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궁화호의 롱런을 기대한다
[배여진]
둘째 아들이 축구선수를 꿈꾸고 있다. 그냥 꿈만 꿨으면 좋았을텐데 그 꿈을 이뤄보겠다고 유소년 축구클럽에 들어가 전국 팔도를 다니면서 스토브리그와 축구대회에도 나간다. 운동을 하는 자식을 두면 첫 번째, 돈이 너무 많이 들고 두 번째, 엄마의 운전 실력이 일취월장 한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 정말이다.
운전을 즐겨하지 않는 나로서는 정말 울며 겨자 먹는 기분으로 운전을 하고 다닌다. 그래서 지방에 갈 일이 있으면 먼저 최대한 운전을 하지 않고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본다. 그러나 대부분 실패다. 강릉이나 부산, 경주 같은 큰 도시를 제외하고는 차 없이 이동하는 게 굉장히 힘든 일이다. 지방소도시에서 소도시로 이동을 하려면 대부분의 역에 정차하는 무궁화호나 시외버스를 이용해야 하는데 노선과 시간을 알아보다보면 결국 자차 이용을 선택하게 된다.
그러다 지난해 여름, 초등 유소년 축구대회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경주 화랑대기 축구대회를 앞두고 경상남도 양산에서 스토브리그가 열렸다. 고생하는 자식에게 엄마 얼굴이라도 좀 보여주겠다고 주말에 양산에 내려가 혼자 묵어야 하는데 생각보다 숙소가 비싸 싼 숙소를 알아보았다. 그리고는 부산역 근처에 위치한 도미토리를 예약했다.
양산 물금역에서 부산역까지 어떻게 이동하는 게 가장 빠를까 알아보니 물금역에서 부산역까지 기차를 이용하면 된단다. 게다가 시간을 잘 맞춰 무궁화호를 이용하면 숙소비와 교통비를 합쳐도 양산에서 묵는 것보다 훨씬 저렴했다. 무궁화호를 언제 마지막으로 이용했는지 기억도 안 났는데 실로 오랜만에 무궁화호를 탔다.
자리가 없어 입석표를 사고 복도에 서서 창밖 풍경을 보며 가는데 KTX에서는 느낄 수 없는 느리고 무거운 덜컹거림이 참으로 반가웠다. 물금역에서 부산역으로 가는 무궁화호, 새마을호 그리고 KTX 중 무궁화호는 매진이 다른 기차보다 좀 더 많았다. 짧은 거리에 몇 천 원 차이가 나다보니 무궁화호를 더 이용하려고 하는 것이 이용자들의 같은 마음이었다. 양산에서 부산역을 오가며 잊고 있던 무궁화호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았던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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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궁화호를 위하여 - 변경의 현실과 정치, 하승우(지은이) |
| ⓒ 한티재 |
이 책을 통해 이 소식을 접한 뒤 무언가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느린 것들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을까. 부정하고 싶지만 어느새 중년이 되어버린 나는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나의 일상이 느려지는 삶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덜컹덜컹 달리던 무궁화호에 가까운 미래의 나를 너무 이입시켰나 보다. 사실 사라질 무궁화호의 문제에 이렇게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건 내가 교통의 중심지인 서울에 살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무궁화호는 지방에서 소도시와 소도시, 소도시와 대도시를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해오고 있다. 저자는 국가적으로 지방의 인구소멸을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면서 정작 지방의 인프라를 줄이고 있는 현실을 꼬집는다.
며칠 전 전북 무주군에서 무주 주민들에게 1인당 반기별 40만 원, 연간 총 8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원한다는 뉴스를 봤다. 인구감소와 지역 소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실험적 정책이라고 하는데 이 뉴스를 보는 내내 '이 정책이 지방 인구소멸을 막기 위한 대책이라는 건가?' 하는 질문과 함께 내 고개는 계속 갸우뚱했다.
저자 하승우는 이 책에서 거꾸로 가는 한국의 공공교통 정책을 비판한다. 이 책에 따르면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는 시외버스와 고속버스의 노선, 그리고 버스의 수는 수도권을 제외하면 지방에서 지방으로 다니기가 매우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한다. 더불어 KTX와 새마을호는 운행 횟수가 늘고 있는 반면, 무궁화호의 운행 횟수는 줄어들고 있어 2028년 90%가량 무궁화호가 폐차되고 나면 KTX나 새마을호가 서지 않는 지역의 주민들은 무엇으로 이동해야 하는지 묻고 있다.
사실상 지방의 인구소멸은 국가가 조장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스스로 만들어낸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무슨 효과가 있는지도 모를 천문학적인 돈만 뿌리고 있는 것이 맞는 것인지 계속 질문한다. 저자는 지방의 인구소멸을 막기 위해서는 공공교통의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도시와 도시가 연결되어야 도시에 살 사람도 들어온다는 것이다.
'변방'에 사는 저자는 점점 줄어드는 공공교통 때문에 불편을 겪는 직접적인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럴까. 지방의 인구소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접근 방식의 문제, 자꾸만 실패를 반복하는 지방정부가 벌이는 대형사업들의 문제, 요새 크게 대두되고 있는 광역 지자체간의 통합 이슈 등에 대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바로 와 닿게 전달한다. 역시 '당사자'들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다.
저자 하승우는 이 책에서 공공교통과 지방 도시의 문제점뿐만 아니라 기후위기, 정치, 관료주의의 범주까지 이야기를 확장해나간다. 연구자이자 활동가인 저자는 그의 사유가 활자 속에만 머물지 않고 직접적인 활동들을 통해 깊이를 담아낸다.
오는 6월, 지방선거가 다가온다. 선거철은 참 어렵고 혼란스럽다. 말하면 다 이루어질 것 같이 쏟아내는 공약들, 정파와 당을 떠나 무슨 일이 일어나도 무조건 국민의 편에 설 것 같은 후보들, 그리고 이 틈을 타 어떻게든 정치에 입문하고자 하는 사람들 등 서로 얽히고설킨 공간에서 '인권'의 언어는 참 이용당하기도 쉽다.
이에 저자는 나오는 글을 통해 새로운 활동보다는 새로운 방향성과 의미 부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비슷하나 활동을 하더라도 어떤 목표, 어떤 가치를 염두에 두고 활동해야 할지 판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무궁화호는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고, 그로부터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왔다. 무궁화호가 없어지면 사람과 사람의 연결 또한 끊어지는 것일까? 정치인들이 입에 바른 소리를 하며 당장 눈에 보이는 정책들을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공공성의 후퇴를 막고, 사람과 사람을 끊임없이 연결해 낼 수 있는 방법들을 진심을 담아 강구 해보길 바란다.
그러지 않는다면 언젠가 대한민국에는 두 개의 도시만 남을 것 같기 때문이다. 서울시와 비(非)서울시만 남게 되지 않을까. 조금 우습긴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서울시를 제외한 나머지 도시들도 통합하자는 말이 분명 나올 것 같다. 공공재는 손해를 보더라도 지켜야 하는 이유가 있는 거 아니겠는가. 나는 여전히 무궁화호의 롱런을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천주교인권위원회 소식지 교회와인권 337호에도 실립니다. 글쓴이 배여진 사단법인 천주교인권위원회 이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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