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기괴한 자아분열...'유령판결'이 만든 27년 잔혹사
판사의 오심 한 번이 한 시민의 삶을 27년이나 짓밟았습니다. 최근 정부와 정치권이 '법원 개혁'을 화두로 올렸지만, 정작 사법부 내부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오만'은 여전합니다. 기자는 법원 오심에 대한 이장호씨의 외로운 사투를 20여 년간 취재해왔습니다. 그의 투쟁기를 통해 사법 정의의 민낯을 다섯 차례에 걸쳐 고발합니다. 이 연재가 오심에 책임지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실질적인 사법 개혁과 신뢰 회복의 마중물이 되길 바랍니다. <기자말>
[심규상 대전충청 기자]

한꺼번에 돈을 지불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이 금액(5000만 원)은 별도의 차용증(공정증서)을 통해 '대여금' 형식을 갖췄습니다. 이것이 훗날 27년에 걸친 잔혹한 법적 다툼의 불씨가 됐습니다.
"다 갚았다" vs. "받은 적 없다"... 다툼 일자 법원이 내린 결론
A씨는 잔금(대여금) 5000만 원을 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학원 매매가는 7500만 원이 전부이며, 차용증의 5000만 원은 학원매매대금에 포함돼 있어 이미 갚았다"라며 맞섰습니다. 결국 이씨는 차용증을 근거로 법의 문을 두드렸고, A씨와 학원 건물주(제3채무자)를 상대로 돈을 달라며 '채권압류 및 전부명령'을 신청했습니다(1999년 4월).
A씨는 이에 맞서 '즉시 항고' 및 '청구이의 소'를 제기합니다. A씨는 '채권자(이장호)가 신청한 강제집행 및 전부명령 신청에 대해, '차용증은 학원매매계약의 일부일 뿐, 별도의 채권이 아니고 학원매매대금은 이미 갚았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도 강제집행 정지 신청은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A씨의 항고를 '이유 없다'며 기각(1999년 10월)하고 이씨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1999년 11월 5일, 법원은 이씨가 낸 '채권압류 및 전부명령(강제집행)'을 받아 들여 최종 확정합니다.
여기서 독자들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법적 장치가 있습니다. 바로 민사집행법 제231조(전부명령의 효과)입니다.
"전부명령이 확정된 경우에는 전부명령이 제3채무자에게 송달된 때에 채무자가 채무를 변제한 것으로 본다."
'전부명령'의 효과 : "이 소송은 여기서 끝"
이 법조문을 쉽게 풀면 이렇습니다. 전부명령이 확정되는 순간, A씨가 이씨에게 갚아야 할 빚은 '현금'이 아닌 '건물주에게 받을 채권'으로 넘어갑니다. 이제 이씨는 A씨를 거칠 필요 없이 건물주(3채무자)에게 직접 돈을 청구할 권리를 갖게 됩니다. 법원이 차용증을 매매대금의 일부가 아닌 독립된 채권(수강생 권리금과 학원 증축비용)으로 인정했기에 내려진 결정이었습니다.
결국 1999년 11월 5일은 법률적으로 이 사건이 마침표를 찍고 돌이킬 수 없게 종료된 날입니다. 비유하자면 농구 경기에서 주심이 경기 종료 휘슬을 불었고, 심판진이 기록지에 서명까지 마쳐 관중이 이미 경기장을 빠져나간 상황입니다. 법적으로 더 이상 이 경기를 다툴 원인 자체가 사라진 것입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경기가 끝난 지 무려 6개월이나 지난 2000년 5월 2일, 대전지법 민사재판부(13단독)는 A씨가 1999년 4월 이씨의 소송에 맞서기 위해 제기했던 '청구이의 소'에 대한 판결을 통해 "강제집행을 불허하고 정지한다"며 뜬금없이 A씨의 손을 들어줍니다. 게다가 A씨는 강제집행 정지 신청을 하지도 않은 상태였습니다.
이것은 명백한 법리적 모순이자, 사법부가 스스로 내린 판결을 부정하는 판결이었습니다. '청구이의 소'는 현재 진행 중인 집행을 멈춰달라고 호소하는 절차입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이미 6개월 전에 집행이 끝나 사건 자체가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심판이 경기가 끝난 지 반년 뒤에 나타나 "6개월 전 경기는 무효"라고 외친 꼴입니다.
대법원 판례(86다카254 등)는 이런 경우 "재판의 요건조차 갖추지 못했으니 내용을 따지지 말고 즉시 '각하(재판 거절)'하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재판부가 이미 종결돼 존재하지도 않는 사건을 판결한 겁니다. 법조계에서 이를 두고 '유령 판결' 혹은 '부존재 판결'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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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장호 씨가 지난 2024년 대전지방법원 정문 앞에 당시 신숙희 대법관 등 사건 관련 판사들의 실명이 담긴 대형 펼침막을 내걸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
| ⓒ 심규상 |
지난 2024년 2월 신 판사는 당시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민주당 허숙정 의원이 이 사안에 대해 질의하자 "피고(이장호)의 진실은 제가 알기 어렵지만 결국 기록에 나타난 모든 증거를 종합해서 제가 법관의 객관적 양심에 따라 판결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반면 2007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당시 민주당 김종률 의원이 대전지방법원과 대전고법을 상대로 한 국정감사 중 '집행법원과 민사법원이 서로 다른 판결을 낸 것은 오심 아니냐'고 질의했습니다. 이에 대해 법원 측은 "민사 사건에서 당사자가 강제집행 종료 사실을 주장하지 않아 (판사들이 이를 몰라) 공정증서상의 채무가 소멸하였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습니다. 이씨가 채권 압류 및 전부명령 확정 여부에 대해 증명하지 않아 오판했다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이씨가 재판 과정에서 강제집행 종료 사실을 증명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당시 이씨는 재판 때마다 '채권 압류 및 전부명령 확정서'를 증거 자료로 제출했습니다.
민사법원의 이 '유령 판결'은 단순한 실수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수사기관은 이를 근거로 이씨를 몰아세웠습니다. '법원이 집행을 허가하지 않았는데도 돈을 받으려 했으니, 가짜 차용증을 근거로 돈을 착복하려고 한 사기범'으로 본 겁니다.
법원의 오심이 검찰의 논리가 되고, 다시 법원의 유죄 판결로 이어지는 기괴한 연쇄 고리가 형성되었습니다. 결국 이씨는 '사기미수'라는 죄명으로 재판에 넘겨졌고, 2001년 12월 징역 8개월(복역은 7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정당하게 법의 절차를 믿었던 시민이, 판사의 법리 오해 때문에 한순간에 파렴치한 범죄자로 낙인찍혀 감옥에 갇힌 것입니다.
오심의 연쇄 고리... 사기미수로 풍비박산 난 가정
7개월의 옥살이는 이씨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두 아이를 둔 한 집안의 가장이자 자영업자로 평생 남을 속여본 적 없다고 말하는 그의 삶은 '범죄자'라는 낙인 앞에 처참히 무너졌습니다. 감옥에 갇힌 사이 경제적 어려움은 심해졌고, 사회적 지탄을 견디다 못한 가정은 결국 이혼이라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씨는 말합니다.
"내가 지은 죄가 있다면 국가의 법을 믿은 죄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법은 내 권리와 재산을 뺏고, 끝내 가정까지 풍비박산나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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