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곁의 사람들, 그들이 본 것은 죽음 너머의 ‘진짜 희망’이었다

김아영 2026. 4. 2.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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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며 머물렀던 사람들, 그 끝에서 마주한 ‘보는 것’과 ‘믿는 것’ 사이”
제미나이

고난주간과 부활절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을 이루는 절기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 죽음, 부활은 해마다 되새겨지지만 익숙한 만큼 관념적으로 소비되기 쉽다. 최근 나온 세 권은 이 절기를 각기 다른 자리에서 다시 바라보게 한다. 한 권은 예수의 마지막 한 주를 따라가고, 한 권은 부활절을 교회의 시간 속에서 읽으며, 또 한 권은 예수의 죽음 곁에 남아 있던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부활 신앙을 묻는다. 시선은 제각각이지만 결국 우리를 복음의 핵심으로 이끄는 길잡이들이다.

웨슬리 힐의 ‘부활절, 기뻐하며 나아가다’(IVP)는 부활절을 하루의 절기로 한정하지 않는다. 저자는 부활절을 교회력의 중심이자 절정으로 놓고 부활주일 이후 오순절까지 이어지는 50일의 시간을 함께 읽어 낸다. 책은 복음서와 바울서신, 사도행전의 증언을 바탕으로 부활의 의미를 설명한다. 그것이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교회의 예배와 전례, 신자의 삶을 조직하는 현재의 시간이라고 본다.

특히 세례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는 사건으로 연결하는 대목이 책의 중심을 이룬다.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았다”고 말했듯, 세례는 부활절을 대표하는 예식이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인이 끊임없이 돌아가야 할 출발점이다. 부활은 기념해야 할 사건이면서 동시에 살아내야 할 현실이라는 뜻이다. 이 책은 부활이라는 사건을 신앙 공동체의 일상적인 시간표로 뿌리내리게 한다.

김영한의 ‘예수님 십자가 고난과 부활의 여정’(아가페)은 예수의 마지막 한 주를 하루씩 따라가도록 구성한 묵상집이다. 예루살렘 입성, 성전 청결, 논쟁과 비유, 베다니의 기름 부음, 최후의 만찬, 십자가 처형, 장사, 부활까지 여덟 장면으로 이어진다. 책은 각 사건을 성경 본문을 바탕으로 해석하며 십자가를 향해 좁혀지는 시간의 긴장을 차례로 짚는다. 대속물로 오신 어린양의 의미를 시작으로 거짓된 종교성을 향한 질타, 성찬과 세족례에 담긴 사랑,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의 절대적 순종이 긴밀하게 엮여 있다.

성전 청결 사건을 다룬 대목에서 저자의 서술은 구체적이고 생생하다. 가난한 순례자들이 환전 수수료와 흠 잡힌 제물 탓에 성전 안에서 비싼 값을 치러야 했던 구조적 착취를 묘사한 뒤, 그 광경을 마주한 예수의 눈빛이 바뀌는 순간을 그린다. 평소의 온유 대신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타오르는 분노. 경건과 은혜의 자리가 이익과 착취의 장으로 변해 버린 것에 대한 분노는, 독자로 하여금 오늘의 교회와 신앙 현장을 자연스럽게 돌아보게 한다.

십자가 위에서의 마지막 말씀들도 하나하나 천천히 풀어낸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는 시편 31편의 기도를 품은 것으로, 저자는 그 음성을 “고요한 확신과 친근함으로 가득 찬” 것으로 읽는다. 공포 속의 절규가 아니라 신뢰 속의 의탁이었다는 것이다. 각 장 끝에는 질문을 붙여 독자가 내용을 이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도록 했다. 고난주간 묵상집의 형식을 갖췄지만 본질적으로는 예수의 마지막 여정을 따라가며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김호경의 ‘죽음, 부활을 품다’(뜰힘)는 부활 자체를 설명하는 책이라기보다 부활을 바라보며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에 가깝다. 저자는 십자가의 여자들, 어머니 마리아, 사랑하는 제자, 니고데모,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 베드로, 스데반, 바울 등을 차례로 불러내며 예수의 죽음 앞에서 이들이 어떻게 머물렀는지를 묻는다. 책의 관심은 사건보다 그 사건을 살아낸 인물에게 있다. 처음부터 확신에 찬 존재로 그려지지 않는다.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했고, 어떤 이들은 두려움에 물러났으며, 어떤 이들은 밤처럼 어두운 마음으로 예수를 찾아왔다.

요한복음을 읽어 내는 저자의 눈길은 특히 섬세하다. 마리아를 가리켜 “예수의 ‘때’를 따라온 사람”으로 읽는다. 죽음으로 가는 예수의 때에서 길을 잃지 않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이다. 또 도마의 고백을 두고는 그것이 놀라운 것이면서도 빛이 바랬다고 말한다. 자신의 봄(seeing)에 의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봄은 그것이 믿음으로 단단해지기 전까지는 늘 흔들림의 원인”이라는 문장은 오늘날 수많은 유혹 가운데 진리를 선택해야 하는 독자들에게 위로를 건넨다.

저자는 머무름의 자리에서 부활 신앙의 단서를 읽는다. 부활은 인간이 설명하거나 만들어 내는 사건이 아니라 은혜의 사건이다. 인간은 다만 그것을 소망할 뿐이라는 문제의식도 책 전반을 관통한다. 죽음과 부활 사이의 시간을 어떻게 견디는가를 묻는 점에서 이 책은 절기 묵상서이면서도 신앙의 태도를 돌아보게 한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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