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라드 칼럼] 루카셴코의 북·미 중재, 한국에 ‘독’될 수도

2026. 4. 2.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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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나는 북한과 벨라루스 두 나라에서 대사를 지냈다. 그래서 지난달 25~26일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방북을 눈여겨봤다. 이번 방문에는 두 가지 의문이 남는다. 우선 루카셴코의 평양방문 목적이다. 양국 정상은 친선 조약에 서명한 전문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농업·보건·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협력을 약속했다. 양국은 이번 조약을 계기로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겠다고 했지만 실제 그리 될지는 미지수다. 경제적으로 궁핍한 두 나라의 협력에 한계가 있고 양국의 무역량도 미미하다. 루카셴코가 밝힌 평양 주재 벨라루스 대사관 신설 정도의 상징적인 조치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 의문 남긴 루카셴코의 평양행
북·미 중재자 자임했을 수도
성급한 북·미 정상회담은 위험

양국의 정상회담 시점도 석연치 않다. 루카셴코의 평양 방문은 서두른 인상을 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9월 3일 베이징에서 루카셴코를 초대했고, 그로부터 준비 시간이 충분했음에도 평양의 환영 인파는 적었고 평양시내에 벨라루스 국기도 드물었다. 환영 공연 장소도 소규모 아이스링크였다. 2024년 6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국빈 방문과 차별화를 두려는 북한의 의도를 감안하더라도, 북한처럼 의전에 집착하는 나라에서 이례적인 ‘소홀함’으로 보일수 있는 부분이다.

루카셴코가 지구 반바퀴를 날아 평양을 찾은 건 미국과 벨라루스의 관계변화라는 관점에서 분석할 수 있다. 그는 최근 서방과 관계 정상화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가 지난해 말 벨라루스 수도인 민스크를 찾은 걸 계기로 루카셴코는 야권 지도자인 티하놉스키를 포함한 수백 명의 정치범을 석방했다. 특히 지난달 19일 존 코일 특사의 방문 이후 미국과 정상회담 가능성 등에 고무된 분위기다. 제재 완화와 미국과의 무역 확대, 투자유치 등은 벨라루스에 엄청난 기회다. 루카셴코의 평양 방문 목적을 추정할 수 있는 부분이다. 자신을 ‘위대한 중재자’라고 믿고 있는 그가 북한과 미국의 메신저로서 자신의 유용성을 증명하려 할 것이다.

또 이란 전쟁도 변수다. 트럼프는 전쟁의 수렁에서 벗어나 외교적 성과를 통해 관심을 분산시킬 필요를 느끼고 있다. 특히 중간 선거(11월)가 다가오면서 더욱 그렇다. 루카셴코는 김정은을 설득해 트럼프와 대화 테이블을 마련하는 게 미국과의 협상에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는 길이라 판단했을 것이다. 루카셴코의 방북이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것, 그리고 회담 후 벨라루스 외무장관이 “지구상에서 가장 큰 나라(미국)와 관계를 논의했다”고 밝힌 게 힌트다.

김정은은 미국과의 대화재개에 관심이 있을까. 북한은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중국을 통한 정제유 수입이 제한될 가능성이 커지며 연료 부족에 직면해 있다. 지난달 20일 러시아에 유류 공급 확대를 요청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미국과 대화를 통한 경제 지원은 북한에겐 분명 매력적인 선택지다. 김정은은 성과가 급한 트럼프를 상대로 자신이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트럼프와 김정은 모두에게 루카셴코라는 중재자는 유용한 도구인 셈이다. 양측이 직접 접촉하다 판이 깨질 위험성도 덜하다. 하지만 루카셴코를 통한 정상회담 추진은 위험하다. 루카셴코가 성과에 급급해 양측의 기대치를 현실과 다르게 부풀린다면 2019년 하노이 노딜이 재현될 수 있다. 두 번째 실패는 북·미 관계에 치명적이다.

더 큰 문제는 한국의 입지 약화다. 트럼프는 한반도의 미래보다 당장 국내 유권자들에게 과시할 이벤트에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은 이를 이용하려 할 것이다. 비핵화 논의는 물론 대화 과정에서 한국 배제를 주장하며, 미국의 북핵 인정과 미국의 평양 연락사무소 개설 같은 큰 카드를 요구할 것이다. 대북 제재 해제와 경제 지원을 원할 텐데, 트럼프는 이를 수용하고 비용을 한국에 부담하라고 압박할 수 있다. 페이스 메이커를 자처하는 한국 정부는 북·미 정상회담에 개입을 시도하겠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 결론적으로 루카셴코가 촉발한 이 성급한 정상회담 시나리오는 한반도 정세를 급격히 악화시킬 위험한 시나리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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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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