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차 교육자가 마주한 현대사의 가장 정직한 얼굴
[오성훈 기자]
학창 시절, 나는 미술 시간이 제일 싫었다. 첩첩산중 시골 출신에게 미술 도구를 챙기는 일은 그 자체로 고역이었고, 소질 없는 손끝으로 무언가를 완성해 제출하기엔 늘 시간이 턱없이 모자랐다. 모르면 두렵고, 버거우면 멀어지기 마련이다. 내게 미술은 그렇게 자연스러운 거리감을 둔 채 잊혀 갔다.
그런 나에게 책 한 권이 배달되었다. <오마이뉴스>에 쓴 나의 교육 기사를 읽고 응원을 보내주던 지인의 선물이었다. 사실 책 선물만큼 조심스러운 것도 없다. 주는 이는 상대의 취향을 정밀하게 파악해야 하고, 받는 이는 그 정성을 '독서'라는 고된 노동으로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음을 정돈하는 독서
처음 마주한 책의 인상은 솔직히 말해 '난감'했다. 544쪽이라는 육중한 두께도 부담스러웠지만, 무엇보다 표지가 내 취향이 아니었다. 제목의 서체는 1970년대 어느 헌책방에서 방금 꺼내온 듯 했다. 지인의 정성을 생각하며 겉으로는 반갑게 웃었지만, 속으로는 이 책이 서가 한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게 될 운명임을 직감했다.
때로 어떤 노동은 고통을 잊기 위한 방편이 된다. 마음이 소란스럽고 생각이 헝클어져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때, 우리는 서둘러 책상을 정리하거나 옷장을 비워내곤 한다. 물리적인 물건을 가지런히 정돈하며 너덜너덜해진 마음의 올을 하나씩 고르는 것이다.
나에게 독서, 특히 소설을 읽는 행위는 바로 그런 종류의 '선한 노동'이다. 딱 그 시점이었다. 이 두꺼운 책이 내 책상 위에 잠시 머물게 된 것은. 표지에 적힌 '창작소설'이라는 네 글자가 마치 내게 말을 거는 듯했다.
"당신 지금 많이 힘들잖아. 이 이야기를 따라가며 잠시 네 마음을 정리해 보는 게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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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윤수_귀로 개인의 슬픔조차 국가의 기획 아래 놓였던 시대. 소설 <귀로>는 거대 권력의 파고 속에서 부서진 평범한 이들의 삶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
| ⓒ 바른북스 |
기이하게도 나는 놀라지 않았다. 불과 며칠 전, '엄석태'를 빼닮았던 동네 친구 녀석이 "박정희는 이제 오래 못 간다"라고 단언했기 때문이다. 그 아이의 말은 당시 우리에겐 법이자 진리였다. 페달을 밟으면 자전거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당연하듯, 철권 통치의 종말 또한 자연법칙처럼 느껴졌다.
그 길로 우리는 읍사무소 빈소로 집단 조문을 갔다. 초등학생들조차 예외 없이 동원되어 슬픔을 강요받던 풍경. 그것은 개인의 감정조차 국가의 목적을 위해 기획되고 관리되던 '국가 전체주의'의 민낯이었다.
국가 전체주의가 집어삼킨 소년의 계절
이 소설, 이윤수의 <귀로>(2023년 7월 출간)는 바로 그 압도적인 국가 권력 아래서 개별적인 삶들이 어떻게 부서지고 저항했는지를 응시한다. 조정래의 소설 <한강>이 부모 세대의 역사라면, 이 책은 그 전체주의의 잔상을 온몸으로 통과해온 '우리 세대의 연대기'다.
소설 속 인물들은 각색된 이름을 입고 나타나지만, 그들이 발을 딛고 선 땅은 우리가 기억하는 현대사의 가장 아픈 질곡들과 맞닿아 있다. 팍팍한 시골 삶을 뒤로하고 야간 열차에 몸을 실어 상경한 '명수'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한복판에 서고, 그의 누이 '명자'는 요정집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시대의 소모품으로 스러져 간다. 함께 자전거를 타던 삼총사 중 운동권이 된 '윤주'는 광주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나는 명수의 이야기를 읽으며, 지난 34년 동안 내가 마주했던 수많은 '제자 명수들'을 떠올렸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일찍이 노동 현장으로 뛰어들어야 했던 아이들. 그들이 지금 누리는 아주 작은 권리들조차, 소설 속 명수와 윤주 같은 이들이 남긴 부채 위에서 피어난 꽃이라는 사실이 시리게 다가왔다.
다만, 소설 전반부를 이끌던 명수의 퇴장 방식은 못내 아쉬웠다. 명수는 너무 이른 퇴장으로 무대에서 사라진다. 이승의 단짝이었던 윤주를 기억하는 모임은 세상에 만들어지지만, 명수의 죽음은 그저 고요한 망각 속으로 침잠 한다. 학생 운동의 서사는 화려하게 기록되고 대접 받는 동안, 공장 라인에서 소리 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명수'들의 죽음은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는 공허한 메아리가 되곤 한다.
역사의 정의를 완성하는 '이름 없는 복수'
나머지 한 명인 친구 '인철'은 군인이 된다. 소설 속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지만, 그는 윤주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을 파헤치는 집단의 일원이 되어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킨다. 그리고 훗날, 윤주의 죽음을 발판 삼아 권력을 탐했던 이들에 대한 복수를 마침내 완성한다.
나는 인철의 행보를 보며 전율했다. 역사의 정의는 화려한 조명을 받는 주인공이 아니라, 뒤편에서 진실을 목격하고 기억하며 끝내 행동한 '이름 없는 개인'들에 의해 완성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광장에서 어정쩡하게 비켜 서 있던 나처럼, 인철 또한 역사의 주변인이었으나 끝내 자기 방식대로 정의를 세웠다.
신기태, 정세영, 이영혜, 임연경으로 대표 되는 소설 속 정치인들, 그리고 프락치 역할을 서슴지 않았던 도연명 교수 같은 허구의 인물들이 명심해야 할 진리가 여기 있다. 민주주의는 광장에 섰던 몇몇 영웅의 전유물이 아니라, 가게 문을 닫고 학생들을 숨겨주던 이름 없는 시민들이 잠시 맡겨둔 권력이다. 그들이 딛고 서 있는 이 땅의 주인은 결코 '승리한 소수'가 아니라 '견뎌온 다수'의 국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간에 대한 예의, 우리가 돌아가야 할 길
1980년대부터 2020년대 초반까지, 현재진행형의 역사를 소설로 다루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작가는 소설의 형식을 빌려 그 뜨거운 역사를 정면으로 마주하고자 했다. 34년 차 교육자로서 나는 이 소설을 흥미롭게, 또 뼈아프게 읽었다.
나에게 이 책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우리가 마땅히 도달했어야 할 민주주의의 본령으로 돌아가는 '귀로(歸路)'였다. 그 묵직한 노동의 끝에서, 나는 이 소설이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오래된 부채의 청구서였음을 깨달았다. 교단에서 만난 수많은 얼굴들, 이름 없이 스러진 청춘들에게 우리 사회가 아직 갚지 못한 것들. 그것을 기억하고 되묻는 일, 그것이 거창한 이념보다 먼저여야 한다는 사실을 이 소설은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일깨워주었다.
낡고 투박했던 이 책의 표지가 어느새 우리 현대사의 가장 정직한 얼굴로 다가온다. 이 책을 덮으며 묻는다. 당신의 귀로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우리 시대의 또 다른 명수들은 지금 어디에서 숨죽여 울고 있는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사 채택 후 개인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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