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종말" "협회장 나가" 월드컵 탈락 후 분노 휩싸인 伊

‘월드컵 4회 우승국’ 이탈리아 축구대표팀이 3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하자, 이탈리아 전역이 충격과 분노로 들끓고 있다. 자국 매체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는 “제3의 종말”이란 표현까지 썼다.
이탈리아는 지난 1일 북중미 월드컵 유럽 예선 플레이오프에서 FIFA랭킹 65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 승부차기 끝에 1-4로 졌다. 월드컵 우승국 중 처음으로 3회 연속 본선(2018, 22, 26) 무대를 밟지 못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전반 41분 알렉산드로 바스토니(인터밀란)가 거친 태클로 퇴장 당해 10명이 싸우며 두려움에 사로잡힌 모습이었다. 승부차기에서 골키퍼 잔루이지 돈나룸마(PSG)가 상대 골키퍼의 킥 방향을 적어둔 ‘커닝 페이퍼’를 훼손하는 극단적 행동도 소용이 없었다.

성난 팬들은 이탈리아축구협회 건물로 몰려가 날계란을 투척하며 시위했다. 책임져야 할 가브리엘레 그라비나 이탈리아축구협회 회장이 버티기에 돌입하자, 이탈리아형제당 소속의 한 정치인은 “그라비나 사임을 시작으로 전면적 개혁이 필요하다”며 사퇴를 촉구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 검투사역 러셀 크로우(뉴질랜드)조차 “이탈리아에 암울한 새벽이 또 오고 있다. 재능 있는 선수들이 많은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탄식했다.
월드컵 본선행 실패시 ‘이민 가능성’까지 내걸었던 젠나로 가투소 감독의 전술적 고집이 패착으로 지목된다. 스카이 이탈리아의 잔프랑코 테오티노 기자는 “세계적인 흐름인 포백을 외면하고 구식 3-5-2 포메이션을 고집했다”고 비판했다.
영국 BBC와 미국 CNN은 단순한 불운이 아닌 수 년 간 누적된 구조적 문제를 방치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유로 2020 우승은 시스템 결함을 임시방편으로 덮은 것에 불과했다는 지적이다.

2006년 월드컵 우승 토대는 1990년대 청소년 대표팀의 성공에 있었다. 그러나 1995년 이탈리아 세리에A가 팀당 외국선수 보유 제한을 폐지하며 외국 선수들이 대거 유입됐다. 자국 유망주들의 출전 기회가 박탈 당했고, 이는 국가대표 경쟁력 약화로 이어졌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가 막대한 중계권료를 급성장하는 동안, 이탈리아팀들은 경기장 현대화와 수익 구조 개선에 실패했다. 그 결과 회계법인 딜로이트가 올초 발표한 세계 매출 상위 10팀에 이탈리아 클럽은 단 한 곳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지네딘 지단 등이 뛰었던 1990년대와 달리 현재 세리에A는 루카 모드리치(AC밀란) 등 은퇴를 앞둔 노장들이 오는 무대로 전락했다.

이탈리아 축구계가 여러 차례 승부조작 스캔들로 휘청한 여파도 있다. 마피아를 고발한 소설 ‘고모라’의 작가 로베르토 사비아노는 “이탈리아 구단들은 범죄조직에 휘둘리는 돈세탁 금고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2013년 이탈리아 축구 전설 로베르토 바조가 이탈리아축구협회 기술이사직에서 물러나면서 “900쪽 분량의 계획은 묵살당했고, 배정된 예산 1000만 유로(175억원)는 단 한 푼도 받지 못했다”는 폭로는 현재 위기와 맞물려 재조명된다.
수비수 레오나르도 스피나촐라(나폴리)는 “어린이들이 이탈리아가 없는 월드컵을 또 보게 됐다”고 눈물 흘렸다. 얀니크 신네르를 앞세운 테니스가 축구 인기를 위협하면서, 이탈리아에서는 아이들에게 축구 대신 테니스를 시키는 분위기다.

이탈리아 몰락은 한국 축구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홍명보 감독의 스리백 고수,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에 대한 팬들의 불신은 이탈리아가 겪는 상황과 묘하게 닮았다. 영국 가디언은 북중미 월드컵 48개국 자체 랭킹에서 한국을 44위로 꼽았다. 한국보다 뒤지는 나라는 카보 베르데, 사우디아라비아, 아이티, 퀴라소 등 4개국 뿐이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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