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그루씩 옮겨 심은 지 30년, 원미산 진달래 동산의 비밀

김홍의 2026. 3. 30.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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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로 떠나는 수도권 최대 진달래 군락지, 원미산에서 찾은 '흰 진달래'의 위로

[김홍의 기자]

 햇살을 머금은 채 분홍빛으로 일렁이는 진달래, 투명한 계절 봄의 숨결을 전한다.
ⓒ 김홍의
살면서 비슷한 것을 보면 헷갈리는 순간이 있다. 진달래와 철쭉이 그렇다. 비슷한 색과 모양. 봄이면 당연하듯 피어나는 꽃들이라, 굳이 구분하려 들지 않았다.

반대로, 분명 다르다고 여겼던 것들 사이에서 같은 결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도 있다. 분홍 진달래와 흰 진달래가 그랬다. 3월 30일, 부천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낮은 산 원미산(遠美山)에 오르면서 비로소 깨달았다.

숨이 조금 차오를 즈음이면 능선에 닿고, 고개를 들면 도시가 함께 따라오는 곳. '멀리서도 아름답다'는 뜻의 이름 뒤에는 긴 시간이 겹쳐 있다. 본래 이 산은 '멀미산'이라 불렸다. '멀'은 머리나 마루(꼭대기)를, '미'는 산을 뜻해 '꼭대기 산'이라는 의미였다.

이 이름은 조선 시대에 들어 또 한 번 변한다. 멀리서 바라본 산의 능선이 여인의 눈썹을 닮았다 하여 '원미산(遠眉山)'이라 불리기 시작했고, 이후 세월을 거치며 눈썹 '미(眉)'자는 어느새 아름다울 '미(美)'로 바뀌어 지금의 이름으로 남았다.

지하철역에서 5분, 사람이 쌓은 시간이 만든 풍경
 원미산 능선 위, 분홍빛 진달래 사이로 부천종합운동장이 내려다보인다.
ⓒ 김홍의
원미산이 사랑 받는 이유는 단순하다. 대중교통으로 일상의 틈에서 봄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7호선 부천종합운동장역 2번 출구에서 450m 남짓. 역을 나서자마자, 도시는 어느새 분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강화도를 제외하고 수도권에서 가장 큰 진달래 군락지로 꼽히는 이곳은, 개화 시기라면 한 번쯤 찾아볼 만한 봄의 명소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계절 한가운데로 들어갈 수 있다.
 분홍진달래와 노란 개나리가 어우러진 원미산 산책길. 봄은 색을 달리하며 천천히 이어진다.
ⓒ 김홍의
하지만 이 장관은 자연의 우연이라기보다 사람이 오랜 시간 쌓아 올린 결과에 가깝다. 1998년 IMF 당시 공공근로에 나선 이들이 진달래를 심기 시작했고, 이후 부천시가 꾸준히 식재를 이어가며 지금의 7만여 그루 진달래 군락지가 만들어졌다.

과거 나무가 드물던 산에 시민들이 하나둘 옮겨 심기 시작한 묘목들. 그 나무들이 30년을 지나 약 3만㎡ 부지를 채운 7만여 그루의 진달래 동산으로 자라났다. 사람이 심은 시간이 봄으로 피어나는 순간, 이곳의 봄은 단순한 풍경을 넘어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분홍빛 바다 사이, 순백의 섬을 만나다
 분홍빛 바다 사이 순백의 섬처럼 피어난 흰 진달래 군락이 봄의 위로를 건넨다.
ⓒ 김홍의
봄이 절정에 달하면 7만 그루의 진달래가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리며 산 전체를 하나의 색으로 묶어버린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그 풍경은 결코 단조롭지 않다. 빛을 머금은 꽃과 그늘에 머문 꽃의 결이 서로 다르고, 같은 분홍빛 안에서도 미묘한 온도의 차이가 느껴진다.
진달래는 잎보다 먼저 꽃을 내민다. 앙상한 가지 끝에 먼저 피어나, 산이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시간에도 봄을 꺼내 놓는 '참꽃'이다. 반면 철쭉은 진달래보다 보름가량 늦게 피며 잎이 먼저 나고 꽃이 개화하면 잎을 덮어버린다. 비슷해 보이지만, 피어나는 방식도 피는 시기도 서로 다르다.
 잎보다 먼저 피어난 분홍빛 참꽃, 앙상한 가지 끝에서 투명한 봄의 이야기를 전한다.
ⓒ 김홍의
그래서 우리는 종종 이 꽃들을 헷갈린다. 하지만 어쩌면 그 헷갈림의 순간이야말로, 계절을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조금 더 오래 바라보고,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만드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 분홍빛 사이에 숨어 있던 작은 흰 꽃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곳의 흰 진달래는 홀로 피어 있지 않다. 서로 기대듯 모여 작은 군락을 이루고, 분홍빛 바다 한가운데에 떠 있는 '순백의 섬' 같은 풍경을 만들어낸다. 익숙한 색 속에서 마주하는 낯선 빛은, 그 자체로 시선을 붙잡는다.

우리는 종종 비슷한 것들을 하나로 묶어 기억한다. 진달래와 철쭉을 쉽게 헷갈리듯, 수많은 분홍빛 속에서 서로 다른 얼굴을 구분하지 못한 채 지나치기도 한다. 하지만 잠시 걸음을 늦추는 순간, 그 안에는 분명히 다른 시간과 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다.

어쩌면 삶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익숙함에 기대어 세상을 단순하게 묶어버릴수록 그 안에 숨어 있던 의미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원미산에서 만난 흰 진달래는 그 익숙함 속에서 한 걸음 더 들여다보라는 조용한 신호처럼 느껴졌다.

올해도 봄은 어김없이 오고, 원미산의 진달래는 다시 피어날 것이다. 우리는 또 비슷한 꽃들 사이에서 잠시 헷갈리겠지만, 그 헷갈림 끝에서야 서로 다른 얼굴을 알아보게 된다. 분홍빛 속에 숨어 있던 순백의 섬처럼, 우리의 일상에도 그렇게 쉽게 지나쳤던 다른 의미들이 조용히 존재하고 있을지 모른다.

원미산에서 만난 진달래는 결국, 같아 보이는 것들 속에서 다른 의미를 발견하는 시선에 대한 이야기였다.
 원미산 진달래동산을 가득 채운 분홍빛 물결 사이로 봄을 느끼며 산책하기 좋은 시기다.
ⓒ 김홍의
[제26회 원미산 진달래축제]
- 축제기간 : 2026.4.4(토)~4.5(일) / 관람료 무료
- 위치 :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춘의동 (원미산 진달래동산)
- 대중교통 : 지하철 7호선 부천종합운동장역 2번 출구에서 도보 약 450m.
- 개화현황 : 3월 말 기준 약 60% 개화, 4월 초순 만개 예상
- 참고 : 주차 공간이 협소하므로 대중교통 이용 및 혼잡 예상으로 최대한 이른 시간 방문 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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