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 약 대신 콧속에 칙칙… 보다 안전한 새 소아 진정법 주목

민태원 2026. 3. 31.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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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건강] 소아 진정약제 한계 극복
아이들은 병원 검사나 시술을 받을 때 불안, 스트레스가 커 미리 잠들게 유도하는 진정법이 필수적이다. 최근 약물을 코에 뿌리는 방식으로 기존보다 안전한 소아 진정법에 대한 임상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인공지능(AI) 생성 이미지

덱스메데토미딘·케타민 투여 땐
기존 약제에 없던 진통 효과 확인
무호흡 등 부작용 5분의 1로 줄여
“건보 적용 등 제도적 지원 나서야”

아이들은 병원에서 치료받는 상황이 되면 스트레스와 불안이 커서 간단한 검사나 짧은 시간의 시술도 어려울 수 있다. 이 때문에 움직이지 않도록 사전에 잠들게 유도하는 ‘진정법’이 필수적이다. 응급실 등 진료 현장에서 흔히 시행된다. 약물을 사용해 의식 수준을 낮추지만 스스로 호흡 가능하고 혈압, 심박수도 잘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 수술 시 필요한 전신마취보다는 약한 단계다. 2009~2018년 전국 응급실에서 이뤄진 소아 진정은 연간 4만건에 달했다. 15세 이하 소아 응급실 방문의 약 3.8%에 해당된다.

서울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김진태 교수는 30일 “학령기 이전 아이의 대부분은 아프지 않은 검사를 받을 때도 진정이 필요하고 더 자란 아이들도 통증이 있는 시술이나 검사를 받을 때 진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진정 시 호흡이 느려지거나 저산소증이 발생하는 등 위험한 합병증이 따를 수 있어 특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더구나 국내엔 소아 진정을 위한 약제가 매우 제한적이고 모니터링 체계도 미비해 진정 실패나 합병증 위험이 큰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에 널리 쓰여 온 먹는 약이 아니라, 코에 뿌리는 약으로 진정 효과는 비슷하고 부작용은 80% 줄이는 새로운 전략이 최근 제시됐다. 연구를 통해 이전보다 안전하고 효과적인 소아 진정법임이 입증됐으며 향후 의료계 확산을 위해선 의료기관 내 표준 지침 마련, 의료진 교육 및 환자·보호자 대상 홍보, 건강보험 적용 등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존 소아 진정 약제의 한계

서울대병원 김진태·장영은 교수팀은 7세 미만 128명을 대상으로 경구용 진정제(포수클로랄) 사용 그룹과 비강 분무 진정제(덱스메데토미딘·케타민) 투여군을 비교한 임상 연구를 진행했다. 해당 연구는 한국보건의료연구원 환자 중심 의료기술 최적화 연구사업단(PACEN)의 임상적 가치 평가 대상 과제로 선정돼 2020년 12월부터 최근까지 4년간 수행됐다.

‘포크랄 시럽’으로 불리는 포수클로랄은 약 150년 전에 개발된 약으로 저렴한 장점이 있지만 미국 등 해외에선 발암 및 안전성, 구역·구토 발생 등 이슈가 제기돼 약 15년 전부터 더 이상 권고되지 않고 있다. 이 약제의 최초 진정 실패율은 21.8%로 높은 편이며 실패 시 합병증 발생률도 성공군 대비 약 2.8배에 달하는 걸로 보고된다. 장영은 교수는 “포크랄 시럽은 쓴맛 때문에 약물을 제대로 삼키지 못하거나 토하는 경우가 빈번해 흡수율의 개인차가 크다. 또 의식을 저하시키는 작용만 있을 뿐 통증을 줄여주지는 못해 검사나 시술의 자극이 강한 경우 충분한 진정 효과를 얻지 못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체중 당 투여량을 늘리면 진정 성공률을 높일 순 있지만 그로 인해 호흡 저하, 무호흡, 심혈관 합병증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

또 다른 문제는 포크랄 시럽의 수급이 불안정한데도 국내에선 검증된 대체 약물이 사실상 부재해 계속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2024년 초 제조사 사정으로 전국 소아 의료 현장에 해당 약품의 공급이 끊겨 상당한 혼란이 초래된 적 있다. 물론 정맥 주사로 진정하는 방법도 있으나 아이들에게 주사 공포 등 부담이 따라 꼭 필요한 경우 적용된다.

반면 비강 분무제로 쓰인 덱스메데토미딘과 케타민은 진정과 진통 효과를 같이 나타내며 호흡 억제는 비교적 적은 약물로 알려져 있다. 둘 다 미국 등에서 포크랄 시럽 대체 약물로 콧속 투약이 널리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코에 뿌리는 방식의 소아 진정이 거의 시도되지 않았고, 특히 두 약물을 병용 투여해 효과를 검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새 소아 진정법, 현장 확산돼야”

연구 결과, 먹는 약과 코에 뿌리는 약은 아이를 잠들게 하는 효과는 각각 66.7%와 75.8%로 비슷했으나 무호흡 등 부작용 발생률은 비강 분무군이 3.2%로 경구 투약군(16.7%)보다 5분의 1 수준으로 낮았다. 장 교수는 이에 대해 “두 가지 약물의 호흡 유지 효과가 좋은 점, 구토·구역이 적어 투약 용량이 잘 전달되는 점, 투약 후 아이들 간 편차가 크지 않게 진정 효과로 이어졌다는 점 등이 주요 요인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또 18세 미만 소아청소년 197명 대상으로 진정에 따른 부작용 위험 상황을 보다 일찍 인지할 수 있는 방법도 검증했다. 아이가 잠든 동안 산소 농도만을 측정하는 기존 방식 대신 숨 쉴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함께 측정하는 ‘캡노그래피(ETCO₂) 모니터링’을 도입한 결과 저산소증 발생률이 15.6%로 기존(32.7%)보다 절반 이상 감소하는 효과를 확인했다.

연구팀은 새로운 소아 진정 기술과 모니터링 방식의 안전성 개선 효과가 명확히 확인된 만큼 진료 현장에 확산을 서둘러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개별 의료기관의 자율적 도입, 시장 메커니즘만으로는 보급에 한계가 있으므로 관련 학회 주도 가이드라인 마련, 약물 적응증 확대, 건강보험 적용, 소아 진정 수가 인상 등 제도적 기반 마련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현재 서울대병원을 비롯해 규모 큰 몇몇 대학병원만이 콧속 분무 진정법을 시행하고 있다.

두 약제 및 비강 분무 장비(아토마이저)에 대한 건보 미적용으로 1회당 본인 부담 비용은 기존 먹는 약보다 10배 이상 비싸다. 김진태 교수는 “안전하고 효과적인 소아 진정과 마취는 소아 진료에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한 부분”이라며 “이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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