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로 간 지상파 라디오 PD "망하면 다 같이 죽는 거죠"
[이영광 기자]
사회 변화로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사라진 지 오래다. 특히 방송계에서는 이직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번엔 라디오 PD가 유튜브 연출을 위해 방송사를 떠났다. 바로 민경남 PD다. 민 PD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 SBS <김태현의 정치쇼>를 연출했다. 그런 그가 지난 3월 초 퇴사해, '헬마우스'라는 닉네임으로 알려진 임경빈 작가가 진행하는 유튜브 방송 <헬마 라이브>를 연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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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튜브 <헬마 라이브>의 한 장면. |
| ⓒ 민경남 제공 |
- 오랫동안 아침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을 연출하다가 유튜브로 이직했어요. 2주정도 됐는데 어떤가요?
"새롭게 시작하다 보니까 진짜 정신없었고 바빴어요. 런칭 직전에는 주말 밤낮 없이 계속 나와서 세팅하느라 정신없었고요. 지지난주에 파일럿 3편 제작하고 지난주부터 본방송 시작해서 이제 막 일주일 조금 넘은 거거든요. 벌써 몇 달 된 기분이에요. 그만큼 정신없이 바빴어요."
- 생활 패턴이 완전 바뀐 거잖아요.
"바로 직전까지 새벽 7시 생방송을 오랫동안 만들어왔고, 지금은 11시 생방송을 하게 됐잖아요. 편해질 줄 알았는데 그게 전혀 아니었습니다(웃음). 일단 오전 11시 방송이라도 제대로 만들려면 조간신문이나 라디오 모니터가 기본이잖아요. 그러려면 이전과 비슷하게 일찍 일어나야 하더라고요. 그리고 저희 팀원이 많지 않기 때문에 밤까지 저도 직접 취재하고 원고도 쓰고 자료도 준비해요. 결코 편해지진 않았지만, 이제 막 새로 시작하는 재미가 더 크죠."
- TV PD가 OTT나 케이블 또는 별도 프로덕션을 설립하는 경우는 있었죠. 민 PD님의 경우 라디오 PD가 팟캐스트도 아닌 유튜브로 간 최초의 사례 아닌가 싶어요.
"제가 알기로도 라디오 PD가 직접 유튜브를 차리고 만들기 위해 아예 회사를 그만두고 나온 케이스는 제가 처음인 것 같아요. 그래서 주변에서도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와 살아남을지에 대해서 궁금해하더라고요. TV PD들은 이직도 잦고, 제작사나 OTT와 계약을 해서 꽤 좋은 처우 보장받고 움직이는 경우가 많잖아요. 라디오 PD는 그럴 기회가 적다는 점에서 차이는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새로운 도전이나 기회를 찾다 보면 지금처럼 완전히 새로운 걸 도전하는 시기가 한 번쯤 온다고 생각하거든요.
제 입장에서는 유튜브가 새로운 장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요. 또 제 경력을 돌이켜 보면 제가 아침 시사 라디오만 거의 10년을 했는데, 그중에 8년 동안 유튜브를 병행했어요.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 SBS <김태현의 정치쇼> 거치면서 라디오 최초로 유튜브 라이브를 송출하고, 유튜브 오리지널 프로그램 런칭하는 일을 계속해 왔거든요. 가능성을 봤고, 더 잘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넘어왔는데 와보니 좀 달랐죠."
- 어떤 부분이 다르던가요?
"10년간 시사 라디오를 만들며 나름대로는 꽤 분투했다고 생각했지만 따지고 보면 아주 좋은 기반 위에서 방송을 만들어 온 거였어요. CBS에서 막내로 시작할 때는 탁월한 선배들이 닦아놓은 프로그램의 노하우와 기반 위에서 PD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었고요. 또 SBS로 옮긴 다음에는 큰 회사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마음껏 일 할 수 있었어요. 그때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두고 나와서 완전히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보니까, 이게 보통 일이 아닌 거예요. 팀원들을 모으고, 스튜디오 만들고, 프로그램 틀 잡고, 패널들 섭외하고, 채널 개설하고, 음악이나 CG 영상 제작하고요. 이전에는 좋은 기반 위에 안온하게 일을 해온 거였고, 지금은 모든 것이 새로 시작하는 거니까요. 매우 빡세지만 매우 재밌어요."
- PD님은 모험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저는 왜 그럴까요(웃음)? 모르겠어요. 제가 막 모험 자체를 엄청나게 즐긴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제가 대학원을 졸업하고 언론 방송 쪽으로 넘어온 그 시기가 언론 시장이 크게 변하는 시기였어요. 왜냐하면 그맘때쯤 인터넷 포털의 시대가 왔고, 그다음에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의 시대, 그다음에 유튜브의 시대가 그리고 그다음에 유료 OTT들이 TV 쪽으로 들어왔잖아요. 제가 PD를 하는 시간 동안 우연히도 큰 변화의 흐름이 있었던거죠. 특히나 라디오 같은 경우는 오랫동안 사양 산업이었잖아요. 그런 와중에 유튜브라는 새로운 매체를 만나 기회가 생긴 거고, 기존 라디오 시사가 유튜브 문법에서도 가능하다는 노하우들이 계속 쌓여왔던 것 같아요. 특히 제가 라디오 PD이면서 주요 시사 프로그램의 PD를 오래 맡다 보니 새로운 것들을 계속 만들 기회들이 주어졌던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는 라디오 PD들 사이에서 시사 프로그램은 기피 대상이거든요. 저 같은 경우는 그 안에서 오래 버틴 덕에 오히려 도전의 기회가 계속 주어졌던 것 같아요. 그러다 급기야 완전히 유튜브로 넘어가 보자고 생각하게 된 거죠."
- (이직) 제안을 받으신 건가요?
"작년에 개인적으로 고민이 정말 많았어요. 계엄이 제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된 것 같아요. 그게 성공했다면 나, 가족, 주변 사람들의 삶이 다 망가질 수 있었잖아요. 거기에 대한 공포감, 분노 같은 감정을 가지고 계엄 국면이 정리될 때까지 정말 미친 듯이 일했거든요. 그리고 대선 이후에는 특집 인터뷰를 모아서 책도 출간하고, 공개방송까지 했어요. 감사하게도 좋은 성과를 많이 거뒀지만, 그런 걸 다 마치고 연말쯤 되었을 때, 스스로를 돌아보니 뭔가 허무하더라고요. 지금까지 해온 이상으로 새롭게 해볼 수 있는 일이 더 있을까란 의문이 들었어요. 그리고 이런 고민을 주변에 많이 이야기했고요. 그러다 '헬마우스' 임경빈 작가와 의기투합하게 됐습니다. 원래도 친분이 있던 사이인데 그때쯤 만나서 이야기하다가, '형, 저랑 같이 새로운 거 해보실래요?'라고 해서 시작된거죠."
- 어쨌든 회사원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안정적인 걸 꼽을 수 있는데요. 모든 걸 새로 시작해야한다는 점에서 고민이 많았을 것 같아요. PD님은 혼자가 아니고 가족도 있잖아요.
"아주 중요한 질문이네요(웃음). 근데 생각보다 고민을 길게 하진 않았어요. 당연히 불안감이 없진 않았죠. 왜냐하면 지상파 방송국은 안정적이고, 내가 만드는 프로그램이 망해도 제 월급은 나오는 거잖아요. 월급과 정년이 보장된 삶 자체도 나쁘지 않은 삶이었다고 생각해요. 근데 결심하던 그때는, 지금이 아니면 다신 새로운 일을 해볼 기회가 없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제 나이가 그렇게 적진 않거든요(웃음). 몇 년 후에 후회하기보다는, 지금 일단 지르자는 생각이었어요."
- 아내가 반대하진 않았나요?
"많이 응원해 주는 입장이었어요. 새로운 비즈니스에 도전하는 차원이었고, 굶어 죽지는 않겠지 하는 생각이었죠. 근데 막상 와보니 제가 많이 바빠져서 육아 참여가 줄어들었거든요. 아내한테 많이 미안한 상황이죠."
- 지난 3월 9일 SNS에 "구독자 0, 조회수 0으로 다시 첫 방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라고 올리셨잖아요.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했을 것 같아요.
"뭔가를 시작한다는 게 생각지 못한 변수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파일럿 방송으로 처음 생방송 라이브 토크를 할 때가 생각나요. 스튜디오에 패널들 모셔놓고 처음 라이브로 토크 하는 거였어요. 테스트도 다 해놓고 준비한 대로 시작을 했는데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고 댓글 창이 난리난 거예요. 눈앞이 노래지더라고요. 처음으로 저희가 생방송으로 시청자들을 만나는 순간인데, '이분들이 저희를 영영 버리고 떠나버리면 어떡하지, 오늘로 망하는 거 아닐까'라고 생각했어요. 후배 PD와 장비를 이것저것 눌러보고 점검하다가 제가 일단 껐다 켜보자고 했어요. 정말 다행히도 스트리밍 PC를 재부팅하고 나니까 소리가 정상적으로 나기 시작하더라고요. 댓글 반응도 그렇고 시청자분들이 많이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처음 10분 소리가 안 나가는 동안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가, 방송을 마쳤을 때는 정말 희열 같은 게 느껴지더라고요. 이래서 생방송을 못 끊어요."
"너무 감사한 일이고 좋은 출발인 것 같아요. '처음에 잘 돼서 유튜브 쉽다고 생각할까 봐 걱정된다'라는 댓글도 올라오더라고요(웃음). 근데 저도 이것보다 훨씬 안 좋은 환경에서 이미 유튜브를 해봤잖아요. 그래서 지금 이 수치가 얼마나 대단한 건지, 벌써 광고도 들어오고 이런 것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최고동접자도 벌써 2만 3천 명까지 나왔거든요. 진짜 그걸 절대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시청해 주시는 분들께 진짜 너무 감사하다, 덕분에 저희가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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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경남 PD |
| ⓒ 민경남 제공 |
"일단 <헬마 라이브>가 추구하는 게 관점이 있는, 새로운 정보가 많은, 재밌는, 젊은 방송이거든요. 이런 걸 고려해서 패널들을 구성했어요. 요즘 방송과 유튜브에서 활약하는 유능하고 재밌고 젊은 기자와 평론가들 중심으로 모셨고요. 모으고 보니 전원 80년대생 이하로만 모여있더라고요."
- <헬마라이브> 포맷이 기존 PD님이 하시던 방송과는 다르던데요.
"가장 큰 차이는 관점이 있다는 거죠. 지상파에서 시사 프로그램을 만들 때는 중립성을 갖는 것, 혹은 중립성의 외피를 갖는 것이 기본 전제가 되어있잖아요. 그러면서도 라디오를 기반으로 유튜브 오리지널을 만들 때는 그 틀에서 조금씩 벗어나면서 어디까지 가능한지 실험을 했던 거 같고요.
그러다 완전히 유튜브의 세계로 넘어와 시사 프로그램을 만들게 되니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한 명의 프로듀서로서, 한 명의 프로페셔널 방송 제작자로서, 처음으로 어떤 관점이 있는 방송을 만들어 본다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고요. 새로운 문법 위에서 새로운 콘텐츠를 제작해 본다는 그 경험 자체가 매우 흥미롭고 배울 것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리고 저희 팀원들이 각자 영역에서 다 한가락 하던 사람들이거든요. 헬마우스는 평론에서, 유석준 PD는 영상에서요. 제가 잘못하는 부분의 전문가들과 하루 종일 있다 보니 제가 모르던 것들을 많이 배우고 있어요. 또 이번에 새롭게 채널을 파면서 새로운 시청자들을 만나게 됐잖아요. 유튜브이다 보니 라디오 시절보다 더 적극적으로 시청자들과 소통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주로 광고 시간에 얼굴을 비추는데 되게 재밌는 반응들도 많고요. 이 점도 매우 재미있어요."
- <헬마라이브>는 삼국지 콘셉트인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특별히 이유는 없고 그냥 회의하다가 이게 재밌겠다 해서 덜컥 정해졌어요. '동남풍'이라는 헬마우스의 칼럼 코너가 먼저 정해졌고, 자연스럽게 그 뒤 떼 토크 코너는 '적별썰전'이 됐어요. 저희 팀원들이 전부 80년대생들이거든요. <헬마라이브> 프로그램을 즐길만한 저희 위 아래 또래 분들이라면 어린 시절에 해본 삼국지 게임에 대한 추억이 있어서 반가워하시는 것 같아요. 그리고 또 삼국지는 워낙 고전이다 보니까 세대 불문하고 딱 들으면 딱 꽂히는 이미지가 있는 것 같고요."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지금은 저희 <헬마 라이브>를 성공한 콘텐츠로 만드는 게 계획이에요. 왜냐하면 제가 그동안 살아보니까 계획대로 살아지는 경우가 거의 없더라고요. 눈앞에 주어진 목표에 맞춰서 정말 죽어라 최선을 다하면 그다음에 새로운 목표가 주어지고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는 걸 많이 겪어와서요.
수치를 그렇게 정해놓지는 않았는데, 지금 <헬마 라이브>가 10만 구독자를 목전에 두고 있어요. 그러면 저는 일단 10만 달성하는 게 목표인 거죠(27일 10만 구독자가 넘었다-기자주). 사실 저희 팀원들 모두가 각자 영역에서 잘 자리 잡고 일해오던 사람들이에요. 그만두고 여기 모인거거든요. 이게 성공하지 못하면 저희는 죽는 겁니다(웃음). 망하면 죽는 거기 때문에 죽을 각오로 어떻게든 성공시킨다는 게 게 현재의 유일한 목표예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북의소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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