아해한다. 장애인 단체의 지하철·버스 탑승 시위를 몇 년째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해서도 잔뜩 화가 나 있다. 시위로 생기는 시민 불편과 지연 도착으로 인한 기회비용이 큰지,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비용이 큰지 설명이라도 듣고 싶어 한다. 주말 도심 한복판에서 집회·시위가 끊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많은 이들이 짜증을 낸다. 시민과 외국인 관광객 등 모두의 공간인 광화문 거리가 특정 세력의 안방처럼 돼 버린 지 오래다. 6·3 지방선거에서 이런 생활 속 불편을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후보가 있다면 시민들이 앞다퉈 그에게 표를 던질 것이다.
지난 1월 취임한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은 시민들의 그런 마음을 파고들어 승리한 케이스다. 초대형 개발 공약을 내걸지도 않았고, 민주당이냐 공화당이냐는 정파적 대결에도 기대지 않았다. 정치적 경력이나 명성으로 승부를 내려 하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뉴욕시민들에게 ‘당장 여러분의 생활을 바꿔줄 사람’임을 각인시켰다.
맘다니는 메트로폴리탄 수장을 맡기에는 무명이나 다름없는 정치 신인이었다. 출신도 인도계 무슬림이다. 민주당 후보였지만 당내에선 ‘사회민주주의’ 계열의 비주류 중 비주류였다. 그런 34세 청년 정치인에게 뉴욕시민은 큰 격차로 승리를 안겼다. ‘뉴욕은 너무 비싸다’는 그의 슬로건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맘다니는 뉴욕에서 살기엔 모든 게 너무 비싸기에 그걸 해소하는 시장이 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시가 관여할 수 있는 임대아파트의 임대료를 동결하겠다고 했고, 공공주택 공급 확대도 약속했다. 시내버스 무료화를 추진하고, 식료품 가격이 싼 공공슈퍼마켓을 만들겠다고 했다. 출산 가정 ‘베이비 키트’ 제공, 최저임금 30달러 상향 추진, 부자 증세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는 이달 초 상속세 면제 한도를 700만 달러(약 105억원)에서 75만 달러(약 11억2000만원)로 낮추고, 상속세 최고세율을 16%에서 50%로 올리는 방안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너무 비싼 뉴욕’을 더 빨리 해결하기 위한 조치다. 그런 그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미친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했지만 어쨌거나 시민들은 ‘당장 급한 내 생활을 바꿔줄 적임자’로 그를 택했다. 청년층 투표율이 28%로 이례적으로 높았던 것도, 18~34세의 75%가 맘다니를 찍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번 6·3 선거는 지방자치단체 선거라는 원래 취지와 중앙 일꾼이 아닌 내 삶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지역 일꾼을 뽑는 선거라는 성격에 부합해 투표하기 좋은 기회다. ‘정권 견제’라는 역할이 무색할 정도로 지금 제1야당이 무너져 있는 것도 그런 분위기를 띄운다.
지난주 발표된 한국갤럽 조사에서 대구의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지지율이 27%로 동률이고, 부산·울산·경남의 지지율도 여당이 앞섰다. 전통적 지지세가 허물어지고 있다. 무당층도 27%에 달해 민주당(46%)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4년 전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의 무당층은 17%였다. 하지만 지금은 무당층이 국민의힘(19%)·개혁신당(3%)·조국혁신당(2%)·진보당(1%) 등 야당 지지율을 다 합친 것보다 높다. 여당과 제1야당의 지지율 격차가 워낙 커 파란색, 빨간색 유니폼 색깔을 보고 투표하는 ‘정당 대결’ 성격의 선거가 희미해졌고, 기존 정치세력에 매력을 못 느낀 높은 무당층도 큰 변수가 됐다.
이런 분위기에 맞춰 유권자들도 정당보다 사람, 배경보다 능력, 실현되기 어려운 개발 공약보다 손에 잡히는 생활공약을 보고 후보를 선택해야 한다. 17명 광역단체장과 226명 기초단체장을 뽑는 지방선거가 원래 그런 기준으로 사람을 뽑아야 하는 것인데, 그간 우리 정치가 너무 대립으로 치닫다 보니 지방선거조차 중앙정치의 연장 선상에서 치러져 왔다. 그러다 보니 역량 있는 지역 행정가가 아니라 정치꾼이나 중앙 낙하산 후보들이 지자체장 자리를 차지했고, 그 과정에서 공천헌금 등의 비리도 만연했다. 이제 전국 곳곳에서 비정상적 지방선거가 정상화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해서 철 지난 구호가 된 ‘풀뿌리 민주주의’를 진짜 되살려내야 한다.
손병호 편집국 부국장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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