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날 붙잡을 존재”…2395명 살린 ‘그 전화’의 아버지

처음엔 이용자가 많을 거란 생각은 못 했다. 그래도 칼바람 부는 겨울 걸레와 세제를 품에 안고 한강 다리들을 오가며 열심히 닦았다. 누군가 전화기 옆에서 자살을 시도할까 잠을 설치다가 한밤중 택시 타고 가보기도 했다. 민간 자살예방 대표 플랫폼인 ‘SOS생명의전화’를 주도한 박성민(44)씨 이야기다.
자식처럼 챙기던 SOS생명의전화는 쑥쑥 커서 올해로 15살이 됐다. “내 목소리를 들어주기 위해 남은, 마지막까지 날 붙잡아줄 수 있는 존재”. 지난달 27일 중앙일보와 만난 박씨의 표현이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이 한강 교량 20곳에 75대를 설치해 24시간 운영 중이며, 더 늘어날 예정이다. 119 출동 등으로 자살 시도자 2395명(지난해 말 누적)을 구했다. 다음 달엔 ‘동생’ 격인 SOS마음의전화가 서울 도심에 생겨 일상 속 위기 상담까지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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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생명보험재단서 '한국형 자살예방전화' 주도
박씨가 SOS생명의전화와 연을 맺은 계기는 2010년 지하철 스크린도어의 설치가 완료됐을 때다. 지하철역 대신 한강 교량으로 자살 시도가 옮겨가는 풍선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의 자살예방 담당자였던 그는 서울소방재난본부, 사회복지법인 생명의전화와 해법을 찾으려 머리를 맞댔다. 미국·호주 사례 등을 참조해 상담과 구조(119 신고)가 동시에 이뤄질 수 있는 ‘한국형 자살예방전화’를 재단 주도로 한강 교량 위에 만들기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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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대교만 수십번 찾아…감사 편지에 뿌듯
다행히 2011년 한남·마포대교 설치를 시작으로 SOS생명의전화는 빠르게 자리 잡았다. 특히 마포대교는 마포·여의도를 잇고 보행로가 크다는 등의 이유로 힘든 이들의 상담이 몰렸다. 박씨도 SOS생명의전화의 상징이 된 이 다리만 수십번 방문했다.
한번은 고장 점검 등을 위해 마포대교 전화기에서 119 버튼을 누른 뒤 별말 없이 바로 끊었다. 그런데 얼마 뒤 수상구조대와 구급차가 빠르게 다가와 깜짝 놀랐다. 자살 시도로 오인한 것이다. 그는 “구급대원이 자살 시도자인 줄 알고 안타깝게 쳐다보던 눈빛이 아직도 기억난다. 당황했지만 그만큼 전화의 중요성을 깨달은 순간”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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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높은 자살률…"이야기 하고 들어줘야"
작은 전화기가 이틀에 한 명꼴로 생명을 살리고 있지만, 한국의 자살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자살률은 2011년 10만명당 31.7명에서 2024년 29.1명으로 소폭 내려왔을 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를 지킨다.
박씨는 SOS생명의전화 운영이 안정화된 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을 떠났다. 수년 전부터 노인 돌봄 관련 소셜벤처(호호웍스)를 운영한다. 자살예방 업무는 놓았지만, 관심은 여전히 놓지 않고 있다. 그는 “결국 이야기를 하고 들어주는 게 핵심이다. 편하게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하면 우울해지고, 자살에 이를 수 있다”면서 “자살이든, 노인 돌봄이든 우리 사회가 겪는 문제는 공동체 회복에 답이 있다. 작은 커뮤니티라도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역할이 커질 줄 몰랐던 SOS생명의전화엔 고마우면서도 복잡한 감정이 든다.
" “전화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 줄지 않지만, 결국 이용률이 내려가고 없어지는 게 맞죠. 하지만 당장 없어지긴 힘들 테니 이 전화만큼은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도와줄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랍니다. 상담자들이 호소하는 채무·우울 문제 등이 공공 부문과 적극적으로 연계돼 자살 위험을 근본적으로 줄여 주면 좋겠습니다.” "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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