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창업 나서는 중국 IT창업자들, '수성' 여념없는 한국 재벌

임선영 2026. 4. 2.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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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AI미래지도] 엄청난 자본으로 '다음 세대 산업' 전환 설계

[임선영 기자]

 알리바바 공동창업자 차이충신
ⓒ 알리바바홈페이지
올해 아시아에서 가장 주목받은 달러 펀드 클로징 소식은 실리콘밸리가 아닌 홍콩에서 왔습니다.

알리바바 공동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인 차이충신(蔡崇信·Joseph Tsai)이 이끄는 블루풀 캐피털(Blue Pool Capital·蓝池资本)이 목표액 7억 5000만 달러를 훌쩍 넘은 10억 달러, 한화 약 1조 5000억 원 규모의 첫 번째 사모펀드 조성을 마무리했습니다. 마윈도 블루풀 캐피털의 공동창업자입니다.

숫자 자체도 놀랍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자본이 향하는 곳입니다. AI, 핀테크, 고급 소비재. 이것은 단순한 투자 포트폴리오가 아닌 중국 1세대 자수성가 재벌들이 자신의 부를 어떻게 '다음 세대 산업'으로 전환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설계도입니다.

1. 수성(守成)이 아니라 재창업

차이충신은 1999년 알리바바 창업 당시 법률 자문으로 합류해 마윈(Jack Ma)과 함께 회사를 키운 인물입니다. 그는 이미 한 번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지금 또 다른 판을 짜고 있습니다.

2014년 홍콩에 설립한 블루풀 캐피털은 2022년 기준 운용자산 규모 500억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바이트댄스(ByteDance), 스페이스엑스(SpaceX), 이탈리아 럭셔리 스니커즈 브랜드 골든구스(Golden Goose), 미국 대체투자 플랫폼 블루아울 캐피털(Blue Owl Capital) 등이 이 패밀리 오피스의 손을 거쳤습니다. 지난 10년간 사모펀드 전략의 총수익률(Gross IRR)은 약 55%로, 같은 시기에 조성된 타 사모펀드와 비교했을 때 상위 10% 수준입니다.

이것이 단순히 돈 많은 사람의 재테크라고 본다면 본질을 놓치는 것입니다. 차이충신 세대의 자수성가 재벌들에게 패밀리 오피스(초부유층 가문의 전용 자산운용사)는 '자산을 지키는 금고'가 아닌 산업의 다음 판을 먼저 사는 전략적 플랫폼입니다. 그들은 제조업과 IT 플랫폼 비즈니스로 1세대 부를 축적했고 이제 AI와 딥테크로 2세대 부의 지형을 직접 그리고 있습니다.

2. 패밀리 오피스가 중국 AI를 키운 이유

중국 재벌가들 사이에서는 블루풀 캐피털과 유사한 움직임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산업용 자동화 분야 A주 대표기업 후이촨 테크놀로지(汇川技术·Inovance Technology) 창업자 주싱밍(朱兴明)의 패밀리 오피스 밍후이 인베스트먼트(明荟投资)는 2026년 2월, 기업가치 100억 위안을 돌파한 피지컬AI 스타트업 첸쉰 인텔리전트(千寻智能)의 약 20억 위안 규모 펀딩에 참여했습니다. 자체 운용 자금 25억 위안에 산업 연계 자금 100억 위안을 더해, 스마트 제조·신에너지·바이오·첨단기술 네 개 축을 집중 공략하고 있습니다.

애플 아이폰 부품 최대 납품사 중 하나인 리쉰 정밀(立讯精密·Luxshare Precision)의 패밀리 오피스 리링 펀드(立翎基金)는 반도체 설계사 웨이나 헥사코어(微纳核芯), 파운드리 기업 시노CHIP(中芯集成·SMIC Integration), 전력 반도체 스타트업 칩링크 파워(芯联动力) 등 굵직한 반도체 창업 기업의 배후 주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중국 최고의 엔젤 투자자'로 불리는 공홍자(龚虹嘉)의 패밀리 오피스 자도 프라이빗 캐피털(嘉道私人资本·Jado Private Capital)은 하드 사이언스 기술 투자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공홍자는 세계 최대 CCTV 기업 하이크비전(海康威视·Hikvision)의 초기 투자자로, 수천 배 수익을 거둔 전설적 투자자입니다.

이 세 가지 사례가 보여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자본들은 전통적인 벤처캐피털(VC)이 하기 어려운 역할을 수행합니다. VC는 펀드 만기 내에 회수해야 하는 구조적 압박 때문에 10년 이상의 초장기 베팅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반면 패밀리 오피스는 만기가 없습니다. 오너의 철학이 곧 운용 전략이 됩니다. 이것이 AI처럼 수익화까지 긴 호흡이 필요한 기술 분야에서 패밀리 오피스가 강력한 자본 공급자가 되는 이유입니다.
 차이충신 알리바바 공동창업자가 지난달 24일 베이징에서 열린 지멘스 RXD 서미트에서 대담하고 있다.
ⓒ 알리바바홈페이지
3. 자본의 방향은 곧 전략입니다

차이충신이 2026년 3월 중국발전고위급포럼에서 밝힌 AI 세계관은 단순한 낙관론이 아닙니다. 그는 중국이 AI 경쟁에서 갖는 세 가지 구조적 우위를 제시했습니다.

첫째, 전력입니다. 중국 국가전력망(国家电网)의 연간 자본지출은 약 900억 달러로, 미국의 3배입니다. 이는 중국이 AI시대를 대비하여 미리 인프라를 확보해두었음을 의미합니다. AI 훈련의 핵심 비용인 전력에서 중국은 이미 구조적 우위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둘째, 오픈소스입니다. 미국이 폐쇄형 모델로 기술 장벽을 쌓는 동안, 중국 오픈소스 AI 모델의 글로벌 다운로드 수는 2025년 기준 이미 세계 1위입니다.

셋째, 제조업과 AI의 결합입니다. 세계 최대·전면적인 제조업 생태계가 생성하는 방대한 공정 데이터는 산업 특화 AI 모델 훈련에 독보적인 가치를 지닙니다. 그는 단언했습니다. "중국 제조업과 AI의 결합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이 세 가지 논리는 블루풀 캐피털의 투자 방향과 정확히 겹칩니다. AI·SaaS, 핀테크, 고급 소비재. 전력 인프라가 받쳐주는 AI 인프라에 베팅하고, 오픈소스 생태계가 낳은 B2B 소프트웨어에 투자하며, 중국 중산층 소비 고도화를 겨냥한 브랜드를 선점합니다. 이것은 트렌드를 쫓는 자본이 아니라 중국의 비교우위를 자본으로 전환하는 정밀한 설계입니다.

4. 한국 재벌은 왜 다른가

이쯤에서 불편한 질문을 해야 합니다. 한국의 자수성가 1세대 기업인들은 왜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는 걸까요. 물론 차이는 있습니다. 카카오(Kakao) 창업자 김범수, 넥슨(Nexon) 창업자 김정주의 유산을 이은 NXC, 크래프톤(Krafton) 창업자 장병규 등 일부 IT 1세대는 스타트업 생태계와 연결된 투자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전통 대기업 재벌가의 자본은 여전히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구조에 있습니다. 한국 재벌의 자본은 순환출자와 지주회사 체제 안에 묶여 있습니다. 자본 배분의 최우선 목적은 그룹 지배구조의 유지이고, 그 다음이 계열사 간 시너지입니다. AI 스타트업에 대한 과감한 초기 베팅은 이 구조 안에서 우선순위를 갖기 어렵습니다. 더불어 한국의 대기업 오너들은 상속과 증여, 경영권 승계라는 법적·세무적 리스크에 자본의 상당 부분이 묶이는 구조 속에 있습니다. 자본을 자유롭게 운용할 여백이 중국 패밀리 오피스에 비해 구조적으로 좁습니다.

결정적으로 철학의 차이가 있습니다. 차이충신 세대의 중국 재벌은 자신이 직접 산업을 만들어온 창업자입니다. 그들에게 AI 스타트업 투자는 낯선 모험이 아니라 자신의 창업 경험을 다음 세대 기술에 투영하는 자연스러운 연장선입니다. 반면 한국의 상당수 재벌 2·3세는 창업자가 아니라 승계자입니다. 창업의 DNA보다 수성의 DNA가 먼저 작동합니다.

자본의 철학이 기술 혁명의 속도를 결정합니다. 중국 AI가 예상보다 빠르게 세계 무대에서 존재감을 키우는 배경에는 딥시크(DeepSeek)나 문샷 AI(Moonshot AI) 같은 스타트업의 기술력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뒤에는 자신의 부를 기꺼이 다음 판에 올려놓는 1세대 자수성가 재벌들의 기술과 시장을 통찰하는 장기적 자본이 견고히 흐르고 있습니다.

산업의 조류가 향하는 곳이 곧 부의 방향입니다. 그리고 지금 그 조류를 만들고 있는 것은 엔지니어가 아닌 자본가입니다.

덧붙이는 글 | 임선영씨는 중국전문가로 <중국경제미래지도>의 저자입니다. 이 글은 본인의 페이스북에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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