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MP 칼럼]유럽의 이란 전쟁 대응이 초래할 위험

2026. 4. 2.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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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질서, 지정학적 이익 장애"
이란전쟁 사실상 방관자 수준
미국 의존 줄이고 원칙 지켜야

유럽연합(EU)은 이란 전쟁에서 사실상 방관자로 머물러왔다. 유럽 여론은 국제법에 반하는 이번 전쟁에 반대하고 있지만 동시에 유럽은 에너지·안보 측면서 미국에 여전히 크게 의존하고 있다. 반전(反戰) 입장을 명백히 취할 경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소외시킬 우려가 있다. 이는 유럽을 전략적으로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할 수 있다.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이처럼 지정학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임을 고려해도 브뤼셀의 대응은 유감스럽다. EU 지도부는 유럽이 중요한 정체성으로 여겨온 기본 원칙을 스스로 포기하려는 듯하다. EU 외교 수장인 카야 칼라스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이 적법한지에 대한 문제 제기 없이 이란만 비판해왔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의 발언은 더 충격적이다. 그는 최근 국제 규범 기반 질서가 EU의 지정학적 이익에 장애가 될 수 있다고 시사했다. 3년 전 국제법을 근거로 러시아의 불법적인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했던 바로 그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이 이제는 'EU의 당장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동일 규범들이 시대에 뒤떨어졌음을 시사한 것이다. 상당히 모순적인 언사다.

EU 지도자들은 '힘이란 결국 정신에서 나온다'는 윈스턴 처칠의 교훈을 잊은 듯하다. 패배주의는 결국 현실이 된다. 시민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반전 여론을 외면할수록 브뤼셀 엘리트 계층과 시민사회 사이의 거리는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오랜 기간 제기돼 온 민주적 정당성 결여에 대한 인식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전쟁의 여파는 에너지 가격 상승, 물가 상승, 대규모 이주로 이어질 것이다. 사회 불안은 유럽에 대한 회의주의를 자극하고, 반EU 정서도 확산할 가능성이 높다. 배를 이끄는 이들이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보일 때 승객들은 앞다퉈 탈출구로 향하게 마련이다.

EU가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가 쇠퇴하는 모습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면 러시아의 팽창주의든,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야심이든 외부 강압에 맞설 능력을 스스로 포기하게 될 것이다. 이는 지금도 공격받는 다자주의 원칙에 기반한 단일시장을 위협할 수 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에게는 외교 정책에 대한 명시적 권한도 없다. 그의 견해 역시 EU 회원국 전반의 합의와는 거리가 멀다. 국제법을 옹호한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의 행보가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은 미국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보다 원칙에 기반한 리더십이 더 큰 지지를 얻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정당성은 시민들의 우려에 귀를 기울일 때 생긴다. 시민들은 대서양 동맹의 압력 앞에 유럽의 정체성이 희생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제 EU는 더 자립적인 태도, 새로운 파트너십을 추구해야 한다. 브뤼셀은 '전략적 자율성'을 자주 강조하지만, 결정적 순간에 보이는 행보는 과연 이를 실천할 준비가 돼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진정한 전략적 자율성은 유럽의 가치에 충실히 하는 데서 시작된다.

미국에서는 신자유주의와 탈(脫)규제가 수십 년에 걸쳐 사회를 분열시켜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불만을 이용해 책임이라는 안전장치 없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포퓰리즘적 허위정보를 확산시켰다. 2기 행정부에서는 민주주의 후퇴가 심화했다. 대학과 언론, 법조계와 사법부 등 자유 사회의 기반인 안전장치들이 공격받고 있다.

반면 EU는 평화와 사회적 형평성에 대한 헌신으로 규정되는 규제 강국으로 자리하고 있다. 지속 가능성, 경쟁, 노동권, 데이터 보호 등 여러 분야에서 기준을 선도해 왔다. 이런 규범적 영향력은 가장 강력한 기업들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들 역시 매력적인 EU 시장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불만을 사 온 부분이기도 하다.

미국의 관세 위협은 자국 기업에 대한 압박인 동시에 EU를 겨냥한 공격이다. 이런 법과 규제는 실질적 힘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유럽은 정작 자신의 결승선 앞에서 흔들리고 있다. '단순화'라는 명분 아래 규제 안전망을 조용히 해체하고 있다. 최근 '브뤼셀 관료주의'에 대한 비판에 자극받은 EU는 규제를 성장 걸림돌로 보고 규제 완화로 기울고 있다. 이는 신뢰를 훼손할 수 있는 실망스러운 방향 전환이다.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두 번째 단계는 지정학을 고정된 동맹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바뀌는 유동적 관계로 보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스페인 총리가 전쟁에 반대한다고 밝힌 후 스페인과의 모든 상업적 관계를 끊을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때 우리는 세계 질서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목격했다. 중국은 무역을 무기로 삼는 것을 경고했지만, 독일의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는 EU 회원국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트럼프 대통령 옆에서 침묵을 지키며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대서양주의가 약해지면서 유럽은 새 협력 대상을 찾고 있다. 최근 호주와 남미 무역 블록인 메르코수르와도 무역 협정을 맺었다. 중국에도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지정학적·이념적 차이가 존재하지만 브뤼셀과 베이징은 규범 기반 질서를 지키고 트럼프 행정부에 대응할 협력 방안을 찾아야 한다. 유럽과 중국은 서로 필수적인 무역 파트너다. 양측 모두에 영향을 미치는 전쟁과 관련해서는 전술적 동맹이 될 수도 있다.

이제 EU는 자신의 가치를 지키고, 미국 의존도를 줄이며, 새로운 관계를 구축해야만 지금의 취약함을 강점으로 바꿀 수 있다. 국제 질서의 핵심 원칙들을 단호히 수호함으로써 EU는 글로벌 존중을 확보하고 내부의 신뢰와 희망을 회복할 수 있다. 진짜 힘은 군사력만이 아니라, 이성을 지키는 도덕적 권위에서도 나온다.

산드라 마르코 콜리노 홍콩 중문대 법대 교수

이 글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의 칼럼 Europe's response to Iran war risks becoming its 'darkest hour'를 아시아경제가 번역한 것입니다.

※이 칼럼은 아시아경제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이 칼럼은 아시아경제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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