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숙 된 사돈…롯데·태광 또 전쟁?
롯데홈쇼핑(법인명 우리홈쇼핑)을 둘러싼 롯데그룹과 태광그룹 갈등이 다시 격화하고 있다. 지난 3월 13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롯데쇼핑이 이사회 구성을 기존 5 대 4에서 6 대 3으로 바꾸며 경영 주도권을 더 강화하자, 2대 주주인 태광산업은 김재겸 대표 해임을 위한 임시 주주총회 소집을 요구하며 맞불을 놨다.
롯데홈쇼핑은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태광 측은 “20년간 유지된 견제와 균형을 일방적으로 깼다”고 반발한다. 겉으로는 이사회 재편과 내부 거래 절차를 둘러싼 충돌처럼 보이지만, 뿌리는 2006년 우리홈쇼핑 인수전에서 시작된 20년 묵은 경영권 갈등이다.
롯데홈쇼핑 최대주주는 지분 53.49%를 보유한 롯데쇼핑이다. 태광그룹 지분은 44.98%다. 태광산업 27.99%, 대한화섬 10.21%, 티시스 6.78%를 합친 수치다. 단순 지분율만 보면 롯데쇼핑이 우위다. 다만 태광 지분도 45%에 육박해 무시하기 어렵다. 경영권을 직접 쥐진 못해도 주요 안건을 견제하고 회사 의사결정에 제동을 걸기엔 충분하다. 실제로 롯데홈쇼핑 이사회는 오랫동안 롯데 측 5명, 태광 측 4명 구도로 유지됐다. 최대주주가 롯데임에도 태광이 이사회 안에서 실질적인 견제력을 행사하며 나름의 균형을 유지해온 배경이다.


이사회 6 대 3…롯데 힘 더 세졌다
그랬던 균형 구도가 최근 주총에서 깨졌다. 지난 3월 13일 정기 주총 이후 이사회는 롯데 측 6명, 태광 측 3명으로 재편됐다. 롯데는 사내이사 3명과 사외이사 3명, 태광은 임원과 사외이사를 포함해 3명이다. 겉으로는 이사 1명만 바뀐 것처럼 보이지만 의미는 작지 않다. 이사회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한 특별결의 안건도 롯데 측 단독 처리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롯데가 지분 우위에 있어도 이사회 안에서는 태광이 일정 부분 견제권을 행사했다. 이제는 이사회 내부에서도 롯데가 사실상 단독 주도권을 쥔 셈이다. 최근 주총 이후 태광산업이 강하게 반발한 이유다.
태광 측은 이번 이사회 재편을 단순한 인사 조정이 아니라 공동 경영의 틀을 깨고 2대 주주를 사실상 배제하려는 조치로 보고 있다. 태광산업은 “45% 지분을 가진 2대 주주의 견제를 받지 않겠다는 의도”라고 주장한다. 특히 양측은 오랜 기간 이사회를 5 대 4 구도로 유지하기로 한 합의가 있었다고 놓고 정면으로 부딪치고 있다. 태광은 2005년 당시 1·2대 주주였던 경방과 아이즈비전이 5 대 4 이사회 구조를 유지하기로 합의했고, 2006년 롯데쇼핑과 태광산업이 각각 이들 지분을 인수한 뒤에도 같은 내용의 합의가 이어졌다고 주장한다.
반면, 롯데 측은 그런 협약이 있다면 제시하라고 맞선다. 태광은 “협약서는 있지만 외부에 공개할 수 없을 뿐”이라고 한다. 20년 동안 같은 구조가 유지됐다는 사실 자체는 양측 모두 인정한다. 다만 그것이 법적 구속력이 있는 합의였는지, 단순 관행이었는지를 두고 시각이 엇갈린다.
롯데홈쇼핑은 오히려 태광산업의 반복적인 문제 제기와 외부 고발로 기업 경영이 심각하게 저해됐다고 맞선다. 롯데홈쇼핑 관계자는 “사외이사 확대는 근거 없는 주장으로부터 이사회의 독립성과 의사결정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또 태광산업이 양평동 사옥 재매각, 대표이사 해임 등 여러 사안을 반복 제기하며 경영 활동을 방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롯데홈쇼핑은 향후 회사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에는 법적 대응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에 직접 불을 붙인 건 태광이 제기한 내부 거래 문제다. 태광은 지난 1월 14일 이사회에서 롯데 계열사와의 내부 거래 승인 안건이 부결됐는데도, 롯데홈쇼핑이 이후에도 계열사 위탁상품 판매를 계속한 것은 상법과 회사 정관을 어긴 위법 행위라고 주장한다.
태광이 문제 삼는 구조는 롯데홈쇼핑이 롯데백화점, 하이마트 등 그룹 계열사 상품을 위탁받아 판매하는 방식이다. 롯데홈쇼핑 홈페이지에는 ‘롯데백화점’ 카테고리가 따로 있다. 하이마트 제품도 롯데홈쇼핑을 통해 판매된다. 냉장고·청소기 등 등록 상품 수는 약 1324개다. 태광은 이런 거래가 특수관계 거래인 만큼 이사회 특별결의를 거쳐야 하는데, 승인 안건이 부결된 뒤에도 거래를 이어간 것은 절차 위반이라고 본다.
태광이 김재겸 롯데홈쇼핑 대표를 정조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태광 측은 내부 거래 외에도 상법 제398조와 정관이 요구하는 이사회 승인 절차를 지키지 않은 점을 문제 삼고 있다. 김 대표가 이를 주도했거나 최소한 방치했다고 보고 대표이사 재선임에 반대했고, 결국 임시주총을 통해 해임을 추진하겠다는 입장까지 내놨다.
태광산업은 지난 3월 18일 사측에 임시 주총 소집을 요구했고, 여기서 김 대표 해임 안건을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롯데홈쇼핑이 임시 주총을 열지 않거나 해임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법원에 해임 소송과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신청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사회 재편으로 주도권을 잃은 만큼 주총과 법원을 무대로 공세 수위를 높이겠다는 뜻이다. 이어 3월 26일에도 보도자료를 통해 “롯데홈쇼핑 경영진이 이사회 사전 승인 없이 올해 1~2월 수십억원 규모 내부 거래를 진행한 사실을 인정했다”면서 “이미 이사회에서 관련 거래가 부결된 이후에도 거래가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상법상 사전 승인 규정을 위반한 명백한 불법 행위”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롯데홈쇼핑은 최근 열린 정기 주총에서 김재겸 대표를 사내이사로 재선임하고 사외이사 확대 안건도 통과시켰다. 롯데 측 논리는 정반대다. 태광이 문제 삼는 거래 구조는 약 20년 동안 태광 측 이사진을 포함한 이사회가 동의해 온 통상적인 사업 방식이라는 것이다.
회사 설립 초기 온라인에 입점할 협력사가 부족할 때 계열사의 우수 협력사를 유치하기 위해 형성된 구조라는 설명도 내놓는다. 롯데 측은 거래 규모도 줄고 있다고 강조한다. 롯데쇼핑과의 관련 거래 규모가 2021년 207억원에서 2024년 134억원으로 감소했다는 것이다. 태광이 지금 와서 위법이라고 문제 삼는 구조는 오랜 기간 공동으로 받아들여졌고, 규모도 축소 추세라는 얘기다.
롯데 측은 태광의 행보를 견제가 아니라 ‘트집 잡기’로 본다. 양평동 사옥 매입, 대표 해임 요구, 브랜드 사용 계약 해지 요구, 공정거래위원회 신고 등 일련의 문제 제기가 정상적인 회사 경영을 방해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번 사외이사 확대 역시 “근거 없는 주장으로부터 이사회의 독립성과 의사결정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한다. 태광이 외부 고발과 문제 제기를 반복하면서 회사 경영이 심각하게 저해됐고, 결국 이사회 재편이 대응책이 됐다는 것이다. 롯데는 향후 회사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에는 합법적인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다. 태광이 소송전을 예고한 만큼 롯데도 법적 대응 가능성을 열어둔 셈이다.

우리홈쇼핑 인수전이 갈등의 시작
잔뜩 날 서 있는 이번 분쟁을 이해하려면 2006년 우리홈쇼핑 인수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롯데와 태광은 원래 사업으로만 얽힌 관계가 아니었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은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의 동생인 신선호 일본 산사스식품 회장 딸과 결혼했다. 재계에서는 이 전 회장을 신 명예회장의 조카사위로 불렀다.
하지만 혼맥이 사업 갈등을 막진 못했다. 두 회사는 2001년 함께 컨소시엄을 꾸려 홈쇼핑 사업자 선정에 도전했지만 탈락했다. 이후에도 홈쇼핑은 두 그룹 모두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사업이었다. 당시 홈쇼핑은 백화점과 할인점에 이은 유통 업계 새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았다. 특히 태광은 케이블TV 채널 티브로드와의 시너지를 노리며 홈쇼핑 확보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태광은 2005년부터 우리홈쇼핑 지분을 공격적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당시 우리홈쇼핑은 경방과 아이즈비전 등 기존 대주주 간 경영권 분쟁에 휘말린 상태였다. 그 틈을 파고들어 태광산업은 2006년 7월까지 지분 45.04%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방송통신위원회에 최다액출자자 변경도 신청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경영권이 태광으로 넘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한 달 뒤 판이 뒤집혔다. 롯데쇼핑이 경방이 보유하던 우리홈쇼핑 지분 49.78%를 4667억원에 인수하며 단숨에 최대주주로 올라선 것이다. 롯데쇼핑 지분은 53.03%가 됐다. 같은 해 12월 방송통신위원회가 롯데의 우리홈쇼핑 경영권 인수를 조건부 승인하면서 승부는 롯데 쪽으로 기울었다. 태광 입장에서는 거의 손에 넣을 뻔한 홈쇼핑 경영권을 막판에 놓친 셈이다. 지금 갈등의 원점을 이 시점으로 보는 이유다.
태광은 곧바로 법정 다툼에 나섰다. 2007년 2월 방통위의 롯데쇼핑 최다액출자자 승인 처분이 위법하다며 서울행정법원에 취소 소송을 냈다. 인수 절차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태광은 1심과 2심에서 모두 패했다. 2010년에도 방통위를 상대로 같은 취지의 소송을 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2011년 대법원까지 롯데 측 손을 들어주면서 약 4년 6개월간 이어진 경영권 분쟁은 사실상 법적으로 일단락됐다. 그러나 법정 판결이 감정의 종결을 뜻하진 않았다. 인수전에서 패한 태광의 불만과, 경영권을 확보한 뒤에도 45% 안팎 지분을 쥔 2대 주주를 상대해야 하는 롯데의 부담은 그대로 남았다.
법정 밖 갈등도 거셌다. 대표 사례가 2007년 태광 계열 케이블TV 사업자 티브로드의 채널 조정이다. 티브로드는 우리홈쇼핑 송출 채널을 S·A급에서 B급으로 낮췄다. 홈쇼핑은 채널 번호에 따라 매출이 크게 달라지는 사업이다. 소비자가 손쉽게 찾는 상위 채널에서 밀려나는 건 매출에 직접 타격을 줄 수 있다. 롯데 입장에서는 태광이 홈쇼핑 채널이라는 인프라를 활용해 압박에 나선 것으로 읽혔다. 인수전 이후 양측이 단순한 주주 간 이견을 넘어 사업 전반에서 날을 세우기 시작했다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법인명이 20년 가까이 ‘롯데홈쇼핑’이 아니라 ‘우리홈쇼핑’으로 남아 있는 것도 이 갈등의 흔적이다. 롯데 측은 사명 변경을 추진했지만, 태광 측 동의를 얻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명 변경은 특별결의 사항이라 2대 주주 동의가 필요하다. 그 벽을 넘지 못했다는 해석이 많다.
끝나지 않은 전면전
사옥·브랜드·대표 해임까지 충돌
최근 몇 년 사이 갈등은 다시 거칠어졌다. 2023년 태광은 양평동 사옥 매입 승인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하고, 계열사 부당지원 의혹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2024년 1월에는 양평동 사옥 매입과 관련해 대표이사 해임을 요구했다.
같은 해 3월에는 사옥 매각과 롯데 브랜드 사용 계약 해지까지 요구했다. 지난해에도 롯데 브랜드 사용 계약 해지 요구는 이어졌다. 롯데 측은 “매번 실패하고도 트집 잡기식 문제 제기를 반복한다”고 맞선다. 태광 측은 “2대 주주로서 정당한 권리 행사”라고 본다. 양측 인식 차가 커 봉합 여지는 크지 않다.
문제는 회사 체력이다. 롯데홈쇼핑 실적은 예전만 못하다. 매출은 2021년 1조1027억원에서 지난해 9153억원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1020억원에서 450억원으로 감소했다. TV홈쇼핑 산업 자체가 성장 정체 국면에 접어든 상황에서 대주주 간 장기 분쟁까지 이어지는 셈이다. 김재겸 대표는 2022년 내부 승진으로 취임한 뒤 콘텐츠·브랜드·플랫폼 중심 사업 재편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경영 전략보다 지배구조 분쟁이 더 크게 부각되는 형국이다.
당장 다음 분기점은 임시 주총이다. 태광산업은 롯데홈쇼핑을 상대로 김재겸 대표 해임 안건을 논의하기 위한 임시 주총 소집을 청구하며 반격에 나섰다. 다만 현재 이사회 구도와 지분 구조를 감안하면 김 대표 해임안이 쉽게 통과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렇다고 태광의 견제가 멈출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
한 재계 관계자는 “20년간 이어진 이 갈등은 한쪽이 완전히 이기고 다른 한쪽이 완전히 물러나는 구조가 아니었다”며 “이번 6 대 3 재편으로 이사회 안 힘의 균형은 롯데 쪽으로 확실히 기울었지만, 태광이 이사회 밖에서 법적·여론전 공세를 이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분쟁은 오히려 새 국면에 들어섰다”고 말했다.
[정다운 기자 jeong.dawo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53호(2026.04.01~04.0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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