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차 중동 전쟁이라는 착각, 어떤 오해를 키웠나
[정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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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동판 환단고기 7편 5차 중동 전쟁이라는 착각, 어떤 오해를 키웠나 |
| ⓒ 정환빈 |
우리가 1~4차 중동 전쟁으로 부르는 사건의 국제적 명칭은 '아랍-이스라엘 전쟁(Arab-Israeli War)'이다. 이를 중동 전쟁으로 칭하기에는 교전 목표나 당사국, 지리적 범위가 한정적이라 부적절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오래전 일본에서 잘못 만든 명칭을 무비판적으로 따라 써 왔고, 그로 인해 국제사회의 시선과 달라졌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이란은 아랍 국가가 아니므로, 5차 전쟁으로 연결할 수 없다.
애당초 이번 이란에 대한 공격은 아직 중동 전쟁이란 명칭으로 확립되지 않았다. 서구 주요 외신이 이를 전쟁으로 칭할 때는 교전국인 미국, 이스라엘, 이란으로 수식한다. 중동이란 지역명을 붙일 때는 위기(crisis)나 긴장(tensions)으로 표현한다. 중동 전쟁은 향후 아랍 국가들이 참전하는 경우에 한해 사용을 검토할 것이며, 이 경우 제1차 중동 전쟁이 된다.
중동판 환단고기를 처음부터 읽은 독자라면 똑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점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밸포어 선언의 민족의 고향은 유대 국가로 바뀌고, 후세인-맥마흔 서신협상은 선언으로 불리고, 아랍-이스라엘 전쟁은 중동 전쟁이 되었다. 앞선 사례들과 마찬가지로, 중동 전쟁이란 단순화된 표현은 인식의 왜곡을 유발해 왔다. 무엇이 문제인지 아랍-이스라엘 전쟁을 살펴보며 직접 확인하자.
아랍 국가들은 왜 이스라엘을 적대하나?
다음은 중동 어느 국가의 총리가 쓴 일기다. 어느 나라일지 맞혀보라.
"(이 작전으로) 우리가 고립되고 안보가 위험하다고 절박하게 외치는 인상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우리가 대량 학살을 저지르는 피에 굶주린 침략자다."
Livia Rokach, "Israeli State Terrorism: An Analysis of the Sharett Diaries," Journal of Palestine Studies 9, no. 3 (1980): 18.
'중동', '안보', '침략자'라는 세 키워드는 정답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바로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은 적대적인 아랍 국가들로 둘러싸여 건국 이래 줄곧 안보 불안을 겪고 있다고 호소해 왔다. 우리에게 이는 너무나도 익숙해서 믿어 의심치 않는 진실이다. 그런데 아랍 국가들은 왜 이스라엘을 적대시할까?
지난 중동판 환단고기 6편에서는 1948년 전쟁, 즉 제1차 아랍-이스라엘 전쟁의 발발 배경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유대인만의 민족 국가를 만들고 싶어 했던 시온주의자들은 아랍인을 몰아내고자 인종청소를 저질렀고, 이는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6편 참조).
시온주의자들은 아랍인들이 분노할 것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전쟁은 그런 판단의 오류가 빚어낸 참사였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았다. 당시 일반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불안감이 퍼져 있었다. 그러나 초대 총리 벤구리온을 비롯한 지도부는 전쟁의 승리를 확신했고, 나아가 전쟁이 일어나기를 바랐다. 영토를 확장할 기회로 포착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친이스라엘 사관은 아랍 국가들이라는 골리앗을 상대로 신생 국가 다윗이 용감히 싸워 승리를 쟁취했다고 묘사해 왔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정부 문서가 공개되자 이스라엘의 여러 역사학자들은 이스라엘의 군사력이 아랍 연합군보다 우세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애당초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만큼이나 신생 독립국이었다. 당연히 원정군을 조직할 여력도 마땅치 않았고, 자국의 영토를 침범당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사활을 걸 만큼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았다. 게다가 연합군의 총사령관인 요르단은 팔레스타인 땅 일부를 자국에 병합하는 조건으로 시온주의자들과 불가침 협약을 비밀리에 체결했다(요르단은 1950년에 서안지구 병합을 선언, 1988년에 철회했다).
이스라엘은 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유엔이 인정한 국경선, 즉 팔레스타인 땅의 56%를 넘어 78%까지 점령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안보가 취약한 시기는 이때였다. 전후 국내 문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어떤 노선을 취했을까? 군사적으로 약세인 국가는 갈등을 외교적으로 풀기 마련이다. 이스라엘은 정반대를 택했다.
당시 미국과 서방 진영은 중동의 정세가 안정되기를 바랐다. 그들은 중동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할 목적에서 유대 국가 건설에 찬성했던 것인데, 예상치 못했던 인종청소와 전면전으로 범아랍·범이슬람권의 거대한 반발을 초래해 버렸다. 이런 배경에서 미국과 영국은 서둘러 이집트와의 관계 개선을 추진했다. 이스라엘은 이를 '위협'으로 인지했다.
1954년 7월, 이집트에서 미국 교육 시설, 영화관 등 외국인이 주로 이용하는 시설에서 폭탄 테러가 다수 발생했다. 다행히 사상자는 없었다. 처음에는 반서구 무슬림 단체의 소행으로 의심됐으나, 이집트 정부는 이스라엘이 고용한 유대인 요원들의 범행임을 밝혔다(이스라엘은 이를 오랫동안 부인해 오다가, 2005년에 해당 공작을 수행한 테러리스트들을 "영웅"으로 칭하며 대통령이 감사장을 수여했다).
미국은 이집트를 달래며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중재했다.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은 "오늘날 어떤 아랍인도 이스라엘을 파괴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라고 연설하며 평화 회담에 응할 뜻을 밝혔다.
그런데 1955년 2월 28일, 이스라엘은 이집트가 임시 통치 중이던 가자지구를 기습 침공해 37명(7세 소년 포함)이 사망했다. 언론에는 이집트군이 침공해 왔고, 이를 추격해 사살한 것으로 발표했다. 앞서 인용한 일기는 모세 샤레트 총리가 이 작전의 진실을 기록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서구에 대한 이집트의 반감과 불신은 더 커졌다. 이듬해 1956년, 이집트는 수에즈 운하를 운영하던 서구 자본 회사를 국유화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중동에 대한 자신들의 통제력을 위협하는 조치로 인식하고 이스라엘과 함께 전쟁을 일으켰다. 이것이 바로 제2차 아랍-이스라엘 전쟁이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와 시나이반도까지 점령했으나, 중동에서 유럽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견제한 미국과 소련의 개입으로 군사를 철수해야만 했다.
이후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달렸다. 1967년, 이집트가 군대를 전선에 배치하는 등 위협 수위를 강화하자 이스라엘은 3차 전쟁을 일으켰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서안과 가자지구, 이집트 시나이반도, 시리아 골란고원을 점령했다. 당시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임박한 공격을 막은 선제적 방어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5년 후 메나헴 베긴 총리는 이집트의 전쟁 의사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시인했다. 다만, 이스라엘의 안보와 미래를 위한 방어적 성격이었다고 변론했다.
"1967년 6월, 우리는 다시 한번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시나이반도에 이집트군이 집결한 것은 나세르 (대통령)이 실제로 우리를 공격하려 했다는 증거는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솔직해야 합니다. 그를 공격하기로 한 것은 우리였습니다. 이것은 가장 고귀한 의미에서의 자기방어적 전쟁이었습니다."
Israeli Ministry of Foreign Affairs, Address by Prime Minister Begin at the National Defense College, 8 August 1982.
이 전쟁 이후 이집트는 영토 수복을 위해 이스라엘에 화친을 요청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거부하자, 1973년에 시리아와 함께 기습 공격했다. 그게 바로 4차 아랍-이스라엘 전쟁이다. 방심하던 이스라엘은 크게 당했고, 미국의 도움을 받아 겨우 막아낼 수 있었다. 이후 미국의 중재로 1979년에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시나이반도를 돌려주었다.
이스라엘의 안보 위협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4차 아랍-이스라엘 전쟁이 끝난 지 벌써 반세기가 지났다. 이제는 누구도 5차 전쟁을 예상하지 않는다. 아랍 연합 전선이 사실상 붕괴한 지 오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1982년, 2006년 레바논 침공은 5~6차 아랍-이스라엘 전쟁이 아닌, 레바논 전쟁으로 명명되었다.
2026년 현재, 이스라엘을 전면적으로 적대하는 중동 국가는 이란과 팔레스타인, 그리고 예멘의 준국가적 단체인 후티(Ansar Allah)가 유일하다. 레바논 정부는 거듭된 이스라엘의 침공에도 불구하고 교전을 피한다. 오직 헤즈볼라만이 싸우고 있을 뿐이다. 최근 내전을 종식한 시리아의 새 정부도 미국에 손을 내밀고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적 대응을 멈춘 상태다. 비록 국경 방비가 약화한 틈을 타 이스라엘이 골란고원 인근 영토를 추가 점령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외에도 이라크 등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국가들이 몇 있으나, 이는 팔레스타인과의 연대를 위한 외교정책에 그치고 군사적 위협은 사실상 부재한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여전히 안보 위협을 호소한다. 이번 이란에 대한 공격 역시 핵무기 억제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런데 이란이 핵무기를 가진다고 위협이 될까? 이스라엘은 1950년대부터 프랑스의 도움을 받아 핵무기 개발을 시작해 지금은 100~400개의 핵탄두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란이 공멸을 각오하지 않는 한 이스라엘을 상대로 핵을 쓸 일은 없다. 단지 이스라엘 역시 핵무기를 봉인 당해 더 이상 위협용으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을 뿐이다.
이처럼 중동의 정세는 우리의 통념과는 매우 다르다. 이스라엘이라는 광포한 골리앗을 상대로 여러 다윗이 자국 영토 지키기에 급급한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의 안보 '위기'에 폭넓은 공감대를 이룬다. 이러한 왜곡된 관념이 형성되는 과정에는 중동 전쟁이라는 부정확한 명칭이 일조했다.
4차례의 아랍-이스라엘 전쟁은 이스라엘의 인접지에서만 벌어졌다. 주요 참전국 수도 많지 않다. 1차 전쟁 때 6개국, 나머지 전쟁은 4~5개국에 그친다. 그런데도 중동이라는 광범위한 지역명이 붙은 탓에 이스라엘이 중동 이슬람 연합전선으로부터 생존의 위협을 받는다는 인상을 만들었다.
용어는 대중의 인식을 형성하는 틀이다. 잘못된 용어는 잘못된 관념으로 이어졌고, 우리의 시각은 국제사회와 달라졌다. 오늘날 이스라엘의 안보 호소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은 싸늘하다. 서구권에서조차 비판적 시각이 존재한다. 그러한 위협을 초래해 온 게 다름 아닌 이스라엘 자신이기 때문이다. 1955년 가자지구 학살 작전을 실행한 후 모세 다얀 국방부 장관은 이 점을 분명히 했다.
"(이집트와의) 안보 협정은 단지 (자유로운 군사 작전에) 방해물만 될 뿐이다. 아랍 군대는 우리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못한다. … 보복 공격은 우리의 생명줄이다. 보복 공격은 우리 국민과 군 내부에 높은 긴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 ... 젊은이들에게 우리가 위험에 처해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Rokach, "Israeli State Terrorism,"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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