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전 수에즈에 막힌 英 ‘치욕의 후퇴’…이란은 이걸 노린다

쇠퇴하는 제국의 무리한 도박인가. 이란을 공격 중인 미국을 향해 늘고 있는 평가다. 압도적 군사력으로 전과는 내지만,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인질 작전에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고 끌려가고 있다. 70년 전 수에즈운하 때문에 이집트를 공격했다 치욕적 철수를 한 영국과 프랑스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호르무즈 통행료” 법제화하는 이란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장악은 더 공고해지고 있다. 이란 의회 안보위원회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호르무즈해협 통과 선박에 이란 리알화로 통행료를 받는 내용의 계획안을 승인했다. 계획안엔 미국·이스라엘 국적 선박의 해협 통과를 금지하고, 이란을 제재하는 국가의 선박을 보복할 수 있다는 내용도 있다.

영국·프랑스 쇠퇴 보여준 ‘수에즈 모멘트’
이런 상황은 1956년 10월 29일 영국·프랑스·이스라엘이 이집트를 공격한 수에즈전쟁(제2차 중동 전쟁)과 유사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가말 압데르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이 그해 7월 수에즈 운하를 전격적으로 국유화하자 자국 기업을 통해 운하를 운영해 온 영국과 프랑스가 3달 뒤 이집트 공격을 감행했다. 나세르 대통령의 반이스라엘 노선이 못마땅했던 이스라엘도 참전했다.

전투는 3개국의 압승이었다. 개전 일주일도 안 돼 이집트 공군은 사실상 궤멸했다. 이스라엘은 시나이반도를 차지하고, 영국과 프랑스는 수에즈운하 북부지역을 점령했다.
하지만 이집트가 운하 입구에 배 수십 척을 침몰시켜 통항을 막으며 상황은 반전됐다. 유럽의 원유 수입 노선이 막혔고, 투자 자본이 영국 등에서 빠져나갔다. 당시 기축통화였던 영국 파운드화 가치도 급락했다. 사전 통보 없이 전쟁을 벌인 3개국에 격분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유엔을 통해 영국 제재와 휴전 촉구안을 결의하고, 국제통화기금(IMF) 지원까지 막은 결과였다.

여기에 소련의 핵 공격 위협까지 더해지며 3개국은 개전 열흘도 안 돼 수에즈운하 운영권을 이집트에 넘긴 채 철수했다. 강대국이던 영국·프랑스의 쇠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수에즈 모멘트’다.
“미국, 옛 영광 찾으려 무리한 전쟁”

실제로 미국은 수에즈 모멘트 당시 영국과 비슷한 처지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 등 이란 지도부 수십명을 암살하고 주요 군사시설을 파괴하는 등 전투에선 압도했지만,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되자 뾰족한 출구전략을 찾지 못하고 있다.

국제유가는 급등하고 이란의 벌떼 드론과 탄도 미사일 공격에 중동 미군 기지와 걸프 국가 피해는 늘고 있다. 해병대 등으로 하르그 섬 등을 점령하더라도 부담이 크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란의 강한 참전 요구에 예멘 후티 반군이 미군이 하르그 섬을 점령할 경우 홍해를 봉쇄할 방침을 정했다”고 전했다. 이란 역시 강력한 보복을 천명하고 있다.
역량 한계 드러낸 ‘미국판 수에즈 모멘트’ 가능성

파와즈 게르게스 영국 런던정경대(LSE) 교수는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에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정권 제거란 당초 목표를 달성하기는커녕 이란에 호르무즈해협이란 효과적 카드를 자신들이 가졌음을 알게 해 줬다”며 “향후 미국 주도 질서는 예전 같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걸프 국가는 미국과의 관계를 당장 끊진 않겠지만, 중국·러시아 등으로 다변화해 미국 의존을 줄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해롤드 제임스 프린스턴대 교수도 “수에즈 모멘트 당시 영국과 프랑스처럼 미국도 향후 스스로 초래한 위기를 혼자서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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