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총 든 스님, 마차에 묶인 주지... 이것이 제주4.3의 또 다른 비극"
[고창남 기자]
제주4.3사건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 중 하나이다. 인명 피해만 해도 3만여 명의 무고한 제주도민이 희생된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비극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도민들의 안식처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불교계가 입은 참혹한 상처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고,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채 역사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수많은 사찰이 소실되고 스님들이 토벌대에 의해 희생된 기록은, 단순히 종교적 피해를 넘어 78년간 멈춰 서 있던 제주의 아픔을 온전히 치유하기 위한 마지막 퍼즐과도 같다.
최근 방대한 증언과 사료를 담은 자료집 <4.3과 제주불교>를 발간한 제주불교4.3희생자추모사업회 김용범 회장을 지난 3월 30일 제주 관음사에서 만나 기록되지 못했던 그날의 진실과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를 짚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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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불교4.3희생자추모사업회 김용범 회장 |
| ⓒ 고창남 |
- 최근에 펴낸 <4.3과 제주불교>는 제주 4.3과 불교 피해를 본격적으로 다룬 첫 자료집으로 평가된다. 이 책을 반드시 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제주4.3이 이제 78주년을 맞는다. 약 80년 세월이 지나는 동안 당시를 체험한 4.3 1세대는 점점 사라지고 기억은 희미해지는 현실이다. 제주4.3의 사료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제주도 전역이 초토화되면서 기록물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지금의 자료는 거의가 당시를 체험한 분들의 기록이다. 그런 면에서 새로운 자료 발굴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특히 제주불교의 4.3 피해 실태는 공식적인 조사 보고가 없는 상태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조바심이 자료집 발간의 동력이 되었다."
- 자료를 모으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이번 자료집을 엮기 위해 주로 어떤 경로로 자료를 발굴했나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마주한 현실적인 제약은 어떤 게 있을까.
"제주불교와 4.3의 기록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종교의 영역으로 치부되다 보니 공식 보고서에 등재되지 못했고, 자연히 일반 대중의 관심도 적을 수밖에 없었다. 이 자료집은 선행 연구를 이어온 '제주불교사연구회'의 최초 공식 자료가 큰 역할을 했다.
그 후 세미나 등에서 발표한 자료와 증언 행사, 피해 사찰 탐방 행사를 통한 구술 채록 등 산재한 자료들을 모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단행본으로 발간하게 된 것이다. 특히 '제주불교신문'에 보도된 기사 등이 큰 역할을 했다.
불교 피해는 일반 연구자의 흥미를 끌기 어려웠고, 불교 관련 단체나 학자들의 관심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자료의 볼륨이 상대적으로 적어졌고, 기초자료 부족이 큰 애로사항이었다."
- 책을 준비하면서 '이 장면이나 이야기는 반드시 후대에 남겨야 한다'고 강렬하게 느꼈던 부분은 무엇인가.
"책을 준비하며 가장 가슴 아프고 강렬하게 남았던 장면은 제주 불교의 정신적 지주였던 '관음사의 초토화'와 그 속에서 사그라진 '제주불교 혁신의 꿈'에 관한 이야기다.
제주불교의 본산이자 당시 전략적 요충지였던 관음사는 무장대와 토벌대가 번갈아 주둔하며 결국 모든 전각이 소각되는 비극을 맞았다. 특히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장면은 당시 주지였던 오이화 스님의 모습이다. 무장대와 내통했다는 혐의로 마차에 묶인 채 물고문을 당하셨고, 그 후유증으로 2년여 후 끝내 입적하셨다.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기록은 불살생계를 제1계로 삼는 승려가 권총을 차고 활동했다는 이세진 스님에 대한 증언이다. 권총을 찬 스님의 모습은 당시 제주 불교가 마주했던 참혹하고 복잡한 시대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무엇보다 안타까웠던 점은 당시 관음사 주지 오이화 스님, 서관음사 주지 이세진 스님, 불교 대중화에 기여한 대포교사 이일선 스님처럼 제주 불교의 개혁을 꿈꿨던 혁신계 스님들이 4.3의 소용돌이 속에서 모두 희생되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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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번 회장이 출간한 <4.3과 제주불교> 표지 |
| ⓒ 고창남 |
- 반대로 끝내 담지 못한 이야기나 아쉬움이 남는 부분도 있을 것 같다.
"당시 왜색불교 청산에 앞장섰던 고인봉 스님의 이야기가 가슴을 아프게 한다. 스님은 제주도불교청년단장을 역임하며 불교계 연락책 활동을 하기도 했고, 이로 인해 한 차례 투옥되기도 했으며 이후 지명수배를 당하자 일본으로 피신했다.
그 후 스님은 일본에서 총련 조선불교동맹위원장을 맡기도 했으며, 민단으로 전향 후 일본 선종사찰에 머물다가 1988년 제주를 방문하고 1998년 일본에서 돌아가셨다. 고인봉 스님은 제주4.3 희생자로 등재되지 못했는데, 4.3특별법상의 희생자 정의(사망, 수형, 행불, 후유장애) 4가지 경우에 해당하지 않아서다. 이는 4.3특별법이 개정되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4.3 특별법 개정과 국가책임의 재정립 필요
- 고인봉 스님의 사례처럼 현행법의 테두리 바깥에 있는 희생자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4.3 특별법은 어떻게 개정되는 게 좋을지 궁금하다.
"현행 4.3 특별법은 희생자의 범위를 제주4.3으로 인한 사망, 행방불명, 후유장애, 수형인이라는 외형적 피해 사실에만 국한하고 있다. 그러나 고인봉 스님처럼 지명수배를 피해 일본 등으로 밀항하여 평생 고국에 돌아오지 못한 이른바 '4.3 관련 밀항자'나 '강제 유랑자'는 법적 희생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저는 크게 세 가지 방향에서 법 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첫째, 희생자 정의의 외연 확장이다. 직접적인 사상 외에도 4.3의 소용돌이 속에서 생존을 위해 고향을 떠나야 했던 이들의 고통을 '정신적·사회적 희생'으로 포함하여 희생자의 정의를 확장해야 한다.
둘째, 실질적인 명예 회복을 위한 입증 책임의 전환이다. 기록이 소실된 상황에서 유족에게 모든 입증 책임을 지우기보다 국가 차원의 폭넓은 조사를 통해 고인봉 스님과 같은 개혁 승려들의 행적을 반국가 활동이 아닌 '민족 수난사'의 관점에서 재평가해야 한다.
셋째, 1세대 생존자 중심의 특별법 개정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법률적 미비로 명예를 회복하지 못한 채 눈을 감는 분들이 없도록 생존한 1세대와 직계 유족을 포용할 수 있는 특례 조항 마련이 시급하다
- 시간이 흐르면서 증언과 자료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기록 작업의 절박함은 무엇인가.
"당시를 알 수 있는 증언자 나이는 10세 이후일 텐데 지금은 90세에 육박한다. 생존 희생자 또는 1세대 유족이 많이 돌아가신다는 점에서 채록작업의 시급성이 절박하다. 가해자인 정부 차원에서 대대적인 증언 채록 작업을 벌여야 한다. 5년여 후에는 국내 신규 증언 자료는 없을 것이다. 1세대 체험 당사자 증언 외에 전언 증언은 왜곡 가능성이 있어, 당사자 증언 채록에 더 힘써야 한다."
- 4.3 당시 사찰의 약 70%가 소실됐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가.
"70%의 피해 의미는 제주불교가 사실상 절멸되었다는 것이다. 이 조사자료는 근현대 제주불교사를 연구하는 한금순 박사팀의 전수 조사 결과로 독보적 가치가 있다. 사찰 피해와 인명 피해는 제주불교의 명맥을 끊는 결정적 치명타가 되었다. 관음사 주지를 비롯한 혁신계 승려들이 절멸하며 종교성 상실을 불러왔다.
다른 종교는 4.3과 한국전쟁기를 지나 비약적 성장을 이뤘지만, 제주불교계는 제2의 무불시대라 인식하고 있다. 내부에서는 토벌대 주요 세력인 서북청년단과 이승만정권의 종교편향 정책등으로 미루어 불교탄압이 아니냐는 생각도 하고 있다. 좀더 연구할 과제이다."
- 해방 직후 제주 불교계는 친일 잔재 청산과 민족 불교 재건을 추진했다. 당시 운동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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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회 관음사 제주불교 4.3 추모 위령재를 알리는 현수막 |
| ⓒ 고창남 |
"4.3 당시 사찰 및 승려 희생은 대부분 토벌대에 의한 것이다. 이는 국가권력이 종교계조차 예외 없이 제주도민을 무차별 탄압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현재 희생자 개인 인명 피해 보상은 진행 중이지만, 이제 사찰 소실 등 물적 피해에 대한 집단적·지역적 보상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특히 불교계가 입은 피해는 단순 시설 파괴를 넘어 종교적 정체성과 정신적 근간을 송두리째 앗아간 것이므로, 국가권력의 진솔한 사과와 실질적 배·보상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기억의 공백 깨고 연대와 치유의 미래로
- 불교계 피해는 상대적으로 늦게 조명되었다는 지적이 있다. 왜 이런 '기억의 공백'이 발생했다고 보는가.
"무엇보다 불교계 스스로의 자각 부족이 큰 원인이다. 자신의 아픔이 어느 정도인지, 이를 어떻게 드러내고 치유할 것인지 인식이 부족했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법언이 있는데, 이번 경우가 바로 이에 해당한다.
이제라도 불교계 내부에서 피해 실태 조사를 심층화하고, 정당한 요구를 해야 한다. 올해 안으로 정부 차원의 제주4.3 사건 추가 진상보고서가 발표될 예정이다. 불교 피해 실태가 이번에는 반드시 등재되도록 요구하고, 실행 여부를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
- 자료집 발간 이후 앞으로 추가로 계획하고 있는 추모 사업이나 기록 활동이 있다면 말해 달라.
"지금까지 해온 4.3 피해 사찰 연계 순례 행사와 증언 채록을 통해 단행본 출판으로 세상에 알려야 한다. 제주4.3 트라우마 치유 명상음악회도 지역을 순회하며 공연할 계획이다. 국내외 4.3 관련 단체와 연대 활동에도 역량을 모아야 한다. 연대와 협력의 가치, 제주4.3이 우리에게 건네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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