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했던 제주의 4월...작가는 다시 쓴다

최혜리 2026. 4. 2.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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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부터 허영선·허호준·안우진·현기영까지
전미도서비평가협회(NBCC)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 [사진 전예슬, 문학동네]

어떤 기억은 눈이 스미듯 찾아온다. 내 살갗에 박힌 경험, 생생히 전해 들은 아픔을 활자로 앉혀 타인에게 읽히면, 기억과 작별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아마도 이런 마음으로 쓰였으리라. 혹독했던 제주의 4월을 기억하며.

지난 27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에 놓인 한강 작가의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뉴스1

지난 26일(현지시간) 전미도서비평가협회(NBCC)상을 받은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소설가 경하가 주인공으로, 그는 우연이 겹쳐 찾게 된 제주의 친구 집에서 학살에 얽힌 친구의 가족사를 마주한다.

한강은 NBCC에 수상 소감을 보내 “이 책에는 작별을 고하지 않기로 결심한 이들이 나온다”며 “그들은 불가능한 작별 대신 끈질긴 아침 안에 머물기를 선택한다. 밤의 칠흑 같은 추락 속에서도 바다 아래에 촛불을 밝힌다”고 전했다.

허영선 작가의 『법 아닌 법 앞에서』와 『우린 천둥의 밤을 지나온 자들이어서』 표지. 사진 마음의숲

그의 말처럼 “끈질긴 아침 안에 머물기”를 택하며 제주 4·3을 매만지는 작가들이 있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작가 허영선은 지난달 16일 출판사 마음의숲에서 시집 『법 아닌 법 앞에서』과『우린 천둥의 밤을 지나온 자들이어서』를 동시 출간했다. 1980년 등단해 시집 『추억처럼 나의 자유는』(1983, 문학동네), 『뿌리의 노래』(2004, 당그래), 『해녀들』(2017, 문학동네) 등을 내며 줄곧 제주에 얽힌 기억을 시어로 풀어 온 그의 신작이다.

『법 아닌 법 앞에서』는 피해자들이 70여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고 명예를 회복하기 시작했던 2021년 3월 제주지방법원 재심법정의 순간을 잡아낸 시집이다. 시집『우린 천둥의 밤을 지나온 자들이어서』는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의 시간을 헤쳐 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녹아있다. 시인은 맺음말에 “적어도 시의 의무는 역사의 의무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며 “시 역시 목소리를 기억해야 한다는 자명한 사실”을 곱씹었다고 밝혔다.

전 제주시 부시장인 안우진 작가는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33.55 진실 청구』(더봄)를 지난달 26일 출간했다. 33.55는 제주에 있는 그의 집을 위도로 표기한 숫자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억울하게 사라진 이름들, 부당하게 빼앗긴 땅들, 그리고 세대를 넘어 이어진 진실을 좇는 미완성의 과제들은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라며 “이 소설은 그 숙제를 외면하지 않는 작은 시도이길 바랐다”고 했다.

『4·3, 아카이브로 본 역사』와 『4.3, 기억의 폭풍 속으로』 표지. 사진 혜화1117

올해 4월 3일에 맞춰 나오는 책도 있다. 제주 출신의 전직 기자인 허호준 작가는 100개의 장면으로 제주 4·3을 담은 기록집 『4·3, 아카이브로 본 역사』, 실존했던 두 인물의 이야기를 다룬 책 『4·3, 기억의 폭풍 속으로』를 3일 혜화 1117에서 출간한다. 『4·3, 기억의 폭풍 속으로』는 제주 4·3 평화문학상 논픽션 부문 수상작이다.

『사월에 부는 바람』 표지. 사진 한길사

제주 4·3의 문학적 발화를 시작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작가 현기영도 빼놓을 수 없다. 『순이 삼촌』(1978), 『제주도우다』(2023) 등을 통해 소설의 언어로 비극의 역사를 풀어 온 그는 지난해 3월 자전적 에세이 『사월에 부는 바람』(한길사)을 출간했다. 그는 줄곧 “4·3보다 무서운 것은 국민들이 4·3을 잊는 것”이라고 말해왔다.

한강은 『작별하지 않는다』 작가의 말에 이렇게 썼다. “몇 년 전 누군가 ‘다음에 무엇을 쓸 것이냐’고 물었을 때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바란다고 대답했던 것을 기억한다. 지금의 내 마음도 같다. 이것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빈다.”

4·3의 면면을 다룬 책엔 작가들의 사랑이 묻어있다. 허영선은『우린 천둥의 밤을 지나온 자들이어서』를 이렇게 맺었다. “내가 기억을 놓쳤을 때, 시는 어느 날 내게 말을 걸어온다는 것을 느낍니다. 당신의 말 못하는 진실을 시는 진술하고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서 시가 말한다면, 참혹했던 그해 겨울 사라진 사람들, 그 후 살아낸 사람들, 천둥의 밤을 지나온 이들에게 비로소 따스한 별빛이 닿기를.”

최혜리 기자 choi.hyer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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