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투성이라도 살라’…수없이 죽고 싶었을 때 이 말 떠올렸죠”
알코올 중독 아버지의 학대
고통의 터널 지나 상처 딛고
이웃 돌보는 새 삶

임금주(54) 함께하는교회 사모의 간증집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규장)를 읽으며 2000년대 초반 국내에서 인기를 끈 일본 작가 오히라 미쓰요의 책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가 떠올랐다. 수차례 자살을 시도할 만큼 엄청난 상처를 입었음에도 이를 극복한 뒤 자기 아픔을 가감 없이 드러내 타인을 위로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친족 성폭력과 사기 피해로 인한 신용불량자 신세, 세 번의 자살 시도, 말기 암 남편과의 사별…. 임 사모는 이 모든 고초를 겪고도 호스피스 사역과 교정·시각장애인 선교에 나서며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구김살 하나 없어 보이는 말간 인상의 그를 최근 경기도 평택의 교회에서 만났다.
-자신을 ‘거룩한 피투성이’로 명명했습니다.
“실제로 그러니까요. 예전엔 상처를 받아 제 피로 가득한 피투성이였다면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그 자리를 채웠다는 게 다르지만요.
죽음의 문턱에서 세 번이나 살려준 것도 감사한데 목회자 사모라는 새 소명을 주고 지금도 말씀으로 저를 매일 만나주는 주님을 전하고자 이 책을 썼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이 흔한 말이 참이란 걸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과거사 공개에 부담은 없습니까.
“어찌 보면 상처는 제게 훈장 같아요. 주님의 일을 하고 사람을 위로하는 데 있어 가장 좋은 스펙이거든요. 지난날의 아픔을 말하는 건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그렇지만 나를 건강하게 회복시킨 하나님 은혜를 전할 때면 자꾸만 눈물이 나서….”
‘의료 선교사’를 꿈꾸며 부산가톨릭대 간호학과에 진학한 임 사모는 23세 때 교회 친구에게 아픔을 처음 털어놓았지만 돌아온 건 배신이었다. 친구의 발설로 시작한 이야기가 와전돼 낭설이 되자 그는 약국 여러 곳에서 구한 수면제 100알을 무작정 삼켰다.
천만다행으로 3일 만에 의식을 되찾아 졸업 후 서울대병원과 분당서울대병원에서 근무했지만 고난은 끊이지 않았다. 32세 생일날엔 남편이 대장암 4기라는 소식을 들었다. 3년여간 투병한 남편 별세 후 평소 꿈꿔온 요양원 운영을 준비하다 남편 지인을 사칭한 사기꾼에 속아 2억여원의 빚도 얻었다.
빚 독촉과 추심에 지친 그는 다시 죽음을 떠올렸다. 약물을 투여하려는 순간 전화를 걸어온 후배의 만류로 시도에 그쳤지만 자살 충동은 계속됐다. 아픔을 잊기 위해 연고 없는 평택으로 이주해 낮에는 종합병원 수간호사로 일했지만 밤이면 자살 충동에 시달렸다. 밤중에 옥상에 올라가지 않도록 침대 다리에 발을 묶어두고 잘 정도였다.
자책감과 무력감에 빠져 세 번째 자살 시도를 한 그를 붙잡은 건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겔 16:6)는 성경 말씀이었다. 신용불량자로 살던 당시 갈 데라곤 교회밖에 없어 설교를 듣다 발견한 말씀이다. “세 차례나 삶을 포기하려던 나를 나무라지 않고 피투성이라도 그저 살라는 말에 큰 위로를 얻었다”는 임 사모는 앞으로 그 말대로 살기로 결심한다. 아버지란 말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던 그가 ‘하나님 아버지’로 시작하는 기도를 드린 것도 이때부터다.

“원어인 히브리서로 보면 이 본문 속 ‘살아 있으라’는 표현이 ‘살려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고 합니다. 이 얘기를 듣고 깨달았습니다. ‘아, 내가 겨우 살아냈다고 생각했는데 아버지가 살려낸 거구나. 내 삶은 그저 은혜구나.’”
-하나님을 원망한 적은 없습니까.
“항상 가면을 쓴 채 아파도 웃으며 살았어요. 원망보단 혼자 삭히는 데 익숙했습니다. 아무에게도 돌봄 받지 못한 상황에서 이렇게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정말 하나님 은혜 아닌가요.
특정 사건에 대한 기억을 잃는 ‘해리성 기억상실증’을 앓은 것도 도움이 됐습니다. 아마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저 자신의 보상 기전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만 이런 생각은 했지요. ‘내가 기억 못 하는 그 순간에 죄를 지었으면 어떡하나.’ (연신 눈가를 훔치며) ‘만약 그렇다면 회개할 수 있도록 제 죄를 떠올리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한 적은 있습니다.”
-삶을 망친 이들을 어떻게 용서했습니까.
“용서처럼 거룩한 건 나중에 한 겁니다. 그저 나와 자녀들을 살리려고 일단 일상을 살기로 한 거지요. 경찰서 등에서 피해자로 선 저를 마주하기도 싫었고요. 그 과정을 반추하는 것 자체가 아픔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신용불량 상태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간호사로 일하며 말기 암 환자의 임종을 지키던 중 임종 예배를 집례하던 남편을 만났습니다. 당시는 빚에 눌려 살던 때라 재가(再嫁)는 꿈도 못 꾸던 때였지요. 더군다나 목회자 사모는 언감생심이었습니다. 지인의 소개로 단둘이 만났을 때도 ‘저는 이런 사람이라 사모가 될 수 없다’고 했어요. 그럼에도 저와 제 빚의 해결을 위해 계속 기도해준 남편이 참 고마웠습니다.
이후 ‘사모가 되는 게 주님 뜻인지’ 여러 차례 기도하고 이에 대한 확증을 얻어 2016년 결혼했습니다. 빚 해결에 관한 기도도 그중 하나였는데요. 지인이 “갚지 말고 나중에 어려운 이웃을 도울 것”을 전제로 도움을 줘 빚에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남편은 정말 성경 룻기 속 보아스 같은 존재입니다. 너른 품으로 제 모든 걸 품었습니다.”
-남편도 목회 스트레스로 청력을 잃는 아픔이 있었지요.
“어릴 때부터 자라온, 19년간 섬긴 모교회에서 일방적으로 설교권이 박탈되고 사택을 비우라는 요청을 받으면서 충격이 컸습니다. 결백을 주장하며 버티면 성도가 분열될 걸 우려해 50대에 나이에 교회 개척을 택했고 지금껏 그 길을 묵묵히 걷고 있습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세민얼굴기형돕기회와 평택호스피스선교회 등에서 활동하며 여건 될 때마다 이웃에 온정을 보내는 남편이 자랑스럽습니다. 감사하게도 2023년 인공와우 수술과 재활로 정상 청력의 95%까지 돌아왔습니다.”

-지난해 유튜브 채널 ‘허그 엘(Hug EL)’을 열었습니다.
“‘허그 엘’은 ‘상처 입은 영혼을 하나님이 안아준다’는 뜻으로 붙인 이름입니다. 엘이 사랑(Love)과 생명(Life)의 앞글자를 뜻하기도 하고요. ‘상처와 잘 헤어진 중보자’로서 제가 묵상한 내용을 많은 이들과 나누고자 시작했습니다.”
-‘상처와 잘 헤어진 중보자’란 말이 인상 깊습니다.
“‘상처 입은 치유자’란 말이 유명하고 저를 그렇게 칭한 분도 있지만, 결국 치유하는 건 하나님이니까요. 저는 제가 만난 주님을 전하며 눈물로 같이 기도할 뿐입니다. 심리상담사, 자살 예방 강사 등으로 활동하면서도 이런 마음으로 임합니다.”
-죽음을 떠올리는 이들에게 해주고픈 말씀이 있다면.
“‘피투성이라도 괜찮으니 꼭 살아만 주십시오. 딱 하루만이라도 잘 버팁시다. 그리고 내일 이 시간에 저와 다시 통화해요.’ 앞으로도 이렇게 들어주고 기도하면서 한 영혼을 살려내고자 합니다.”

-보건의료 분야 강사이자 기독 방송 진행자·잡지 기자 등 여러 방면에서 활동 중입니다.
“최근 이 책 오디오북 제작·배포하는 ‘BF(Barrier-Free) 블레싱’ 사역을 새로 시작했습니다. 100명의 시각장애인 목회자와 사모, 선교사에게 이 오디오북을 무료로 전하는 사역입니다. 유튜브에 올린 남편 연락처로 연락처 등 소정의 증빙자료를 전해주시면 그편으로 보내려 합니다.

-최근엔 무엇을 놓고 기도합니까.
저는 간호사를 20여년간 했기에 보건의료 분야 강사로 밥벌이를 하지만 개척교회 사모 가운데는 힘들게 일하며 사역에 헌신하는 분이 꽤 많습니다. 제게 상담을 요청하는 분 가운데도 개척교회 사모가 적잖습니다. 그분들께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와 눈물을 하나님이 다 듣고 보고 계십니다. 그분 안에서 힘과 위로를 얻고 용사처럼 나아가십시오.’”
평택=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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