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집앞 은행… 디지털 약자 어쩌나
은행 가려면 버스타고 지하철타고
고령층이나 지방 고객들 불편 호소

주요 상권과 주택가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던 은행 점포가 줄어들고 있다. 임대료·인건비 등 제반 비용이 상승하는 추세에 모바일 금융이 보편화하면서 점포를 유지할 실익이 떨어지면서다. 변화는 몇 년에 걸쳐 전국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지방에서도 이런 흐름이 가속하는 분위기다. 고령층을 비롯한 디지털 취약 계층의 불편이 커진 셈이다. 금융 당국은 이런 현상이 공공 인프라를 약화한다는 판단하에 점포 폐쇄 절차 강화 작업에 나섰다. 금융 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국내 은행의 오프라인 점포 수는 5523개다. 2018년 말(6794개)보다 1271개 감소했다. 2020년 이후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비대면 금융 이용량이 급증하면서 점포 감소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고, 창구 방문 대신 모바일을 이용하는 소비 패턴이 자리 잡았다.

은행 점포 수 감소 현상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의 은행 점포 수는 2020년 7만3107개에서 지난해 6만8632개로 대폭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영국은 9555개에서 6180개, 호주는 4769개에서 3205개로 감소했다. 한국의 성인 인구 10만명당 점포 수는 12.7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15.5개)보다 낮은 편이다.

모바일 금융의 확산은 점포 축소세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스마트폰 하나로 계좌 개설, 송금, 공과금 납부, 대출 신청, 투자 상품 가입까지 금융 업무 대부분을 처리할 수 있게 되면서 은행 방문 필요성이 크게 줄었다. 3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입출금 거래의 인터넷뱅킹 비중은 지난해 3분기 기준 86.5%에 달했다. 과거엔 창구 직원의 설명을 듣고 처리되던 업무들이 이젠 몇 번의 터치만으로 가능해진 것이다.
비용 문제는 점포 수 감소의 중요한 배경이다. 은행 점포를 유지하기 위해선 임대료와 인건비 등 고정비가 지속해서 발생한다. 특히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에 있는 점포일수록 비용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방문객이 줄어들면서 은행 입장에선 수익성이 떨어지는 점포를 정리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졌다. 정부의 고강도 가계대출 규제 등으로 은행 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면서 효율화를 위해 점포 구조조정을 선택한 것이다.
과거엔 점포 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일정량의 방문객 수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지만, 이젠 디지털 채널 경쟁력이 핵심 요소로 평가받는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의 편의성을 높이고, 비대면 상담 기능을 강화하는 데 투자가 집중되는 분위기다. 인공지능(AI) 기반 상담 서비스를 도입해 응대 효율을 높이거나 데이터 분석을 활용해 개인 맞춤형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이런 흐름을 고려하면 향후 은행 점포의 역할은 현재보다 전문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방향으로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단순 입출금이나 송금 업무는 대부분 비대면으로 처리되고, 오프라인 점포는 자산관리나 고액 자산 상담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 중심으로 재편될 전망이다. 청년층은 이런 변화를 반기는 분위기다. 직장인 강모(29)씨는 “평일에 은행 가서 업무 보기가 어려워 불편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젠 앱으로 문제가 거의 해결이 돼서 큰 불만은 없다. 앱으로 더 많은 것을 처리할 수 있도록 더 많은 기능이 추가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은행 점포 감소세를 반기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고령층과 지방 거주자들은 변화의 부담을 그대로 떠안아야 한다고 토로한다. 인구 감소와 거래량 부족으로 은행이 점포 폐쇄량을 늘리면서 불편을 겪고 있다. 서울·부산 등 대도시와 달리 대부분 시·도 지역은 인구 대비 점포 밀집도가 전국 평균을 하회해 지역별 편차가 큰 상황이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당 점포 수는 1.25개다. 서울은 ㎢당 점포 수가 4.23개 정도지만, 제주도를 제외한 시·도 지역은 전부 2개 미만이었다. 점포 이용을 위한 지역별 이동 거리 차이도 상당한 편이다.
디지털 활용 능력이 떨어지는 이용자들의 금융 장벽이 높아졌다. 고령층은 특히 비대면 금융을 아직도 피하는 분위기다. 보이스피싱 같은 금융 사기에 취약한 입장에선 모바일 금융이 두려워 불편해도 직접 은행에 가야 한다는 것이다. 대구에 사는 70대 김모씨는 “얼마 전 집 근처에 있던 은행이 없어지면서 버스를 타고 나가서 업무를 보게 됐다. 휴대전화 앱을 사용하는 건 아무래도 어려워 젊은 직원의 도움이 필요한데, 업무 한 번 보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여기에 국내 은행은 현금자동입출금기(ATM) 대수도 줄이고 있다. 지난 5년여간 ATM만 7000대가 넘게 줄어들었다. 현금 사용 비중이 여전히 높은 고령층엔 이러한 변화가 일상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평가가 나온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금융 업무를 떠나 지방에선 아직도 동네 은행이 사랑방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은행은 시니어 전용 점포나 화상 상담 창구 등 대안을 마련하고 있으나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하고 있다.
금융 당국은 점포 축소로 인한 고령층·지방 금융 소외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금융 당국은 이달부터 은행 점포 폐쇄 대응방안을 운영하며 영업점 폐쇄 기준부터 강화했다. 그동안 반경 1㎞ 안에 있는 점포를 통폐합하는 경우는 폐쇄 절차를 밟지 않아도 되는 예외 사례로 인정됐다. 그러나 이 규정을 악용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점포 폐쇄 결정 절차를 엄격하게 설계하기로 했다.
사전영향평가도 체계화했다. 현재 은행별로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평가 방식을 ‘현황 분석-영향 진단-대체수단 결정’ 단계로 정비하고, 평가 항목도 기존 4개에서 8개로 세분화했다. 또 지방 거주 금융소비자의 금융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해 광역시 외 지역에서 점포를 폐쇄할 경우 지역재투자평가에서 감점을 확대했다.
전문가 사이에선 균형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오고 있다. 이시연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은행 점포 폐쇄 문제는 비은행 금융기관 점포의 지역 내 분포 문제까지 통합해 고려해야 한다”며 “금융서비스 접근성의 범위와 질, 비용 등 측면에서 대체 가능성이 어느 정도 확보될 수 있는지에 대해 보다 면밀한 평가 기준과 통합적인 검토 절차 마련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박성영 기자 ps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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