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이냐 금이냐... 이 사람의 입을 주목하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전례 없는 정치적 폭풍에 휩싸였다. 트럼프 행정부의 노골적인 연준 장악 시도 속에서, 케빈 워시 차기 의장 지명자는 경제학적 궤변까지 동원하며 주군을 향한 구애를 펼치고 있다. 문제는 그의 이런 위험한 행보가 글로벌 기축통화인 달러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는 점이다. 곧 열릴 청문회를 앞두고 투자자들이 반드시 짚어봐야 할 관전 포인트를 해부한다. <편집자말>
[차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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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워싱턴 D.C.연방준비제도 |
| ⓒ 로이터 연합뉴스 |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먼저 차기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을 발표해 놓았는데도 진도가 훨씬 느리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케빈 워시를 차기 의장으로 지명한 사실을 언론에 밝힌 것은 1월 30일이었지만, 상원에 공식적으로 인사청문회 개최 요청서를 보낸 것은 3월 4일이었다. 이란과의 전쟁 때문에 늦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청문회가 언제 열릴지조차 불투명하다. 워시 앞에 놓인 첫 번째 관문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지난 1월 9일 미 법무부가 제롬 파월 현 연준 의장이 의회에서 위증했다는 이유로 소환장을 발부했다. 누가 보기에도 '망신 주기'에 불과했으며, 임기 만료 전에 사임하라는 압박이었다. 결국 법정 싸움으로 번졌는데, 지난 13일 법원은 연준의 손을 들어주었다. 담당 판사는 "소환장의 유일한 목적이 파월로 하여금 대통령의 요구에 굴복하거나 사임하도록 압박·괴롭히는 것임을 보여주는 증거가 넘쳐난다"면서 "파월이 대통령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것 외에 어떤 범죄를 저질렀다는 증거를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라고 판결했다.
이쯤 되면 법무부가 발을 빼야 하지만, 체면 때문인지 즉각 항소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고 있으니, 결국 후임 의장의 취임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 상원 상임위원회에 소속된 민주당 의원 전원은 물론이고, 공화당의 톰 틸리스 의원까지 나섰다. 소환장 발부를 취소하지 않으면 차기 의장 임명을 위한 인사청문회 개최를 거부한다는 입장이다. 이른바 '홀드(hold)' 전략인데, 그것을 해제하려면 상원 전체 표결에서 60표가 필요하나 현재 공화당은 53석에 불과하다.
한국은 국회 상임위에서 15일 이내에 인사청문 절차를 마치도록 제한(인사청문회법 제9조)하지만, 미국에는 그런 규정이 없다. 상원 인사청문회가 종료될 때까지 보통 50일 정도가 걸리는데, 제2기 트럼프 행정부는 평균 150일이 넘었다. 그러니 5월 15일 제롬 파월 현 의장의 임기가 종료되기 전에 후임자가 취임할 확률은 매우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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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4일 미국 백악관 웹사이트에 게재된 케빈 워시 연방준비제도 의장 인사청문회 개최 요청서 |
| ⓒ 백악관 |
과거 사례도 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4월 미국에서는 윌리엄 마틴 연준 의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당시 트루먼 행정부는 연준의 금리 인상 시도를 힘으로 눌렀고, 그것 때문에 행정부와 연준 간의 갈등이 심각했다. 그런 상황에서 재무부 차관보가 차기 연준 의장으로 지명되자 여야 의원들은 한결같이 연준의 독립성·자율성 수호 의지를 물고 늘어졌다.
트럼프가 연준의 독립성을 솜털처럼 가볍게 여기는 것은 세상이 다 알고 있다. 지금의 워시도 비슷한 추궁에 시달릴 것이다. 사실 워시의 경우는 훨씬 심각하다. 지금 학계와 금융 시장은 워시의 자질과 식견을 의심하고 있다. 트럼프에게 낙점받기 위해 과거에 내뱉었던 말이 상식 밖의 발언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케빈 워시는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를 통해 "우리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인공지능(AI) 혁명이라는 생산성 향상의 파도를 맞이하였다. 그것이 물가하락을 유도할 것이므로 연준은 이러한 기술혁신을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자기에게 연준 의장 자리를 맡기면 당장 금리를 낮추겠다는, 트럼프를 향한 구애였다.
하지만 정통 경제학자들은 그 말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우선 AI 혁명의 효과에 대해 회의적이다. 남북전쟁 이후 지금까지 미국은 수많은 생산성 혁명을 경험했다. 전기의 발명, 내연기관의 등장, 비행기의 출현, 진공관과 트랜지스터 혁명, 항생제의 발명, 반도체·PC·인터넷 혁명 등등.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경제는 연 2% 성장의 큰 틀을 거의 벗어나지 않았다. 아마 AI 혁명도 그러리라는 것에 많은 경제학자가 동의한다. 워시의 주장에는 경제학자들의 그런 '고정관념'을 깨뜨릴만한 어떤 근거가 없다. 즉 AI 혁명을 이유로 금리를 낮출 수 있다는 주장은 궤변에 불과하다.
물론 "AI 혁명은 지금까지의 어떤 사건들과도 다르다"라는 견해도 있다. 여러 전문가에 따르면, 향후 20년 안에 세계 경제는 연평균 10%의 경제성장 단계에 진입한다. AI에 힘입어 하드웨어 발전이 4% 성장을 이끌고 인간의 실수가 줄어드는 소프트웨어의 발전이 2.5%의 성장을 이끈다는, 그럴듯한 모형까지 제시한다.
하지만 AI 전문가들의 주장이 맞다고 해도 문제다. AI로 인해 생산성이 증가하여 투자 수익도 올라가면 너도나도 투자를 늘릴 것이요, 자금 수요가 커지면 금리는 당연히 상승한다(램지 규칙). 결론적으로 워시의 'AI발 금리 인하론'은 경제 이론을 뒤집는 헛소리라는 것이 경제학계와 금융 시장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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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지명자가 2011년 11월 28일 뉴욕에서 열린 미국 외교협회 토론에서 발언하는 모습. |
| ⓒ AP 연합뉴스 |
일단 연준의 실무자들은 인플레이션 압력이 상당하다는 경제전망 자료를 신임 의장에게 제출할 것이다. 신임 의장이 그 보고서를 채택하고 발표한다면 트럼프가 실망할 것이고, 연준 내부 정서를 무시하고 '비둘기' 색채를 드러내면 신망을 얻기 힘들 것이다. 즉 '생각보다 비둘기파가 아니다'라는 세평과 '영락없는 비둘기'라는 실망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결국 케빈 워시는 취임 전부터 현실 정치에서나 경제 이론 면에서나 사면초가다. 트럼프 대통령 한 사람한테서만 지지받는 형국이다.
비우호적인 상황에서 연준 의장에 취임한 사람은 1978년 3월 취임해 1년 5개월 만에 물러난 윌리엄 밀러가 거의 유일하다. 밀러는 보스턴 연준 이사 7년의 경력을 가졌지만,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출신이라 처음부터 불안했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카터 행정부와 호흡을 맞추는 데 급급했고, 연준 내부에서 금방 신망을 잃었다. 결국 재무장관으로 급하게 자리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카터 대통령이 밀러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한 겉치레였다.
물론 그 반대의 길을 걸었던 경우도 있다. 또 다른 윌리엄 즉, 앞서 소개한 윌리엄 마틴은 트루먼 대통령의 기대를 무시하고 취임 한 달 만에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힌' 트루먼은 마틴을 만났을 때 "배신자"라고 쏘아붙였다. 나중에 회고록에서도 '마틴을 연준 의장에 임명한 것을 크게 후회한다'고 술회했다. 하지만 마틴은 이후 5명의 대통령 아래서 19년간 연준 의장으로 일했다. 연준 독립성을 지켜낸 명성 때문이었다.
지금 미국은 이란과는 전쟁을, 중국과는 관세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그런 마당에 케빈 워시는 금리 인하를 통한 달러화 약세 지지 입장을 버리지 않고 있다. 재정적자에 불을 지른 트럼프에 더하여 금리 인하론자인 워시의 등장은 가뜩이나 불안한 달러화의 가치를 더 낮출 수 있다.
그렇다면, 금을 사야 하나, 비트코인을 사야 하나? 그 힌트는 인사청문회장에서 밝혀질 것이다. 핵심은 케빈 워시 지명자의 태도에 있다. 지금 그는 잠행 중이다. 그가 잠행을 마치고 언론에 등장했을 때,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미국 금리와 원/달러 환율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관전 요소는 트럼프와의 절연을 선언하는 파격적인 발언을 하는지다. 그런 발언이 없다면, 그의 임기 내내 달러화 약세는 시나브로 진행될 것임이 분명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의 전문은 피렌체의식탁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firenzedt.com/news/articleView.html?idxno=32822 차현진은 한국은행에서 39년을 근무한 ‘찐 중앙은행맨’이다. 한은의 정책과 기획 파트를 고루 섭렵했고, 워싱턴사무소장, 부산 본부장 등을 거쳤다. 금융경제 분야를 대중적으로 해설하는데 뛰어나다. <금융 오디세이> <숫자 없는 경제학> <돈 밝히는 세계사>와 같은 경제교양서적을 다수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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