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부 직원 “석유값 고시 업무 고됐지만 비싸다 욕먹기 일쑤”

1978년과 79년. 이란 제국에서 발생한 혁명을 필두로 중동 정세가 격변하면서 국제유가가 치솟기 시작했다. 동력자원부(이하 동자부) 기록물 중 하나인 ‘동력자원행정10년사’를 보면 78년 12월 1일 기준 배럴당 12.70달러였던 한국의 원유 수입 가격은 79년 11월 1일 배럴당 24.00달러까지 치솟았다. 이 시점에서 1년 후인 80년 11월 1일에는 32.00달러로 30달러 선마저 넘겼다.
당시 한국이 소비하는 에너지원 중 석유 의존도는 78년 기준 63% 수준.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과 발전 연료로 중유를 쓰는 상황이 맞물리면서 비중이 급격히 높아진 시기였다. 그만큼 원유 수입 금액이 치솟을수록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지대했다. 이 때만 해도 정부가 판매 가격을 결정했었다. 다만 2026년 이란 전쟁으로 부활한 석유 최고가격제와 달리 출고 가격 외에 대리점 가격, 주유소 가격까지 정부가 유통 전반의 가격을 통제했다. 중동 발 2차 석유 파동은 가격 결정 권한을 지닌 동자부 유정과 직원들의 과로로 이어졌다고 한다. 시시각각으로 치솟는 국제유가를 감안해 원가를 계산하고 고시 가격을 확정하는 작업은 모두 수작업이었다. 80년대 초까지 동자부 유정과에서 가격 고시를 담당했던 김동원 전 나이지리아 대사는 “업무를 하면서 1년에 집에 5개월 정도만 들어갈 수 있었다”며 “원가 계산이라는 거, 사람이 할 짓이 아니구나 싶었다”고 회고했다.
사람이 할 짓이 아닐 정도였다고 표현한 이유는 계산 방식 때문이다. 김 전 대사는 우선 “석유 제품 가격은 국영기업이었던 유공의 원가 계산을 토대로 적용했다”며 “‘세후 자기자본의 10%’ 이익을 맞춰주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고 설명했다. 유공을 포함한 5개 정유사들이 다들 이익을 볼 수 있도록 치밀하게 계산을 해야 했다는 것이다. 이 산식은 1980년부터 환율이 고정환율제에서 변동환율제로 바뀌면서 더 복잡해졌다. 여기에 업계 문제도 껴들었다. 동일한 유종인 ‘아라비아라이트’를 수입하면서도 업체마다 수입 가격이 서로 다른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동자부 몫이었다. 김 전 대사는 “한 업체는 배럴당 12달러에 들여오고 또 다른 업체는 배럴당 16달러에 들여오는데 가격을 맞춰서 팔아야 하다 보니 14달러로 확정하고 16달러로 들여 온 회사에는 이익을 맞춰주는 방식으로 결정하기도 했다”고 평가했다.
고생을 해도 대중에게는 욕을 먹기 일쑤였다. 아무리 억누르려 해도 소비자 판매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김 전 대사는 “80년 6월인가, 59.45%를 또 올렸다”고 말했다. 이미 한 번 고시 가격을 50% 이상 올린 다음이었다. 신문 1면 사진은 기름값과 연관된 사진들이 차지했었다고도 전했다. 100% 이상의 가격 인상. 김 전 대사는 감사원 감사 대상이 됐다. 김 전 대사는 “그 때 저 한 명한테 감사원 직원 7명이 붙기도 했다”고 말했다.

급증한 가격도 가격이지만 원유 물량 확보 자체도 문제였다. 이란이 생산량을 감축하면서 국내에 들어 올 수 있는 원유가 급감했다. 이 때만 해도 원유 비축이란 개념 자체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당장 수일 내 국내에 휘발유를 공급하는 일조차 힘들어질 수 있었다. 실제 사용량 감소가 눈에 띈다. 동력자원행정10년사에 따르면 1979년 연간 원유 소비량은 1억8387만 배럴이었다. 하지만 이듬해부터 82년까지 3년 연속 소비량이 줄어든다. 1억7889만 배럴까지 감소했었다. 지금의 재정경제부 격인 경제기획원은 삽화까지 만들어 가정 내 소비 절약을 강조했다. 김 전 대사는 “가로등을 끄고 서울시 다리 조명을 어둡게 하고 골프장은 야간 운영을 못 하게 하는 조치도 시행했다”고 말했다.
정부 내부적으로는 2차 석유 파동 직후부터 수급 문제를 논의했다. 이봉서 전 동자부 장관은 “79년 초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는데 그 보고가 끝난 후 뒤에 조용한 방으로 가서 일부만 참가하는 회의가 진행됐다”며 “석유 문제가 만만치 않은 거 같은데 뭐 좀 손을 써야 하지 않겠냐는 지시였다”고 말했다. 국내 최대 정유사인 유공조차 수급이 쉽지 않은 상황을 감안한 조치다. 유공에 합작 투자했던 미국 걸프사는 2차 석유 파동이 발생하자 원유를 구하지 못했다며 한국 납품을 대폭 줄였다. 증언에 따르면 일일 공급 가능했던 양은 10만 배럴. 유공이 필요한 양의 40% 수준이었다고 한다. 이 전 장관은 “당시 대통령이 중동에 가야 한다고 했는데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다”며 “동자부 장관은 남미에 갈 일이 있었고, 다들 자신이 없던 차에 남덕우 대통령 경제담당 특별보좌관이 입을 열었다”고 회상했다. 남 특별보좌관은 부총리 재직 시절 한국의 중동 건설 참여와 관련해 맺은 인연을 토대로 나서보겠다고 밝혔다.

그렇게 남 특별보좌관을 단장으로 한 첫 사절단이 꾸려지고 동자부 실장급이었던 이 전 장관도 합류했다. 이 전 장관은 영어를 할 수 있는 이들이 적다 보니 합류했다고 밝혔다. 사절단은 1979년 2월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카타르 3개국 방문길에 나섰다. 석유를 조금이라도 구해오는 게 목표였다. 3개국 중 사우디아라비아산 원유는 우연찮게 확보가 가능했다. 이 전 장관은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했을 때 담당 장관은 볼 수도 없었다”며 “그런데 왕이 우리를 만나줬다”며 설명을 이었다. 시점을 감안할 때 칼리드 빈 암둘아지즈 알사우드 왕을 만났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전 장관은 “왕이 건설 현장에서 밤에 불을 켜고 일하는 한국인들을 봤다며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며 “한국에 대한 인식이 좋다며 두말없이 우리를 돕겠다고 했다”고 회고했다.
당장 해결될 거 같던 이 문제는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에나 정리가 된다. 사절단이 주 사우디아라비아 한국 대사관으로 이동한 뒤에도 며칠 정도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국영석유기업인 아람코의 과장급 한 명이 대사관으로 와서 몇 장 정도의 서류에 사인하라고 했다는 설명이다. 이 전 장관은 “당시에 사절단 대표도 없었는데, 사인하면 된다고 해서 사인을 했다”고 설명했다.
3개국 사절단을 시작으로 정부는 79년부터 80년까지 2년간 8차례의 사절단을 해외로 보낸다. 기록에 따르면 80년 5월의 경우에는 최규하 대통령이 직접 사절단으로 나서서 사우디아라비아 등 2개국을 찾기도 했다. 원유 확보와 함께 유사시를 대비한 원유 비축 작업도 병행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권고 기준인 90일을 채우는 작업이 순방과 함께 시작됐다.

석유류 가격 안정과 원유 수급만도 큰 일이었던 이 때 또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62년 제정한 대한석유공사법에 따라 설립한 국영 정유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미국 걸프사가 80년 8월 보유 중이던 유공 주식 50% 지분 전량을 558억원에 매각하고 떠났다.
이후 유공 민영화 작업이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당시 동자부는 이 전 장관이 포함된 3개국 특사가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했을 때 대사였던 유양수 장관을 수장으로 두고 있었다. 하지만 3개월만에 장관직을 내려놓고 나오게 된다. 유공을 민영화하면 바람직하지 않다는 유재흥 유공 사장의 뜻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 전달한 점이 기화가 됐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80년에 동자부 유정과로 자리를 옮겨 민영화 업무를 도맡았던 유창무 전 중소기업청장의 증언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실권을 쥐고 있던 국보위는 민영화 작업에 속도를 낼 것을 주문했다.
사무관이었던 유 전 청장은 낮에는 사무실, 저녁에는 남대문 인근 도큐호텔에 방을 잡고 민영화 작업을 진행했다. 80년 10월 하순에 국장급에서 내려온 지시였다고 한다. 선경과 삼성이 인수전에 뛰어든 상황에서 수시로 동자부를 찾는 기업 대관 담당들의 눈을 피하기 위한 조치였다. 유 전 청장은 “외부 작업도 눈치를 챈 거 같아 한 일주일 정도 기초 작업을 하고 다시 사무실에서 근무했다”고 설명했다.
‘기업 전 역량을 정유사업에 집중해야 한다’ 등 각종 항목에 가장 적합한 곳으로 선경을 정하는 일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같은 해 11월 정부는 민영화 결과를 발표했다. 현재 4대 그룹의 하나인 SK가 덩치를 키울 수 있게 된 순간이다. 이후 정유 4사는 전부 민간 기업으로 채워지며 국내 에너지 공급을 맡게 된다. 유 전 청장은 “지금 생각해봐도 민영화 필요성이 있었던 일”이라고 전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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