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료 문제 해결한다는 1.1조, 대형병원 운영비 안 되려면
[김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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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시내 한 병원 응급진료센터로 의료 관계자가 향하고 있는 모습. |
| ⓒ 연합뉴스 |
지자체들은 보건의료를 자신들의 일이라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그런 인식을 반영하듯 지자체 사무 중 보건의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무척 적다. 2024년 전국 17개 광역지자체의 보건의료예산은 전체 예산의 1~3%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대부분이 중앙정부가 시켜서 쓰는 돈이지 스스로 쓰는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
지자체 예산 중 복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9년 29.3%에서 2024년 47.5%로 18.2%p 증가했다. 같은 기간 보건 예산은 1.22%(3.2조 원)에서 1.48%(8.5조 원)로 겨우 0.26%p 늘었다(지방재정 365에서 제공하는 통합재정자료 분석). 이런 차이를 설명하는 '복지제도의 성숙으로 인한 자연 증가분' 같은 우아한 말이 있지만, 보건의료 연구자로서는 속이 쓰린 숫자다.
주민들의 삶과 안녕을 상대적으로 가까운 곳에서 살피는 지자체의 실력이 꼭 예산에 비례하는 건 아니지만, 보건 사업에 대한 지자체의 관심과 실력을 짐작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 유독 의료에 관해선 돈이 없어서, 전문적이어서 어쩔 수 없다며 손을 놓고 있는 동안 한국 의료는 어떻게 되었을까?
합리적인 병원이 만드는 불합리한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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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의료비 규모의 추이(1970-2023) 연간 의료비 증가율은 감소하고 있지만 여전히 고소득 국가 중에는 높은 편이다. 2023년 OECD 국가는 GDP 대비 9.1%를 의료비로 지출했는데, 한국은 같은 해 8.5%를 썼다. |
| ⓒ 보건복지부(2023). 2023년 국민보건계정 |
사정이 이러니 아주 잘한다는 병원에서도 병원에 온 환자를 잘 치료하는 것이 목표가 될 뿐, 병원이 위치한 지역 주민 전체의 건강을 책임진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현상. 병원에 오지 못하는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의 활동은 흔히 '의료봉사'라고 불린다.
병원 입장에서야 찾아오는 환자를 진료할 따름이고, 냉정하게는 돈 되는 환자만 골라 치료하는 편이 경영상 도움이 된다. 지역 주민이 평등하게 의료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는 말을 부인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공공성이 부족한 한국의 병원이 손들고 나설 것이라 기대하기 어렵다.
의료급여 환자처럼 비싼 진료를 권하기도 어려운 번거로운 환자는 가능한 한 피하고, 확실하게 수익이 나는 환자 위주로 치료해야 병원 경영이 안정된다. 의료진이 환자를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응급 수술과 자연 분만보다, 수술 일정을 미리 정할 수 있어 환자를 컨베이어벨트를 흘러가는 공산품처럼 치료하는 편이 수월하다.
1조 원짜리 의료개혁, 주민은 어디에?
정부도 이런 문제를 모르는 것 같진 않다. 올해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필수의료 강화 지원 및 지역 간 의료격차 해소를 위한 특별법(아래 지역필수의료법)은 지역의료를 강화하려는 목표를 담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이 법을 근거로 '지역필수의료 특별회계'를 설치해 재원을 확보하고, 이를 활용해 지역의료 인프라를 확충하고 의료 인력이 부족한 지역에 대한 안정적인 지원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관련기사).
최근 발표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지역 필수의료 강화를 위해 무려 1조 1300억 원에 달하는 예산을 확보하고, 8000억 원 규모의 신규사업을 발굴하기 위해 지자체들을 대상으로 수요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2024년 전국 공공병원의 적자가 약 9187억 원이니 쓰기에 따라서는 공공의료를 리부트할 수 있는 큰 규모의 돈이다(관련기사).
정부가 이 정도 규모의 투자를 진행한다면, 이제 새 예산이 지역별로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 제대로 배치될 수 있을지가 무척 중요해진다. 이제껏 의료에 대한 본격적인 기획이나 개입을 하지 않았던 전국의 지자체가 이런 규모의 예산을 효과적이고 또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이보다 더 고민스러운 건 이 과정에 시민이 끼어들 틈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법이 통과된 지 1년도 되지 않아 돈을 써야 한다는 것도 갑작스러운데,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각 지자체는 3월에 필수의료위원회를 만들고, 4월에는 사업계획을 세워 논의하고, 5월에는 최종사업안을 내야 한다.
정치적으로야 속도전으로 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고 해도, 이런 식이면 주민들의 입장과 의견이 반영될 공간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지역필수의료 특별회계를 어떻게 사용할지 사업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시도가 동원할 수 있는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기존 사업을 늘어놓는 정도에 그칠 참이라면, 의료를 위한 지방 분권 자치의 의미가 무색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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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 로비에서 한 환자가 대기하고 있는 모습. |
| ⓒ 연합뉴스 |
하지만 돈 안 되고 피곤한 진료를 덜어내는 방식으로 움직이는 의료의 '시장'에서 일부 전문분과, 어떤 지역 병원을 선별해 예산을 통으로 지원한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어렵게 마련한 지자체의 보건의료 예산이 보이지 않는 시장의 손을 타고 의사 인건비를 올리는 데에 그칠 뿐인 사례가 축적되고 있다.
지역의료를 강화하기 위해 예산을 쓰는 데, 주민들의 시야가 중요한 건 이런 이유다. 지자체는 사람들이 지금 불편하고 불안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장기적으로 해결해 나가기 위한 예산의 체계적 분배를 약속하고, 시민들은 여기에 대해 감시하고 평가하며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평생 한두 번 겨우 갈까 말까 한 상급종합병원의 관점에서 작성한 질병 중심 계획이 아니라, 지역의 의료를 위한 주민들의 계획이 움틀 공간을 보장해야 한다.
얼마 전 한국을 방문했던 룰라 대통령의 나라, 브라질 사례를 생각해 봤으면 한다. 참여예산제로 유명한 브라질의 참여민주주의 제도 중에는 건강 분야에 특화된 제도가 있다. 브라질의 대부분의 기초지자체가 운영하는 주민건강위원회(Conselho Municipal de Saúde)다. 단순한 자문기구가 아니다. 이 위원회가 없으면 연방 정부는 아예 교부금을 제공하지 않고, 위원회는 정부 보건 교부금 집행에 대한 실질적인 거부권(veto right)을 가진다.
건강위원회가 육천 개에 육박하니 무척 다양한 논의가 오가겠지만, 브라질 시민들은 이 위원회에서 국가보건의료제도의 공공성을 주장하고 민영화를 반대해 왔다고 한다. 소수의 부유층만 드나드는 대형병원에 새 장비를 구매하는 대신 동네 주치의를 늘려 일차의료를 강화하고, 빈민가에서 병원까지 환자를 실어나를 수 있도록 도로를 놓아 달라고 요구했다. 브라질의 까마득한 불평등을 떠올려 보면, 주민들이 보건 예산을 어떻게 쓸지 결정하는 자리에 직접 참여해 발언하도록 절차를 마련한 이들의 노력이 무척 중요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1조 원이 넘는 필수의료 예산이 출발선 앞에 선 지금, 이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일지를 결정하는 자리에 환자와 주민의 자리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돈이 생긴 게 어디냐, 잡음 내지 말라며 입을 막으려는 이들도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런 때인 만큼 시민들의 주목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강을 위한 주민들의 역량과 지자체의 실력을 키우려면 이전과는 다른 민주적 의사결정을 연습해야 한다. 지역의료를 위해 지자체가 기획하는 국가 예산을 어떻게 쓸 지를 시민들이 결정하는 일은 너무나도 당연해 보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건강사회구락부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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