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수'도 사재기하면 어쩌지...이 대통령 말이 심상치 않은 이유 [신필규의 아직도 적응 중]
[신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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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가 유류비 절감을 위한 '석유 최고가격제'를 뒷받침하고 나프타(납사) 수급 위기에 대응하는 재원으로 5조원을 배정했다. 정부는 지난 3월 31일 청와대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26조2천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의결했다. 사진은 3월 31일 서울 서초구 만남의광장 주유소 |
| ⓒ 연합뉴스 |
MBC의 라디오 프로그램인 <김종배의 시선집중>을 매번 챙겨 듣는다. 그리고 토요일이면 <김종배의 시선집중>은 국제 뉴스 코너를 방송하는데, 내 기억에 이 코너에 출연한 국제 관계 전문가들이 지난 몇 개월간 저런 요지의 발언을 서너 번은 한 것 같다.
처음에는 우스개가 섞인 푸념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나도 정말 잠이 오지 않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합리적으로 행보를 추론할수록 더 예측이 빗나가는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미국의 이란 공습은 두 나라의 핵 협상이 많은 진전을 이루는 와중에 단행되었다. 심지어 당시 중재국을 맡았던 오만의 외무장관이 결실을 확신하던 중이었다.
사실 전쟁은 비극적이고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만약 우리에게 큰 영향이 없는 이역만리 타국의 일이라면 공포에 떨 필요까진 없다. 하지만 이 문제는 그렇지가 않다. 당장 원유 수급 문제가 터졌다. 세계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라 불리는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었다. 당연히 한국을 향한 원유 수입 길도 막혔다.
처음에는 '당분간 기름값 좀 오르겠구나'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전쟁의 국면은 더욱 험악해졌다. 참전 국가인 이스라엘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는 자신을 향한 온갖 부패 혐의와 이로 인한 재판을 회피하기 위해 전시 상황을 더욱 수렁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트럼프는 하루는 전격적인 공습을 예고했다가 하루는 협상이 아주 순조롭다고 여유를 부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이어갔다.
미국의 공습이 초래한 '자원 절벽', 대체 언제 끝날까
많은 전문가들이 여러 보도를 통해 트럼프가 과연 계획이라는 걸 가지고 전쟁을 시작했는지 의구심을 드러내고 있다. 갈지자를 그으며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트럼프의 태도도 전략이 있는 게 아니라 아주 얕은 판단에 기댄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다. 실제로 조지프 켄트 미국 국가대테러센터 전 국장은 자리에서 사임하며 '트럼프가 단기간 승리가 가능하다는 이스라엘의 말에 속아서 전쟁을 시작했다'라는 요지의 폭로를 한 바 있다.
전쟁의 커다란 톱니바퀴를 굴리는 사람의 다음 행보를 예상할 수 없으니 현실이 된 '자원 절벽'도 어디까지 갈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리고 여러 곳에서 많은 이들이 경고등을 울리고 있다. 기름값 상승에 직격탄을 받을 수밖에 없는 물류·유통 업자들은 물론이고 비닐하우스를 운영하는 농어촌 주민들도 고통에 시름하고 있다.
전쟁의 불똥은 생각지 못한 곳으로 튀기도 했다. '종량제 봉투 대란' 같은 일이 벌어지리라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이란의 카타르 LNG 생산 시설 공격으로 LNG와 나프타 수급에 차질이 빚어지자 나프타를 주원료로 사용하는 비닐 제품이나 일회용 용기 생산에 비상이 걸렸다는 뉴스가 나왔다. 일부 공장들은 가동을 멈췄다. 그 결과 비닐로 만드는 종량제 봉투가 없어서 쓰레기도 못 버리는 거 아니냐는 공포가 순식간에 퍼졌다. 아예 사재기에 나선 사람들이 등장했고 이로 인해 종량제 봉투가 일시적으로 품절이 된 매장도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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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동 전쟁 장기화로 나프타 수급이 불안해지며 원료 수급 위기가 산업 전반으로 확산한 가운데 지난 3월 27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종량제 봉투 구매 수량 제한 안내문이 붙어 있다. |
| ⓒ 연합뉴스 |
사태가 여기까지 오자 진지하게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석유와 가스를 아예 안 쓰는 건 불가능하다. 긴 역사 속에서 한국이 형성한 산업 생태를 단기간에 바꾸기는 어려울 테니 말이다. 누군가에게 이건 먹고 사는 문제다. 하지만 우리가 석유와 가스를 필요한 곳에만 효율적으로 쓰고 있을까. 이를테면 도시권으로 한정했을 때, 대중교통이 잘 깔려 있는데 도로에 그렇게 많은 차들이 나와 있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 차들이 대부분 기름으로 움직여야만 할까. 석유와 가스에 의존하지 않는 재생 에너지 생산에 더욱 과감히 투자해 지금부터라도 미래의 발전량을 늘릴 궁리를 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이거 그냥 평소에 흔히 듣던 환경보호 이야기 아니냐고. 재생 에너지 확장해서 저탄소 사회로 나아가자는 거 아니냐고. 비슷한데 약간은 다르다.
지금 당장의 현실을 버티기 위해 우리는 변화해야 한다
이번 미국-이란 전쟁은 내게 단순히 '기름값 높아지니 차 굴리는 사람 힘들겠구나'라고 생각하는 걸 넘어서 실질적인 위기감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반갑지 않은 위기감이다. 나는 어느 순간 종량제 봉투가 뚝 떨어져서 쓰레기를 버리지도 못할 거란 공포 속에 사재기를 하고 싶진 않다. 좁은 원룸에 사는 처지라 정수기를 두는 건 꿈도 못 꾸기에 물은 사 먹는데, 이 물을 담는 페트병의 가격이 오르거나 생산이 중단되면 어떤 부담까지 져야 할지 걱정하고 싶진 않다. 발목이 아파 병원을 내원 중이라는 엄마의 이야기를 듣다가, 일회용 주사기 수급 불안이 의료 현장을 덮쳤다는 뉴스를 보고 싶지 않다. 그리고 이런 위기들은 대부분 자원이 없는 사람의 생활부터 어렵게 한다.
나는 다가올 미래의 환경 위기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물론 이를 이유로 저탄소 사회로 나가는 것도 무척 필요하다). 지금 당장 우리의 생활과 경제의 존립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트럼프의 집권 이후, 현재의 국제질서가 막무가내의 지도자를 막을 만큼 단단하지 못하다는 게 밝혀졌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도,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도 너무나 안 좋은 선례를 남겼다. 패권 국가들의 무력 침공으로 전 세계가 영향을 받는 상황은 더욱 짧은 주기로 반복되고 있다. 이미 두 번 트럼프를 뽑은 미국이 또 다른 트럼프를 선출하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이런 상황이라면 '에너지 수입 위기'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일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손으로 가능한 부분부터 에너지 소비 생태를 바꾸고, 반드시 필요한 곳에만 석유와 가스를 쓰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마침 지난 3월 30일 열린 제주 타운홀 미팅에서 이재명 대통령 또한 "화석에너지에 의존하면 미래가 매우 위험하다"라며 "자체 생산도 안 되는데 수입을 쫓다 보니 지금 저 모양이 되고 있다"라며 모든 에너지원을 신속하게 재생에너지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의견에 적극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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