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바이오 역대급 성적의 이면…“생존형 수출에 불리한 조건 감수” [K바이오 수출 30조원 시대②]
전임상 단계 ‘조기 수출’에 협상력 약화
실익 지킬 법률적 설계 중요성 커져
추가 개발 참여 권한‧개발의무 등 명시해야
| 정부가 반도체를 이어갈 제2의 먹거리 산업으로 ‘제약‧바이오’를 낙점했다. 2030년까지 기술수출 30조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K-바이오는 지난해 기술수출 20조원을 돌파하는 성과를 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글로벌 빅파마를 배출해낸 제약산업 선도 국가와 비교하면 자금력, 임상 경험 등도 적은 데다 글로벌 규제 환경도 급변하고 있다. K-바이오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과제는 무엇이 있는지 3편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주] |

지난해 국내 제약·바이오 기술수출 규모가 처음으로 20조원을 돌파하며 가파른 양적 성장을 이뤘으나, 정작 계약의 내실은 외형 성장세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 단위 계약 총액에도 불구하고 확정 수익인 선급금(Upfront) 비중은 한 자릿수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자본력이 부족한 바이오벤처들이 당장의 운영비 확보를 위해 전임상 등 초기 단계에서 기술을 넘기는 ‘생존형 수출’에 주력하면서 협상 주도권을 잃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2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바이오텍 기업들은 글로벌 빅파마를 상대로 조 단위 대형 계약을 잇달아 성사시키며 경쟁력을 입증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뇌혈관장벽 통과 플랫폼을 통해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과 4조1104억원, 일라이 릴리와 3조8072억원 규모의 초대형 계약을 체결했다. 알테오젠 역시 메드이뮨에 피하 주사제 기술(ALT-B4)을 1조9639억원 규모로 이전하며 글로벌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다만 지난해 조 단위 계약이 여러 건 체결됐음에도 불구하고 선급금 비중은 한자릿수에 머물렀다. 에이비엘바이오의 경우 두 건의 계약 모두 총액은 3~4조원대에 달했으나, 선급금은 각각 739억원(1.8%)과 585억원(1.5%) 수준에 머물렀다. 나이벡의 폐섬유증 치료제(NP-201) 기술이전 계약 또한 총액 5952억원 대비 선급금은 1.8% 수준인 109억원에 그쳤다. 통상 글로벌 기술이전 계약에서 선급금 비중이 한자릿수 후반대에서 10% 중반대를 형성하는 것과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다.
기술수출은 일반적으로 신약 후보물질이 임상시험 단계에 진입한 이후 특정 기업에 독점적 개발·제조·상용화 권리를 부여하고, 그 대가로 선급금과 단계별 기술료(마일스톤), 향후 판매 로열티를 받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선급금은 반환 의무가 없는 확정 수익으로, 이 비율이 높을 수록 기술의 가치와 신뢰도가 높다고 해석할 수 있다.

선급금 비중이 낮은 배경에는 국내 기업들이 임상 데이터가 부족한 연구 개발 초기 단계에서 ‘조기 수출’ 관행이 자리잡고 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국내 기업들이 주로 전임상 단계에서 조기 기술수출을 진행하다 보니, 전체 계약 규모는 커 보여도 초기 확정 수익인 선급금 비중은 낮게 책정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자본력이 부족한 국내 바이오벤처 기업들은 임상을 진전시킬 여력이 없어 운영비 확보를 위한 ‘생존형 수출’을 선택하는 실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신약 개발을 위해 상당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데, 바이오벤처 기업들은 데스밸리(죽음의 계곡)을 감당하기 어렵다 보니 조건을 따지지 않고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문제는 연구 초기 단계에서 기술을 넘길 경우, 협상력 저하로 인한 불리한 조건을 감수할 위험이 크다는 점이다. 기술을 이전 받은 제약사가 계약 후 개발을 고의로 늦추거나 방치하는 이른바 ‘셸빙(Shelving)’ 리스크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수조원의 연구개발(R&D) 예산을 움직이는 글로벌 빅파마 입장에선 수백억원의 선급금은 개발을 중단하더라도 부담이 크지 않은 정도다. 자사 주력 제품과 유사한 기술이 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일단 권리를 확보한 뒤 개발 우선순위에서 배제하는 사례도 있다.
이에 따라 기술수출 시 리스크 관리를 위한 법률적 설계가 중요해지고 있다. 이보형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초기 단계 기술이전은 기업 입장에서 자금 확보와 리스크 분산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협상력 측면에서는 불리한 조건을 수용해야 하는 경우도 현실적으로 존재한다”라며 “이를 완화하기 위해 특정 적응증이나 지역에 한정된 라이선스 구조를 설계하거나, 향후 권리 회수 옵션과 추가 개발 참여 권한을 확보하는 방식이 활용된다”고 설명했다.
박민영 법무법인 세종 선임외국변호사도 “개발 지연 또는 상업화 실패를 방지하기 위해 일정 수준의 개발 의무(diligence obligation)나 최소 투자 의무를 라이선시(기술을 사간 기업)에게 부과하는 것도 중요한 보호 장치가 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라이선시가 기술을 확보한 이후 적극적으로 개발을 진행하지 않는 셸빙 리스크를 방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기술이 반환도리 경우를 대비해 국내 기업이 독자 개발이나 재수출에 나설 수 있도록 법적 권리 확보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변호사는 “초기 원천기술과 달리, 계약 수행 과정에서 생성되는 성과물은 권리 주체가 불명확해질 수 있기 때문에, 계약 단계에서 명확히 규정하지 않을 경우 향후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계약 초기 단계에서부터 계약 종료 또는 해지 시 기존에 이전된 권리와 데이터, 개량 기술까지 포함해 어느 범위까지 라이선서에게 반환되는지를 구체적으로 규정해야 향후 재수출이나 독자 개발이 가능하다”고 제언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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