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안을 조사한 사람입니다, 그에게 들은 충격적인 말

변상철 2026. 3. 30.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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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사망 소식이 불편한 이유, 조사실에서 마주한 '일상적 악마'의 기록

[변상철 기자]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 인사들에 대한 수사를 맡아 '고문 기술자'로 널리 알려진 이근안 전 경감이 25일 숨졌다. 향년 88세. 이 전 경감은 2023년 초 부인을 잃고 서울에서 홀로 지내왔으며 최근 건강이 악화해 요양병원에 입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2012년 자서전 출판기념회 당시 이 전 경감. 2026.3.26
ⓒ 연합뉴스
'고문 기술자' 이근안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지난 3월 25일, 88세를 일기로 그가 한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언론은 앞다투어 그의 악행을 재조명하고, 고문 피해자들의 아픔을 다시금 호출했지만 정작 내 가슴에 차오른 건 분노보다는 형언할 수 없는 '불편함'이었다. 나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오히려 역사적 단죄의 대상이었던 한 노인의 죽음이 왜 며칠 밤낮 나를 괴롭히는 것일까.

누워도 보고 거울 속의 나를 응시해 보면서도 묻고 또 물었다. 그리고 며칠간의 고통스러운 고민 끝에 알게 되었다. 그 불편함은 고문 기술자라는 이근안이라는 이름 석 자가 상징하는 거대한 악(惡)의 상징성 때문만이 아니었다. 과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시절, 그를 세 차례나 직접 대면하며 조사했던 그 시간이 내 영혼에 남긴 '내상'이 여전히 상처로 남아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이근안을 직접 조사했던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다. 그와 마주 앉아 진실을 향해 살벌한 설전을 벌이고, 그의 왜곡된 확신을 정면으로 받아내야 했던 그 시간은 나에게도 지독한 폭력이었다.

조사실의 공기: 법 위에 군림한 '사상투쟁'의 궤변

나는 여전히 조사실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던 이근안의 눈빛을 기억한다. 그를 만나기 위해 며칠 동안 조사를 준비하고 모의 연습을 했던 그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는 사죄하러 온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이 국가를 위해 얼마나 숭고한 희생을 했는지 증명하러 온 전도사 같았다(실제 당시 그는 '전도사' 신분이었다).

그가 내뱉은 첫 마디부터가 가관이었다. 자신이 고문했던 조작 간첩 피해자들이 '진짜 빨갱이'라는 확신. 그는 단 한 순간도 자신이 틀렸을 가능성을 열어두지 않았다. 그에게 고문은 불편하거나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수사 기법이 아니었다. 그것은 생사를 건 '사상투쟁'이었다.

"고도로 훈련된 간첩들은 웬만한 수사로는 자백하지 않는다. 그러니 특수한 방법을 써서라도 그들의 입을 열어야 했다. 그것은 국가를 지키기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그가 말한 '특수한 방법'은 곧 구타와 물고문, 전기고문을 의미했다.

더욱 경악스러웠던 건 그가 고문을 '예술 행위'에 비유했다는 점이다. 자신의 손끝에서 누군가의 영혼이 파괴되는 과정을 그는 장인이 작품을 빚듯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행위로 묘사했다. 법보다 사상이 위였고, 빨갱이를 다루는 데는 법보다 주먹이 앞서도 된다는 그 위험천만한 신념 앞에 나는 무력감을 느껴야 했다. 그에게 고문은 죄책감의 대상이 아니라 애국심의 증거였다.

프라모델 탱크와 전기고문: 소름 끼치는 악의 일상성

조사 과정에서 가장 소름 끼쳤던 대목은 따로 있었다. 고 김근태 의장을 죽음의 문턱까지 몰아넣었던 그 악명 높은 전기고문의 시작이 어디였는지를 묻는 말에 대한 그의 답변이었다.

"그날, 아이에게 줄 프라모델 탱크 장난감을 사러 문방구에 갔었지."

이근안은 무심하게 말을 이었다. 문방구 가게에서 전기모터와 배터리로 움직이는 탱크를 보며, 그는 문득 생각했다는 것이다. '아, 저 원리를 이용하면 전기고문을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겠구나.' 심지어 그는 물과 소금을 끼얹으면 전기 자극이 더 강력해진다는 과학적(?) 계산까지 곁들였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선물을 고르던 그 평범한 일상의 공간에서, 누군가를 파괴할 궁극의 고문 도구를 고안해냈다는 그 사실.

그 기괴한 평범함은 나를 몸서리치게 만들었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을 나는 조사실 현장에서 생생하게 목격했다. 괴물은 멀리 있지 않았다. 낮에는 자상한 아버지로, 밤에는 비명이 가득한 대공분실의 기술자로 변신하는 그 일상적 괴물과 마주 앉아 있었던 시간들이 지금도 내 머리를 불편하게 파고 든다.

멈춰버린 국가의 시계: 훈장 뒤에 숨은 비겁함

이근안은 떠났지만, 그가 남긴 부끄러운 국가 폭력의 역사는 여전히 청산되지 않은 채 우리 곁을 떠돈다. 그는 생전 수많은 조작 사건에 대해 국가 배상 결정이 내려지고 구상권 청구가 이어졌는데도, 단 한 푼의 배상금도 내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돈이 없다"는 핑계로 국가의 명령을 비웃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이근안의 조롱 앞에 국가는 어떠했는가. 이근안이 휘두른 주먹에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달아준 훈장만 16개다. 그중 취소된 것은 단 1개뿐, 나머지 15개는 그가 눈을 감는 순간까지 그의 이력을 장식했다. 국가가 공권력의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을 묵인하고, 오히려 가해자에게 명예를 부여해온 셈이다. 그가 애국이라고 믿는 신념은 국가의 이러한 비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내가 지난 십수 년간 이 싸움을 홀로 이어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가가 제 역할을 하지 않으니, 누군가는 그 기록을 붙잡고 있어야 했다. 피해자들은 여전히 그날의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데, 가해자는 훈장을 가슴에 품고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이 부조리한 현실을 나는 용납할 수 없었다.

이제는 국가가 싸워야 할 시간

이근안의 죽음이 전해진 뒤, 경찰은 부랴부랴 7만 건의 서훈을 전수조사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나는 이 발표가 또다시 일회성 가십거리로 소모되다 사그라질까 봐 무섭다. "전수조사"라는 화려한 구호가 아니라, 실질적인 제도가 필요하다.

재심 무죄 판결이 난 사건의 가해자들에 대해서는 한 달 내로 서훈을 박탈하는 속도감 있는 행정이 필요하다. 가해자들이 은닉한 재산을 끝까지 추적해 구상권을 집행하는 단호함이 필요하다. 더 이상 조사관 개인의 사명감이나 인권 활동가들의 헌신에 이 무거운 짐을 지워두어선 안 된다.

국가는 이제라도 제도를 만들어 싸워야 한다. 이근안 같은 괴물이 다시는 '애국'이라는 이름 뒤로 숨지 못하게, 그들이 누린 부당한 명예를 국가의 손으로 직접 거두어들여야 한다. 그것이 이근안에게 상처 입은 피해자들과 그를 마주하며 영혼의 내상을 입었던 수많은 '목격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내 안의 이근안을 떠나보내며

이근안이 죽었다는 소식은 나에게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다. 그와 마주 앉았던 조사실의 기억, 장난감 탱크를 보며 전기고문을 떠올렸다던 그 소름 끼치는 음성 그리고 끝내 반성하지 않았던 그 오만한 눈빛까지. 나는 이제 이 글을 통해 내 안의 이근안을 털어내려 한다.

그가 남긴 어둠을 기록하는 일은 고통스럽지만,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반복되기 마련이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써 내려갈 것이다. 국가 폭력의 가해자들이 합당한 대가를 치르고, 피해자들의 명예가 온전히 회복되는 그날까지. 혼자만의 싸움이 아닌 국가의 시스템이 작동하는 그날까지 나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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