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현의 시시각각] 벚꽃처럼 짧은 유권자의 화양연화

김승현 2026. 4. 2.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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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 논설위원

미술관에서 상어를 봤다. 수조 속에서 그 옛날 ‘죠스’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 있어서 많이 놀랐다. 4m 넘는 타이거 샤크는 포름알데히드 용액이 가득 찬 수조 안에 있었다. 바닷속에서 먹이를 향해 돌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죽어 있는 박제였다. 미술계의 악동으로 불리는 영국의 현대미술 작가 데이미언 허스트(61)의 35년 전 작품이다. 아내에게 이끌려 국립현대미술관에 갔다가 최근 전시가 시작된 허스트의 작품을 접한 건 문외한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 생명의 일시성 은유한 허스트 작품
열흘만에 지는 벚꽃의 미학과 연결
선거철에만 국민 보는 정치 연상돼

데이미언 허스트가 자신의 작품 '살아있는 자의 마음 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시스


1991년 영국 사치갤러리에 처음 전시돼 세계 미술계에 논란을 일으켰다는 작품은 제목도 난해했다.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이란다. 죽음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인간이 정작 자신에게 죽음이 닥칠 수 있음을 실감하지 못하는 역설을 표현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수조 앞에서 나도 모르게 죽는다는 것에 대해 몇 가지 연상을 했던 것 같다. 허스트의 메시지는 긴 세월을 관통하고 있었다. 작가가 상어를 호주에서 구할 때 “당신을 잡아먹기에 충분한 크기”라고 주문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허스트의 통찰대로 인간은 늘 죽음의 공포와 삶에 대한 갈망, 그 사이 어디쯤에 서 있다. 그 구조를 천착한 작가는 다른 작품에서도 꾸준히 삶의 일시성(一時性)을 은유한다. 잘린 사람의 머리 옆에서 미소 짓는 16세 때 작가의 사진, 소머리 옆에서 성장하는 구더기와 파리 떼, 백금과 다이아몬드를 박은 두개골, 수천 마리 나비의 날개로 재현한 스테인드글라스…. 섬뜩하면서도 허망한 감정이 생기는 작품들은 지금 살아있음을 잠시 돌아보게 한다.

그랬던 허스트는 50대 중반의 나이에 벚꽃에 꽂혔다. 3년간 벚꽃 그림 100여 작을 그렸고, 2021년 프랑스의 미술관에서 전시했다. 죽음을 다룬 설치미술과 전혀 다른 화사한 회화였지만, 메시지는 유사하다. 허스트는 “벚꽃에는 아름다움, 삶, 죽음의 문제가 모두 담겨 있다”고 소개했다. 화려하게 피었다 허무하게 져버리는 벚꽃을 보며 우리가 매년 느끼는 감정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에 긴 한숨을 내쉬지 않았나. 이맘때 내리는 봄비가 낙화를 재촉할까 봐 얼마나 애태웠던가. 일시성의 허전함을 벚꽃만큼 강렬하게 표출하는 소재가 또 있을까 싶다. 서울 여의도 봄꽃축제가 내일(3일) 시작하지만 필자의 다음 칼럼이 게재될 2주 뒤면 벚꽃은 온데간데 없을 것이다.

주변에서 자주 보는 ‘꽃사랑 중년’에게서도 데이미언 허스트를 발견한다. 지난 일요일, 교회 정원에 핀 수선화를 찍는 중년 여성이 연신 “아이고 짠하다”고 혼잣말을 했다. 긴 겨울을 견뎌 찾아온 봄꽃에 대한 감탄, 금방 사라질 게 안타까운 탄식이 교차했다. 꽃처럼 젊었던 ‘화양연화’가 순식간임을 겪어봤기에 활짝 핀 꽃송이가 더욱 애잔한 것이다. 봄꽃에는 아름다움, 삶, 죽음, 곧 우리 인생이 담겨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제주 한라대학교에서 열린 '제주의 마음을 듣다' 타운홀 미팅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공교롭게 봄꽃 축제 기간과 겹친 6·3 지방선거 후보 경선을 지켜보며 또 다른 일시성의 허무함을 느낀다. 후보들의 이름과 얼굴, 약력 등이 적혀 무작위로 수신되는 수많은 문자메시지는 러브레터처럼 감미롭다. 벚꽃 대하듯 경이로움 가득한 눈빛을 유권자에게 보낸다. 램프의 요정 지니처럼 못 해줄 게 없다고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경험적으로 안다. 선거가 끝나고 난 뒤 무대 위엔 정적만이 남는다는 걸. 이재명 대통령은 “정치는 국민의 눈높이에서 ‘잘하기 경쟁’이 돼야 한다”(3월 30일 제주 타운홀미팅)고 했는데, 그 경쟁은 절대로 지속되지 않는다. 수많은 정치인을 탄생시킨 우주의 기운을 보여주었건만, 유권자는 길바닥에 나뒹구는 벚꽃잎처럼 곧 잊힌다. 너무도 짧은 화양연화가 이번 계절에도 반복되고 있다.

김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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