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Stage]'조커' 추정화 연출 "'웃는 남자'의 사랑 얘기, 궁금증에서 시작"

박병희 2026. 4. 1.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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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질서와 혼돈을 상징하는 악당 '조커'는 1940년 DC 코믹스의 '배트맨' 시리즈에서 처음 등장했다. 조커의 원형은 빅토르 위고의 장편소설 '웃는 남자'의 주인공 그윈플랜으로 알려져 있다. 소설 '웃는 남자'는 귀족 권력이 절대적이고 하층민의 삶이 극도로 피폐했던 17세기 후반 영국을 배경으로 한다. 버려진 아이 그윈플랜은 귀족들의 유흥을 위해 입이 찢긴 채 살아가는 비극적 존재다.

EMK뮤지컬컴퍼니는 2018년 '웃는 남자'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창작 뮤지컬을 선보였다. 작품성과 흥행성을 두루 갖춘 명작으로 인정받는다.


제18회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된 추정화 연출의 창작뮤지컬 '조커' 역시 '웃는 남자'를 소재로 삼은 흥미로운 작품이다. 추 연출은 2년 전 뮤지컬 '도산' 연출을 위해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한인타운에 3개월간 체류하던 중 조커를 집필했다. 그는 뮤지컬과 소설을 통해 확인한 웃는 남자의 서사가 애초 예상과 달랐던 점이 조커 집필의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제18회 창작산실 올해의신작 '조커'의 추정화 연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유혈 서사일 줄 알았는데"…사랑 이야기였던 '웃는 남자'

위고는 혁명이 이어지던 프랑스의 격동기를 살았고, 웃는 남자는 그가 프랑스에서 추방돼 19년간 망명 생활을 하던 시기에 집필한 작품이다. 위고가 사회에 대한 불만이 컸던 상황에서 소설은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웃는 남자 속 세계 역시 귀족이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부조리한 사회로 그려진다. 그윈플랜은 훗날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며 영국 여왕 다음 서열의 귀족 지위에 오르지만, 부조리한 권력에 맞서기보다 평온했던 하층민의 삶으로 되돌아가는 선택을 한다. 그윈플랜의 선택으로 시력을 잃은 소녀 데아와의 사랑 이야기가 소설의 중심축이 된다.

추정화 연출은 웃는 남자에 대해 "혁명과 쿠데타가 잇따르고 유혈이 낭자하는 서사를 상상했는데 그윈플랜과 데아의 너무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였다"고 말했다. 그는 위고가 왜 혁명을 이야기하지 않고 그윈플랜과 데아의 사랑 이야기로 결말을 맺었는지 궁금해졌고 그 의문에서 조커의 집필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뮤지컬 조커는 위고가 망명생활 중 웃는 남자를 집필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웃는 남자 소설의 이야기는 극중극 형식으로 교차되며 흥미롭게 전개된다.

제18회 창작산실 올해의신작 '조커' 공연 장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망명 중인 위고의 '웃는 남자' 집필 과정 극중극으로 풀어내

위고는 집필 중 조국 프랑스에서 잇따르는 혁명을 자신의 소설에 어떻게 반영할지를 고민한다. 그는 혁명의 의지를 다질 수 있는 이야기를 써야 한다는 동료의 조언을 거부하고 실제 위고가 그랬던 것처럼 그윈플랜과 데아의 사랑 이야기로 끝맺는 쪽을 택한다.

추 연출은 "위고의 고민을 통해 창작자가 가지고 있는 책임과 선택의 무게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야기가 어떤 행동을 촉발하는 도구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며 "그런 의미에서 조커의 이야기를 마무리했다"고 덧붙였다.

위고가 왜 그윈플랜과 데아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로 웃는 남자를 마무리했는지 조커를 통해 보여주는 셈이다.

다만 추 연출은 "그윈플랜이 조커의 모티브가 됐다는 사실은 너무 재미있다"고 말했다.

"그윈플랜은 축복받은 아이라는 뜻이다. 소설 속 그윈플랜은 숭고한 사랑을 나타내는 인물이다. 그런데 후대 사람들은 그 입이 찢어진 아이를 통해 조커라는 악당을 만들어냈다. 그윈플랜은 어떤 의미에서 평화를 상징하는 아이인데 후대에서는 반대 성향의 조커라는 인물을 탄생시켰으니 재미있지 않나."

어쩌면 행동으로 사회의 부조리에 저항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불만이 그윈플랜을 조커라는 캐릭터로 변모시켰다고 볼 수도 있는 셈이다.

제18회 창작산실 올해의신작 '조커' 공연 장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풍파 견딘 인물들에서 관객들도 힘 얻길"

추정화 연출은 위고처럼 늘 고뇌하고 응어리진 감정을 대사로 토해내는 격정적인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선택한다. 시인 이상의 삶과 시에서 영감을 얻은 '스모크', 베토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루드윅', 여성 화가 프리다 칼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프리다' 등이 그랬다. 추 연출은 "풍파를 이겨낸 사람들을 좋아한다"며 "풍파를 겪으면서도 자신의 것을 지켰던 사람들을 통해 관객들이 기운을 얻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추 연출의 조커는 배우 6명이 출연하는 100분짜리 작품이다. 그가 애초 구상한 조커는 배우가 12명 출연하는 120분짜리 공연이었다. 극장 대관이 여의찮으면서 소극장에 맞춰 출연 배우와 공연시간을 줄인 것이다. 추정화 연출은 "항상 최선을 다해 작품을 만들기 때문에 지금 하고 있는 작품이 저의 최고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며 "향후에는 꼭 중극장에서 애초 구상한 조커를 공연하고 싶다"고 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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