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4회 우승국이 3연속 본선 탈락...이탈리아 축구의 멸망, 한국 축구도 남일 아니다

배지헌 기자 2026. 4. 2.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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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이후 20년, 이탈리아 축구의 구조적 몰락
- 세리에A 외국인 범람·유소년 외면·협회 불신 '3중 위기'
- "2030년 아니라 20년 뒤를 위한 재건" 목소리
제나로 가투소 감독(사진=유튜브 화면 갈무리)

[더게이트]

"원래 종말은 속편이 없어야 정상이지만, 이탈리아 협회는 이를 3부작 시리즈로 만들어버렸다."

스포츠 매체 '디 애슬레틱'의 제임스 혼캐슬 기자가 이탈리아의 3연속 월드컵 본선 탈락을 두고 한 말이다. 4회 우승에 빛나는 아주리 군단은 3월 31일(한국시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 승부차기 끝에 무릎을 꿇었다. 월드컵 우승 경험이 있는 팀 중 3회 연속 본선 진출에 실패한 것은 이탈리아가 역대 처음이다.

이탈리아 축구의 멸망은 과거의 영광을 기억하는 이들에겐 충격적인 장면이지만,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진 날벼락은 아니었다. 혼캐슬 기자는 "단순한 불운이 아니라, 결정적인 순간마다 반복된 '디테일의 실패'가 누적된 산물"이라고 짚었다.

2018년 스웨덴전에선 감독 교체 타이밍을 놓쳤고, 2022년엔 조르지뉴의 연이은 페널티킥 실축으로 자멸했다. 이번엔 전반 41분 알레산드로 바스토니의 퇴장이 결정타였다. 노르웨이에 발목이 잡혀 플레이오프로 내몰린 시점부터 이미 한 번의 실수로도 끝장나는 벼랑 끝이었고, 바스토니의 퇴장은 이탈리아를 그 벼랑 너머로 밀어버렸다.
거센 비난을 받는 이탈리아 대표팀(사진=X 화면 갈무리)

2006년의 영광이 가린 것들

아이러니하게도 이탈리아가 마지막으로 월드컵 16강 무대를 밟은 것은 우승을 차지했던 2006년이다. 당시의 영광이 오히려 시스템 곳곳에서 진동하던 악취를 대충 덮은 방향제 역할을 한 셈이다. 이탈리아 축구인 아멜리아는 NBC 뉴스 인터뷰에서 "2006년 우승이 구조적 한계를 가렸다"며 "구단들은 유망주를 믿지 않았고 장기적인 인프라 투자에 인색했다"고 꼬집었다.

세리에A의 자국 선수 외면은 고질병이다. 즉시 전력감인 외국인 선수에만 매달리면서 이탈리아의 어린 재능들이 성인 팀으로 올라오는 통로가 꽉 막혔다. 나폴리의 아우렐리오 데 라우렌티스 구단주는 "20팀 체제의 리그가 선수들을 혹사하고 망가뜨리고 있다"며 외국인 쿼터 제한과 리그 구조 개혁을 요구하고 나섰다. 2006년만 해도 유럽 수익 상위 7개 팀 중 3개가 이탈리아 구단이었지만, 2025년에는 인테르 밀란이 11위에 겨우 턱걸이할 만큼 경제적 경쟁력도 쪼그라들었다.

협회를 향한 분노는 임계점을 넘었다. 가브리엘레 그라비나 이탈리아 축구협회(FIGC) 회장은 2018년 취임 이후 세 번의 월드컵 진출 실패를 모두 지켜봤다. 그럼에도 탈락 확정 직후 사퇴를 거부하며 버티기에 들어갔다. 안드레아 아보디 체육부 장관이 "밑바닥부터 재건하려면 지도부 교체가 시작"이라며 공개 촉구에 나섰고, 의회에서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비판이 쏟아졌다.

이탈리아 레전드 로베르토 바조가 2013년 FIGC 기술이사직을 던지며 남긴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당시 바조는 "900쪽에 달하는 내 개혁안은 사문서가 됐고, 배정된 1,000만 유로(약 174억 원)는 구경도 못 했다"고 토로했다.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했던 협회의 관성이 10년 뒤 '본선 탈락 3부작'이라는 비극으로 돌아온 셈이다.
이탈리아 축구 대표팀(사진=유튜브 화면 갈무리)

"2030년이 아니라 20년 뒤를 준비하라"

이탈리아 축구에 희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유소년 팀들은 최근 17세 이하, 19세 이하 유럽선수권을 잇달아 제패하며 잠재력을 증명했다. 밀란 역대 최연소 데뷔 기록을 깬 프란체스코 카마르다 같은 재원도 등장했다. 문제는 이 싹들이 자랄 토양이 여전히 척박하다는 데 있다. 리카르도 칼라피오리 같은 유망주들은 낡은 경기장과 빈약한 재정, 명확한 비전의 부재에 실망해 자국 리그 대신 프리미어리그를 택하고 있다. 

제임스 혼캐슬 기자는 "원래 종말은 속편이 없어야 정상"이라고 일갈했다. 이탈리아 협회는 이를 3부작 시리즈로 제작해버렸다. 지금 아주리 군단에 필요한 것은 당장 4년 뒤의 성과가 아니다. 20년을 내다보는 뼈를 깎는 리빌딩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아주리의 월드컵 시계는 영원히 2006년에 멈춘 채 녹슬어갈지도 모른다. '이탈리아 축구 멸망사'라는 비극적인 시리즈의 후속작을 4년 뒤에 또 마주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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