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희의 문화참견] 우리는 왜 연프에 빠지나

2026. 4. 2. 00:1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양성희 문화칼럼니스트

“연애는 사치” “강아지랑 놀죠”. 지난 밸런타인데이 중앙SUNDAY 기사 제목이다. 한창 연애해야 할 19~24세 청년의 79%, 25~29세 청년의 58%가 연애하지 않는다고 보도했다.(2024, 보건사회연구원) 학업과 취업난 속 연애에 따르는 ‘시간과 감정의 에너지 소모’(53%), ‘경제적 부담’(40%)을 꺼렸다.(2025, PMI 조사) 애인보다 동성 친구나 반려동물과의 교감이 편했고, 밸런타인데이에 여자 친구들끼리 모여 노는 ‘갤런타인데이(걸+밸런타인데이)’란 말까지 등장했다. ‘비연애’ 시대의 초상이다.

「 3대장 등 올들어 8편 방영
해외에서도 인기, 전성시대
비연애 시대, 로맨스 대리 체험
현실 연애 점점 멀어지는 역설

인기리에 종영한 티빙 ‘환승연애’ 시즌4. [사진 티빙]

반면에 TV나 OTT에 출연해 연인을 찾는 데이팅·연애예능 프로그램(연프)은 어느 때보다 인기다. 올들어만도 티빙 ‘환승연애’ 시즌4, 넷플릭스 ‘솔로지옥’ 시즌5, SBS 플러스 ‘나는 솔로’ 30기가 방송됐다. ‘환승연애’는 헤어진 전 연인과 함께 출연해 재회하거나 새 연인으로 환승하는 프로그램이다. 여름철 무인도 배경의 ‘핫바디’ 출연자들로 유명한 ‘솔로지옥’은 이번 시즌5가 넷플릭스 글로벌 톱 10(비영어 TV쇼 부문) 2위까지 오르며 기염을 토했다. 해외에 커플팬이 다수 양산됐다. ‘나는 솔로’는 일종의 서민 버전이다. 화려한 외모의 연예인·인플루언서 지망생 중심인 두 프로와 달리 상대적으로 연령대가 높고, 평범한 출연자들이 결혼 상대를 물색한다. 이외에도 연상-연하 컨셉트인 ‘누난 내게 여자야’ 시즌1(KBS2), 참가자와 같이 합숙한 양가 어머니가 최종 선택의 관문이 되는 ‘합숙맞선’ 시즌1(SBS), 퀴어 연프 ‘남의 연애’ 시즌4(웨이브)도 선보였다.

현재는 연예인 2세들이 출연하는 ‘내 새끼의 연애’ 시즌2(tvN story·ENA)가 방송 중이다. 연예인·스포츠스타들이 패널로 나와 자기 자녀의 연애를 지켜본다. 오는 14일부터는 ‘환승연애’ ‘솔로지옥’과 함께 ‘연프’ 3대장으로 꼽히는 채널A ‘하트 시그널’ 시즌5가 시작된다. 넉 달 동안 무려 8개 연프가 방송됐다.

넷플릭스 ‘솔로지옥’ 시즌5. [사진 넷플릭스]

#가성비 장르에 ‘빌런 도파민’
이처럼 각양각색의 연프가 여러 시즌을 거듭하며 쏟아지는 것은, 일반인 출연 등으로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저렴한 가성비 때문이다. 연프가 유명인 배출의 지름길이 되면서 출연을 희망하는 인력 풀이 끊이지 않는 것도 제작진에게는 이점이다. 비주얼과 스펙이 뛰어난 선남선녀들이 마음에 드는 상대를 얻기 위해 경쟁하는 과정 자체의 재미에, ‘빌런’ 등 다양한 인간군상이 보여주는 인간 심리의 다이내믹이 인기 요인이다. 특히 빌런들은 화제성과 재미를 견인하는 중심인물로, 최근에는 악플 세례를 받는 ‘욕받이’를 넘어 빌런 캐릭터의 ‘분탕질’을 예능적 요소로 즐기는 시청자들도 늘고 있다.

최근 연프에서 새롭게 두드러지는 점은, 연애의 환상을 대리 체험하는 로맨스물로 받아들이며 과몰입하고 그것이 종영 후 프로그램 밖으로까지 이어진다는 점이다. 과거 ‘짝짓기’ 프로그램이라 불리던 장르명이 ‘연프’로 바뀐 것부터가 그렇다. 배우가 가상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로맨스 드라마와 달리 실제 인물의 대본 없는 ‘찐연애담’이라 생생한 재미가 크고, 과몰입이 더 잘 일어난다. 시청자들은 로맨스 드라마에서 특정 러브라인을 지지하는 것처럼 특정 커플 조합을 응원한다. 자신이 원하는 상대와 맺어지지 않으면 라이벌 출연자에 대한 안티로 돌변하거나, 선택의 진정성을 의심하기도 한다. 로맨스 드라마 팬들이 그러는 것처럼 커플의 서사에 빠지고 설렘 포인트들을 짤로 만들어 소비·공유한다.

방송 중인 tvN스토리 ‘내 새끼의 연애’ 시즌2. [사진 tvN]

#현실 커플의 ‘찐연애’ 과몰입
프로그램에서 맺어진 ‘최커(최종커플)’가 종영 후에도 ‘현커(현실커플)’인가 여부는 가장 뜨겁고 집요한 이슈다. 일단 현커의 리얼 로맨스 훔쳐보기만큼 자극적이고 설레는 것이 없어서다. 사랑보다는 홍보 목적으로 나오는 출연자가 많다는 의심 속에 커플의 진정성을 따져 묻기도 한다. 이런 시청자의 요구를 반영해 넷플릭스는 ‘솔로지옥’ 시즌5 종영 후 최커의 현커 여부를 밝히는 스핀오프 ‘리유니언’을 공개했다.

연프를 통해 탄생한 인플루언서들은 SNS나 유튜브를 통해 일상을 공개하고 제품 광고 등으로 쉽게 수익을 올린다. ‘솔로지옥’5에 출연했던 한 여성 모델은 “아무리 해도 늘지 않던 4만 팔로워가 방송 출연 이후 단숨에 137만을 넘어섰다. 모델 커리어에 크게 도움된다”고 말했다. ‘환승연애’ 출신 두 여성 유튜버는 “앞으로 결혼·출산·육아 등을 전부 유튜브에 공개하고 싶다”며 “프로포즈 받는 장면부터 찍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시즌2 제작이 확정된 SBS ‘합숙맞선’. [사진 SBS]

최커·현커들은 커플유튜브나 럽스타그램(러브+인스타그램)을 통해 커플 인증을 한다(비공개나 제한적인 공개연애를 택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공개 커플들이 보여주는 연애의 내용과 방식. 외모부터 빼어난 이들은 해외여행, 명품, 유명 식당 순례, 럭셔리 이벤트 등으로 남부러울 것 없는 애정을 인증한다. 완벽한 커플의 럭셔리 연애담의 완성이다. 연프 관련 유튜브에 나온 한 성형외과 의사는 “잘 나고 잘 생긴 이들의 연애를 훔쳐보다 보면 점점 현실에서는 연애를 안 하고 못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연프가 제공하는 연애의 조건·자격에 동의하면서 연애를 특출난 사람들의 전유물처럼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비연애 시대, 연애의 환상을 팔며 대리연애 체험으로 소비되는 것이 연프다. 연프속 환상적 연애가 넘칠수록, 평범하고 초라하기도 한 현실 연애가 자리할 여지는 좁아진다. 연프 전성시대의 역설이다.

양성희 문화칼럼니스트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