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전 스님의 마음 읽기] 영원

오래되었다는 것은 무엇이고, 오래된 것에 끌리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들은 영원할 수 있을까?
올 초 인도 대륙을 다녀왔다. 부처님께서 『금강경』을 설한 기원정사에서 만난 고목이 깊은 인상을 주었다. 부처님이 나무 아래에 앉아 깨달음을 얻으셨기에 그 나무를 보리수라 부르는데, 부처님의 열 명의 큰 제자 중 아난 존자가 부처님이 깨달은 바로 그 보리수의 묘목을 구해 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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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00년을 사는 부처님의 보리수
영원할 것 같지만 영원한 건 없어
생멸의 이치 통찰하면 즐거움이
」

그로부터 250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비스듬한 밑둥치는 황토로 싸놓은 깁스를 하고, 옆에서 갈라져 나와 뒤로 뻗은 큰 가지, 사선으로 뻗은 가지, 수평으로 빠져나와 아래로 쳐졌다가 다시 위를 향하는 가지 등을 받쳐놓은 철 지지대들, 갈라지고 뭉침을 되풀이해 거칠고 빛바랜 회색 껍질들, 고목이 된 이 나무는 몸을 뒤로 젖히고 두 팔 벌려 허공을 끌어안고 있다.
그날 초저녁 부처님 탄생지인 룸비니의 마야데비 사원을 참배했다. 어두운 밤에 인공조명으로 하얗게 빛나는 백색 사원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그 안에 기원전 3세기경의 부처님 탄생의 석판 부조가 있고, 그 밑에 부처님 발자국을 본떠 만든 족적석(足跡石)이 있다. 이 유물을 참배하도록 가장자리를 둘러 데크를 설치했다. 데크 가운데 빈 공간에 옛 기단의 벽돌들이 보인다.
그런데 흙을 뭉쳐 놓은 듯한 벽돌들의 누런 색과 그 표면에 피어나는 먼지 같은 흙 알갱이들의 바람불고 난 뒤에 가라앉은 듯한 질감이 그 옛날 이 사원이 지어졌을 때의 그 벽돌들 그대로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했다. 흙벽돌이 주는 고목과도 같은 느낌이 보리수 이상으로 풍겨났다. 태고의 것인 양 손대지 않은 흙벽돌이 주는 그 오래됨의 무게가 정신을 흔들고 짓눌렀다.
제행무상!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다.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요약한 것이다. 그러나 영원하지 않은 이 모든 것들 가운데 저토록 오래도록 서 있는 존재들은 무엇인가? 저 나무와 벽돌들은 무엇을 위해 저토록 존재하는가?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다(諸行無常)
이것은 나고 멸하는 법이니(是生滅法)
나고 멸함이 다하면(生滅滅已)
고요함이 즐거움일세(寂滅爲樂)
이 시를 듣기 위해 부처님께서는 목숨을 버렸었다. 부처님께서는 전생에 히말라야의 고행자였을 때 설산동자로 불렸다.
어느 날 동자에게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다. 이것은 나고 멸하는 법이니”라는 음성이 들렸다. 동자는 너무도 기뻐 나머지 시구를 듣고 싶었다. 동자는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튀어나온 이빨과 뒤집힌 눈알의 험상궂은 나찰뿐이었다. 혹시 하는 마음에 동자는 “그 시를 전부 내게 일러주신다면, 평생토록 당신의 제자가 되겠습니다.” 나찰은 “당신은 남의 사정은 신경 쓰지 않고 있소. 나는 지금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오. 내가 먹는 것은 사람의 따뜻한 피와 살덩이요.” 동자는 “나머지 반의 시구를 마저 가르쳐주면 기꺼이 이 몸을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 나찰이 그 반을 외웠다. “나고 멸함이 다하면 고요함이 즐거움일세.” 동자는 기뻐하며 몸을 날려 나무에서 떨어졌다. 이때 나찰이 제석천으로 변해 그를 받아 땅에 내려놓았다.
하루를 살다가는 하루살이에서 400년을 사는 그린란드 상어에 이르기까지 어떤 존재든 태어나면 죽는다. 하늘 세계의 존재들은 훨씬 더 오래 산다고 하지만 역시 죽는다. 죽지 않는 몸은 없다.
그러면 정신은 어떤가? 우리의 생각은 끊임없이 나고 멸한다. 이보다 더 빠른 것도 없고, 모양도 없다. 찰나 간에 생겼다 없어지기도 하고, 굳세고 선한 의지나 한번 맺은 원한이 평생을 가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에는 멸한다.
생겨난 것치고 멸하지 않는 것이 없다. 생멸하는 것을 빨리 버리지 못하고 사랑으로 애착하고 분노로 기름을 붓기 때문에 생멸을 따라 요동치고 증폭되고 걸려 넘어지고 끝날 줄 모른다.
모든 것이 생멸함을 깊이 통찰하면 생멸의 흐름에 쓸려 내려가지 않고 벗어날 수 있다. 기원정사 보리수와 룸비니 사원의 흙벽돌들도 나고 멸함의 끝을 보려고, 그 끝의 즐거움을 만끽하려고 그 오랜 시간을 묵묵히 존재하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각전 스님·범어사 교육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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