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고 말하는 남자들이 불편한 이유

김소리 2026. 4. 1.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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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리의 세상을 읽다] 남성의 경청과 성찰은 어떻게 매력이 되는가

[김소리 기자]

 "미안하다"는 말은 왜 문제가 될까.
ⓒ pxhere
이성애자 여성인 나는 언제 남성에게 '심쿵'할까 생각해본다. 잘생긴 외모? 일정 부분 맞다. 그런데 이건 잠깐의 짜릿한 심쿵일 뿐이다. 자신감? 자신감이 섹시함을 불러일으키기는 하지만 과한 이들은 가스라이팅을 한다. 경제력? 이건 '부러움'의 감정을 느끼게 할 수는 있어도 심쿵이 될 수는 없지 않나. 유머? 좋긴 한데 심쿵 포인트는 아닌 듯. 똑똑하고 지적인 모습? 분명 매력적이지만 지식이 태도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느낀다.

내게 깊은 '찐' 심쿵 포인트는 따로 있다. 내가 운영하는 책방에서 진행 중인 '페미니즘과 일상 속 평등한 관계맺음' 독서모임을 진행하면서 새로 생긴 것인데, 바로 남성으로서의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성찰하는 모습을 보일 때다.

"많이 돌아보고 반성하게 됐다."

이 말을 하는 남성이 진짜로 멋지게 보인다. 주변 여성 친구들 역시 내가 독서모임에 함께 하는 남성 참가자들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말하니, 진짜냐며 너무 멋진 분들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여성들이 이런 말을 하는 남성에 놀라는 이유는 그만큼 희소하기 때문이다. 가부장제하에서 여성은 끊임없이 평가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누군가 자신에 대해 지적하면 곧바로 '자책 모드'로 돌입하기 일쑤다. 반면, 가부장제하에서 남성은 하고 싶은 것을 펼치는 것이 '남성다움'으로 학습되고,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은 패배처럼 여겨지기 쉽다. 이런 구조 속에서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수정하는 경험 자체가 보통은 익숙하지 않다.

성찰하는 남성이 심쿵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이냐. 이것이 가능하려면 일단 여성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하는 것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많은 여성들이 관계에서 가장 답답함을 느끼는 지점 중 하나는 '듣지 않는 태도'다. 정확히는 '진지하게' 안 듣는 것.

남자들의 "미안하다"는 말이 대체로 문제인 이유

한때 개그 소재로 많이 활용되었던 이성애 연애의 어느 풍경이 있다.

남자: "미안해"
여자: "뭐가 미안한데?"
남자: (고통스러워함)
청중: (웃음)

그저 남성과 여성의 본질적 차이에 기반한 상황이라는 전제하에 웃음의 소재로 활용된 것인데, 이는 은근슬쩍 성찰하지 못하는 정서적으로 미숙한 남성을 기본값으로 받아들이라는 요구일 뿐이라는 점에서 문제적이고, 웃을 일이 아니다.

여성이 관계에서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면 남성은 미안하다고 말(은)한다. 문제는 이 '미안하다'의 대부분이 빨리 이 불편한 상황을 끝내고, 아무 일 없었던 평화로운 이전 상태로 돌아가고자 하는 상황모면용 형식적 사과인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진정한 사과는 나의 행동이나 태도가 상대에게 미친 영향을 검토하고, 상대가 느끼고 있는 마음에 공감하며 이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내적인 성찰과 함께 일어난다. 이 지점에서 성찰과 경청은 연결된다. 성찰은 혼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말을 '진지하게' 듣는 것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성폭력 가해자들의 치료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된 성폭력 피해자와 가해자들 사이의 왕복 서신, 대면 대화 내용을 담은 책인 <피해자가 가해자에게>에는 왜 가해자들이 진정으로 반성하지 않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가해자들은 자신의 행위를 축소하거나('별거 아니었다' '더 잔혹한 짓을 한 놈들도 있는데, 이 정도는 문제도 아니지') 자신의 범죄가 피해자에게 어느 정도로 피해를 줬는지를 회피하며 상황을 수습하기 위한 형식적 사과를 한다.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문제를 직면하지 않기 때문인데, 그 결과 실제로 피해자들은 가해자의 사과문을 받아도 오히려 더 큰 분노를 느끼게 된다. (나는 현재 성폭력 피해자 국선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거기서 그들은 '별거 아니었다' '더 잔혹한 짓을 한 놈들도 있는데, 이 정도는 문제도 아니지'하고 자신의 가해행위를 과소평가합니다. 기억의 망각도 그렇게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선택하는 수단 중 하나입니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31쪽.
"대화 프로그램 참가자를 보고 있으면, 성폭력 가해를 반복해온 사람들은 이렇게나 자신과 대면하지 못하는구나, 하고 깊이 깨닫게 됩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자신이 저지른 가해행위가 타인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을 직면하지 못합니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68~69쪽
"무엇 때문에 알맹이도 없는 반성과 사죄를 표하는 걸까요. 그 자리를 수습하기 위해서입니다. 본인에게도 '걱정을 끼쳤다', '나는 몹쓸 인간이다'라는 마음이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 자리만 어떻게든 모면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상대방에게 '깊이 반성하고 있다'라는 인상을 주면 자신에 대한 추궁이 끝나리라는 걸 그들은 압니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230쪽

이 구조는 일상적인 관계에서도 낯설지 않다. "난 바람은 안피우잖아"라며 다른 남성들에 비하면 나는 괜찮은 남성이라며 자신의 잘못을 과소평가하고, 여성이 느꼈을 고통을 깊게 생각하기를 외면하며, 상황모면용 사과인 경우가 많다. 내용 없는 사과는 관계를 회복시키지 못한다. 오히려 "뭐가 미안한데?"라는 질문을 반복하게 만들 뿐이다.
▲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겉표지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겉표지. 회복적 사법의 관점의 가해자들 치료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성폭력 피해자와 가해자들의 왕복 서신 및 대화 프로그램을 진행한 기록을 담고 있다.
ⓒ 글항아리
"사과했으면 됐지. 뭘 더 어떻게 하라고"

앞선 연애 풍경의 다음 장면은 이렇다.

여자: (남자의 사과가 형식적이기에 계속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감)
남자: "미안하다고 했잖아. 나보고 뭘 더 어떻게 하라고!"

사과의 목적이 상대를 이해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불편한 상황을 끝내는 데 있었기 때문에 나오는 반응이다. 사과했음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면, 무엇이 부족했는지를 돌아보는 것이 먼저다. 상대가 사과를 받아줄 의무는 없다. 결국 이러한 사과는 문제를 제기하는 상대방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한 것이며, 심해지면 스스로를 피해자로 둔갑시키는 방향으로 흐르기도 한다.

덧붙이자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를 때 오히려 감정이 먼저 튀어나오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일수록 다른 방식을 배우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가부장적 환경 속에서 많은 남성들이 갈등 상황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하는 법을 충분히 배우지 못한 채, '화'로 표현하는 데 익숙해진 측면이 있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이 용서받지 못함을 알았을 때 생깁니다. 여태까지 얌전한 태도가 돌변해 "내가 이렇게 사과하잖아!", "왜 용서해주지 않는 거야!"하고 난폭하게 화내거나, 용서 받지 못하는 자신이 피해자로 느끼기 시작합니다. 어쩌면 이렇게도 제멋대로일까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237쪽

경청하고 성찰하는 존재로서의 남성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구체적으로 어떻게 '성찰'과 '반성'을 행할 수 있을까.

답은 단순하다. 먼저 들어야 한다. 말을 줄이고, 듣는 것이 시작이다. 내 생각에 이것만 해도 절반은 얻고 간다. 여성은 애당초 사회에서도 말할 기회가 많지 않다. 당신과의 시간에서만이라도 여성이 더 말할 수 있게 해주면 어떨까?

지난 3월 7일 광화문에서 열린 제41회 여성대회에는 다양한 여성단체들이 부스를 차리고 여러 캠페인과 이벤트를 행하고 있었는데, 그 중 '젠더교육플랫폼 효재'라는 곳은 친밀한 관계에서 여성들이 싫어하거나 좋아하는 남성들의 말, 행동, 태도가 무엇인지를 포스트잇으로 붙이게 하는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싫어하는 태도에 '말하는 남자', '경청하지 않는 태도', '맨스플레인' 등이, 좋아하는 태도에 '말하기보다 듣기를 잘하는 사람', '경청과 수용', '가만히 있기' 등 경청하는 태도를 말하는 내용이 다수 있었다. 경청하는 남성은 필자만의 개인적 취향이 아니라 여성들이 보편적으로 남성에게 바라고 있는 요구임을 알 수 있다.
▲ "친밀한 파트너관계에서 이런 남성은 NO!" 지난 7일 광화문에서 열린 한국여성대회에서 '젠더교육플랫폼 효재'가 "친밀한 파트너 관계에서 이런 남성은 NO!"라는 이름의 메시지보드를 설치해두고, 참가자들로 하여금 메시지를 붙이도록 했다. 경청하지 않고, 말을 많이 하는 남성의 태도를 지적하는 글들이 다수 있었다.
ⓒ 김소리
▲ "친밀한 파트너 관계에서 이런 남성은 GOOD!" 지난 7일 광화문에서 열린 한국여성대회에서 '젠더교육플랫폼 효재'가 "친밀한 파트너 관계에서 이런 남성은 GOOD!"라는 이름의 메시지보드를 설치해두고, 참가자들로 하여금 메시지를 붙이도록 했다. 경청하는 남성을 원하는 글들이 다수 있었다.
ⓒ 김소리
이런 이야기가 남성에게만 요구되는 것처럼 느껴져 억울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사회구조적으로 남성은 여성과의 관계에서 권력의 위치에 있고, 여성은 약자의 위치에 있는 점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남성이 예전처럼 전통적인 가부장의 지위를 누리지 못한다고 하여, 여전히 사회에서 여성은 누리지 못하는 힘과 자유를 남성은 누리고 있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왜 유독 여성만 밤거리를 자유롭게 다니지 못하는가? 왜 성폭력 피해자의 대부분은 여성인가?).

비장애인이 아무리 장애에 대한 책을 읽고 공부해도 장애인으로서 이 사회를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지 100퍼센트 알 수 없다. 이것은 비장애인으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다. 여성과 남성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남성이 경청하고 반성한다는 것은 정확하게 남성으로서의 사회적 위치를 자각하고, 한계를 직면하며 이를 수용한다는 의미다.

오죽하면 '맨스플레인'이라는 말이 생겨났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의도와 상관없이, 남성의 경험이나 시각이 과도하게 일반화되는 경우가 많다. 남성으로서의 한계나 위치를 한 번쯤 돌아보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특히 스스로를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더 고민해 볼 지점이 있다.

예전에 페미니즘 책을 읽거나 세미나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일부 남성들이, 그걸로 충분히 이해했다고 느끼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실천이다. 여성의 경험과 남성으로서의 한계를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그것을 삶 속에서 계속 성찰하고 실천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일 수 있다. 남성이 여성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 아니라, 그렇기에 여성의 목소리를 열린 마음으로 듣고 존중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점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도 생각으로는 도저히 가닿을 수 없는 질감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자주 깨닫는 중이다." <두 번째 페미니스트> 115쪽

다만 "남자인 내가 뭘 알겠어"라는 말로 멈춰서는 안 된다. 그것은 책임을 회피하는 또 다른 방식일 뿐이다. 한계를 인식하는 것은 면제가 아니라, 더 나은 행동으로 나아가기 위한 전제여야 한다.

변화한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남성성

주도하고 나서는 것이 아닌 가만히 경청하는 남성의 모습이 어색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 뻔하디뻔한 남성이 아니라 정말로 희소한 남성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말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잘생긴 남성, 돈 많은 남성보다 성찰하는 남성이 훨씬 더 희소하다.

결국 중요한 건 이 지점이다. 남성은 평생에 걸쳐 폭력과 차별에 노출된 채 살아온 여성의 삶과 세계에 온전히 가닿을 수 없다는 것. 이 점을 염두에 두는 것만으로도 여성의 이야기를 조금 더 조심스럽게 듣고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기보다 한 걸음 물러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신이 가닿을 수 없는 여성의 삶을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남성. 여성들에게는 상상만으로도 심쿵이다. 상상이 아닌 현실에 존재하기를 여성들은 간절히 바라고 있다.

여성의 말을 경청하고 성찰하는 것은 '여성의 꼭두각시'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한계를 보완함으로써 스스로를 깊이 있게 성장시키는 발걸음이라는 것을 많은 남성들이 깨달았으면 좋겠다. 그런 변화의 과정은 관계를 더 깊고 건강하게 만들어갈 수 있다. 여성은 완벽한 남자보다 노력하는 남자에게 매력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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