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TV 이어 ‘백색 가전’마저...

최창원 매경이코노미 기자(choi.changwon@mk.co.kr) 2026. 3. 3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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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이는 재고, 수요 예측 실패?

LG전자의 고민이 깊어진다. TV 사업에 이어 핵심 수익원인 ‘가전 사업’도 삐걱거리면서다. 일단 외부 환경이 좋지 않다. 가전을 포함한 글로벌 내구재 시장은 역성장 국면이다. 시장조사기관 닐슨아이큐(NIQ) 올해 초 자료에 따르면, 내구재 시장은 2025년을 기점으로 성장세가 둔화됐다. 2026년에는 전년 대비 0.4% 감소할 전망이다. 또 다른 전망 자료를 봐도 마찬가지다. 가전 등 내구재 시장의 핵심 중 하나인 미국 내 수요가 줄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 서카나는 올해 미국 내구재 산업 매출이 1.2% 감소한 418억달러에 머물 것으로 내다봤다. 판매 수량으로 보면 약 1억대가량 감소한다는 관측이다.

가전 불황의 흐름은 LG전자 사업보고서에서도 확인된다. 냉장고·세탁기 등 가전 부문을 담당하는 HS사업부의 재고는 매년 늘고 있다. 매출 증가폭을 크게 웃돌 정도다. 매출 확대보다 재고 축적이 더 빠르게 진행됐다는 건 수요 예측에 문제가 생겼다는 의미다. 실제 같은 기간 HS사업부 영업이익도 감소했다. 일각에선 수요 감소가 경쟁 강도 심화로 이어져 가격 경쟁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LG전자 핵심 수익원인 가전 부문을 둘러싼 영업 환경이 악화하고 있다. (LG전자 제공)
2년 만에 가전 재고 1조원 쌓였다

매출 증가폭의 3배…수익도 뒷걸음

제조업에서 재고 규모는 업황을 가늠할 수 있는 핵심 지표다. 재고가 곧 매출·비용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판매 속도가 둔화되면 창고에 쌓이고, 수요가 회복되면 빠르게 소진된다. 이 때문에 재고 흐름은 기업 실적보다 한 발 앞서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LG전자 HS사업부 측은 수요 둔화에 따른 가전 재고 증가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LG전자 관계자는 “사업의 볼륨 자체가 커지면서 재고 자산이 함께 늘었고, 관세·물류비 등 대외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 재고자산을 추가로 확보한 상황”이라며 “악성 재고 등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관련 업계에선 숫자를 근거로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매출 증가폭에 비해 과도하게 재고가 빠르게 쌓이고 있어서다. HS사업부 재고는 2023년 2조4605억원에서 2024년 3조1971억원으로 늘었고, 2025년에는 3조5997억원까지 확대됐다. 2년 사이 약 1조1000억원 늘었다. 증가율로 보면 약 46%에 달한다. 반면 HS사업부 매출은 같은 기간 22조6958억원에서 24조8057억원, 26조1259억원으로 증가했다. 증가폭은 약 15%다. 재고 증가 속도가 매출 증가 속도를 크게 웃돈다. 단순 비교만으로도 재고 증가율이 매출의 약 3배 수준이다. 판매 확대보다 재고 축적이 훨씬 빠르게 진행된 셈이다.

수익성 지표 역시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HS사업부 영업이익은 2023년 1조3157억원에서 2024년 1조3011억원, 2025년 1조2793억원으로 감소했다. 매출은 늘었지만 이익은 줄었다. 외형 성장과 실질 수익성 사이에 괴리가 발생한 것이다. 관련 업계 관계자는 “냉장고와 청소기 부문 등에서 중국 업체의 가격 경쟁력이 워낙 높다 보니 수익성 후퇴가 불가피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가전 시장에선 중국 업체의 공세가 거세다. 백색가전 판매량은 중국 하이얼이 선두를 달린 지 오래다. 시장조사 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하이얼은 지난해 기준으로 18년 연속 냉장고 판매량 1위를 차지했다. 세탁기 판매량의 경우 17년 연속 1위에 올랐다. 이에 LG전자는 2020년을 기점으로 ‘프리미엄’ 전략으로 돌아섰지만, 경기 둔화가 장기화하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란 사태’로 앞으로가 더 문제

사라진 라마단 특수, 치솟는 물류비

가전 사업을 둘러싼 환경은 더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수요 둔화로 재고가 쌓이고 있는 상황에서 외부 변수까지 겹치고 있어서다.

우선 수요 측면이다. 중동 지역은 글로벌 프리미엄 가전 시장에서 무시하기 어려운 소비처다. 특히 라마단 기간은 냉장고, 세탁기, 로봇 청소기 등 주요 제품 판매가 집중되는 대표적인 성수기로 꼽힌다. 가전 업체 입장에서는 연간 실적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달라졌다. 라마단 기간 중 이란 전쟁 사태가 겹치면서 소비 심리가 급격히 위축됐다.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고가 가전 구매를 미루는 흐름이 나타난 것이다. 매년 수익을 끌어올리던 ‘소비 특수’ 이벤트가 사라진 셈이다. 올해 라마단은 지난 2월 17일 시작해 3월 19~20일 끝날 예정이었다. 라마단의 정점인 지난 2월 28일 사태가 발발해 통상적 소비 특수도 모두 무산이 됐다.

비용 측면의 부담은 더 직접적이다. 중동 정세 불안은 글로벌 물류와 에너지 가격을 동시에 자극하는 변수다. 가전 산업은 구조적으로 물류비와 원자재 가격에 민감하다. 제품 부피가 크고 글로벌 판매 비중이 높아 운송 비용이 실적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해상 운송 차질이 길어질 경우 운임 상승은 불가피하다. 운송 경로가 길어지고 보험료와 위험 프리미엄이 더해지면서 물류비가 빠르게 증가하는 구조다. 여기에 유가 상승까지 겹치면 철강과 플라스틱 등 주요 원재료 가격도 함께 오르게 된다.

문제는 이 같은 비용 상승을 가격에 반영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미 수요가 둔화된 상황에서 가격 인상은 판매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결국 기업은 비용을 일부 떠안거나, 마진을 희생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이경화 나이스신용평가 기업평가4실 실장은 “가전 산업은 수익성 측면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며 “전반적인 물류비 부담과 전쟁 장기화 시 유가와 원재료 가격 부담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LG전자 등) 국내 가전 업체는 프리미엄 제품군 경쟁력을 앞세워 수익성과 경기 민감도를 일정 수준 방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나, 소비 심리 악화 지속 시 수익성에 부정적인 영향이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불황 타개 해법은 ‘홈 로봇’?

‘모라벡 역설’ 강조한 류재철

사업 전반의 둔화 대응을 위한 LG전자의 해법은 ‘가정용 로봇’이다. 최근 류재철 LG전자 최고경영자(CEO)는 자신의 SNS에 “많은 사람들이 산업용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의 가능성에 주목하지만 LG전자는 정형화되지 않은 가정환경에 집중하고 있다”며, LG전자의 홈 로봇 사업 경쟁력을 강조했다. 앞서 LG전자는 ‘CES 2026’에서 가정용 로봇 ‘LG 클로이드’를 공개하고 로봇 사업 강화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그는 ‘모라벡의 역설(Moravec’s Paradox)’을 근거로 들었다. 인간에게 쉬운 행동은 기계에 어렵고, 반대로 인간에게 어려운 계산은 기계가 쉽게 수행한다는 개념이다. 물건을 집거나 장애물을 피하는 동작처럼 인간에게는 자연스러운 행동도 로봇에는 복잡한 과제다. 특히 가정은 정형화되지 않은 환경인 만큼 난이도가 더 높다. 바닥에 물건이 널려 있거나 어린이가 움직이는 상황에서의 가사 노동은 로봇에 매우 어려운 영역이다. LG전자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 수많은 데이터를 확보해왔다. 회사 측은 이 데이터가 향후 로봇 사업의 경쟁력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최창원 기자 choi.changw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53호(2026.04.01~04.0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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