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계족산 황톳길 걸었더니 '맨발의 청춘'이 된 기분
[김병모 기자]
영어에 "Nature calls."라는 표현이 있다. 자연이 부른다는 말이다. 물론 화장실이 급하다는 유머러스한 표현이기도 하다. 어느 쪽이든 자연이 부르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른 아침 몸을 비우고 가벼운 마음으로 베란다 창문을 연다. 창밖엔 산수유가 활짝 피어 있다.
불현듯 지난해, 대전 대덕구 계족산 둘레길로 조성된 장동산림욕장 황톳길을 걷다가 우연히 알게 된 노란 생강나무꽃이 궁금해진다. 멀리서 보면 산수유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확연히 다르다. 자태를 뽐내며 필자를 반겼던 생강나무꽃. 28일, 그 꽃이 필자를 부르고 있는 것 같다. 옛말에 "임도 보고 뽕도 딴다"라는 말이 있다. 계족산 황톳길도 걷고 생강나무꽃도 볼 겸, 계족산 중턱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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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족산 황톳길. |
| ⓒ 김병모 |
계족산 황톳길이 어떻게 조성되었을까. 2006년 4월 어느 날, 한 회사 대표가 가까운 지인들과 계족산을 걷다 우연히 맨발로 걸은 후, 그날 밤을 숙면(熟眠)했다고 한다. 그 대표는 다른 사람들도 건강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계족산 둘레길 따라 14.5 Km 황톳길을 조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작은 배려를 시작으로 계족산 황톳길이 탄생한 것이다.
황톳길 옆 계곡에서 흐르는 물 주변을 정리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황톳길을 관리하는 직원 같다. 맨발로 황톳길을 걷다가 가까운 곳에서 손발을 씻을 수 있도록 배려한 듯하다. 사람들이 계족산 황톳길을 찾는 이유를 알겠다. 요즘 이 황톳길이 전국적으로 알려져, 해마다 백만 명 이상 사람들이 몰려든다고 한다. 계족산 황톳길은 2019년 명품 황톳길로 한국기록원의 인증서까지 보유하게 되었다고 한다.
황톳길 옆으로 "깔고, 뒤집고 뿌리고" 푯말도 보인다. 황톳길이 딱딱해지면 황토를 뒤집고, 촉촉이 물을 뿌린다는 뜻이다. 대전 시민의 계족산 황톳길 사랑과 관심에 보답하고자, 20년째 200억 원 이상 비용을 들여 꾸준히 관리한 결과물 같다.
필자가 예상했던 데로 황톳길 중간쯤에 이르자, 노란 생강나무꽃들이 보인다. 그중, 한 생강나무꽃이 유독 필자의 시선을 끈다. 작년에도 그 꽃에 홀렸던 기억이 있다. 갑자기 중년의 한 신사분도 산수유꽃이 이쁘다며, 카메라까지 들이댄다.
그때 옆을 지나가던 어느 아주머니의 한 말이 흥미롭다. "더 자세히 보면, 산수유가 아니라 생강나무꽃으로 보일 걸요." 필자 역시 그 꽃이 생강나무꽃이란 것을 작년에야 알았다. 생강나무꽃이 산수유꽃을 닮아도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황톳길을 따라 한쪽엔 개나리꽃도 뒤질세라 꽃망울을 띄우고 있다. 어느 순간, 나비가 필자 주변을 맴돈다. 희롱하듯 너스레를 떤다. 순간, 단원 김홍도(1745~1815)의 <황묘농접도> 그림이 문득 떠오른다. 아름답게 핀 패랭이꽃과 제비꽃 사이로 노란 고양이가 고개를 뒤로 젖히고 제비나비를 희롱하듯, 그 나비는 내 주변을 떠날 줄 모른다.
화창한 햇살 받으며 맨발로 걸을 때마다, 황톳길에 박힌 미세한 돌들로 발바닥 마사지를 받는 기분이다. 무념무상으로 황톳길 따라 걷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숨이 찬 듯 헐떡거리며 줄 다름질 친다. 계족산 황톳길 마라톤 대회가 있는 모양이다. 각자 이름표를 가슴에 붙이고 달리는 것을 보니, 이름을 걸 만한 경기인가 보다. 일행도 맨발로 5 Km쯤 황톳길을 걸었을까. 임도 삼거리에서 준비한 과일과 커피로 허기를 때우고 아쉽지만, 발길을 돌렸다.
황톳길을 돌아오는 길은 예상보다 빨랐다. 주변 산림도 황톳길과 잘 어우러져 안성맞춤이다. 오를 때 보지 못했던 환경이 깨끗하고 곳곳에 발을 씻는 수도 시설까지 되어 있다. 맨발로 황톳길을 걸었던 터라 발을 씻어야겠다 싶어 수돗가에 이르자, 사람들이 발을 씻고 있다. 필자 역시 발을 씻고 나니, 그동안 쌓인 마음의 때까지 씻겨나간 기분이다.
자연의 부름을 받고 떠난 대전 계족산 황톳길 걷기, 마음만은 맨발의 청춘이다. 무엇보다 S 라인 황톳길을 걷다 보면, 우리 몸도 덩달아 S라인이 된 기분이다. 황톳길 걷기를 마치고, 주차장 옆 징검다리 건너 연못을 무심결에 바라본다.
웬일인가. 알에서 갓 깨어난 올챙이들이 떼를 지어 연못을 휘젓고 있다. 진풍경이다. 언젠가 저 올챙이도 개구리가 되어 연못 밖 세상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때, 그 개구리는 올챙이 시절을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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