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하고, 웃통을 벗던 팬들이 서럽게 울던 날
그들은 누구인가. 어떻게 야구팬이 되었고, 무엇을 견디며 남았으며, 무엇 때문에 떠났는가. 이 연재는 한국야구의 역사가 아니라, 한국 야구팬들의 역사를 탐구하려는 시도다. 승패의 기록이 아니라 함께 웃고 울었던 시간, 구단과 선수의 이름이 아니라 그들을 응원하던 사람들의 감정을 따라간다. 이 연재는 분석이나 비판을 전면에 내세우는 대신 "우리는"이라는 1인칭 복수의 시점으로, 야구팬들에게 보내는 연대의 편지다. <기자말>
[김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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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야구 삼미 슈퍼스타즈-MBC청룡 경기, 삼미 슈퍼스타즈 선수들의 모습. 1983.4.6. |
| ⓒ 연합뉴스 |
프로야구가 시작되고 4번째 시즌이었다. 사실 삼미가 더 약했던 것은 첫 시즌을 치르던 1982년이었다. 제대로 선수단을 구성할 겨를도 없이 시작했던 그때의 삼미는 승률 1할대의 팀이었다. 평균적으로 5번 싸우면 1번도 채 못 이기는 팀이었다는 이야기다. 연패가 일상이었던 것은 당연하다. 개막전에서 뜻밖의 승리를 거둔 뒤 8연패를 당했고, 그 뒤로도 40경기를 치른 전기리그에만 6연패, 5연패, 9연패를 경험했다. 그리고 후기리그 역시 11연패로 시작해 다시 7연패와 8연패를 당하고서야 시즌이 마무리됐다.
그래서 막연하게나마 프로야구에서 대략 10번쯤 지면 한 번은 이기기 마련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투수가 없어서 야수가 던지고, 타자 중에 3할을 넘기는 선수가 단 한 사람도 없었던 그 팀이 당했던 최다연패가 11이었고, 그 이상의 숫자가 다시 찍히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듬해인 1983년, 일본 프로야구의 슈퍼스타 장명부와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컵을 들고 개선한 국가대표 임호균, 김진우, 정구선, 이선웅이 가세한 삼미는 과연 달랐다. 초반부터 파죽지세로 전 시즌에 당했던 모든 치욕들을 설욕하더니, 비록 한 끗 차이로 좌절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정상권을 넘보는 강팀으로 올라섰던 것이다. 그제야 생각하면 82년의 슈퍼스타즈는 하나의 해프닝, 그러니까 정색하고 그 이후의 누군가와 비교하려고 하면 곤란한, 극히 예외적인 무언가였다.
물론 그로부터 다시 한 해를 건너오면서 우여곡절은 있었고, 모든 일이 뜻대로 풀리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1985년의 삼미 슈퍼스타즈가 1982년의 삼미 슈퍼스타즈보다 약하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전히 30승을 할 수 있는 투수 장명부가 있었고, '헐크' 이만수보다도 훨씬 거대한 포수 김진우가 있었고, 또 자타공인 대한민국 최고의 2루수 정구선도 있었기 때문이다. 고로 그 삼미가 혹시 꼴찌를 할 수는 있고 연패를 당할 수는 있겠지만, 11번도 넘게 연속으로 진다는 것은 미처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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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 있는 프로야구 홍보물 |
| ⓒ 프로야구 |
예나 지금이나, 연패가 길어지면 선수들은 온갖 궁리를 다 해본다. 머리를 밀기도 하고, 바지를 양말 속에 집어넣기도 한다. 또 훈련 틈틈이 야구장 잔디 사이에서 자란 토끼풀 중에 이파리 네 개인 것이 없나 두리번거리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면 팬들은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뎠을까. 응원을 하고, 욕지기를 하고, 분을 참지 못해 웃통 벗고 야구장 그물 위로 오르는 것도 대략 10연패쯤 까지였다. 그 뒤로는 소주를 마시고, 기도를 하고, 또 어떤 이는 '내가 좀 착하게 살아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좀 다르게 말하는 이는 '내가 죄가 많아 이런 꼴을 본다'고 하기도 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일부러 야구를 보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쳤다. '내가 볼 때마다 진다'고 일부러 야구 경기가 있는 시간에 술을 마시고, 낮잠을 자고, 혹은 공을 차러 나갔다. 무심코 TV를 켰다가 야구 중계방송이 있으면 소스라치게 놀라 꺼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로 잊는 사람은 없었다. 건성으로 저녁 뉴스 시간을 흘려보낸 뒤 스포츠뉴스에 신경을 곤두세웠고, 또 한 번 괴로워하며 하루를, 또 하루를 보내곤 했다. 그렇게 야구를 하는 사람과 보는 사람은 연결되어 있었고, 야구와 사람이 연결되어 있었다.
개막전에서 그해 유일한 1승을 거둔 뒤로 꼭 한 달이 지난 4월 30일, 인천 도원야구장에서 결국 또 한 번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던 승리가 찾아왔다. 그리고 연패를 기록하는 숫자가 18에서 멈췄다.
그날 만난 MBC는 또 MBC대로 '이겨야 본전이고, 혹시 지게 되면 큰 망신이 될', 그래서 만약 진다면 '1패 이상의 타격을 입게 될' 삼미와의 경기를 위해 어김없이 에이스 하기룡을 투입했다.
그에 비해 삼미의 2년 차 투수 최계훈의 이름값은 초라했고, 타자들의 눈빛에서도 자신감이란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최계훈은 그날 안타 6개만을 내주며 9회까지 혼자 버티는 투혼을 발휘했고, 정구선이 2회에 선제 1점 홈런을, 양승관이 8회 말에 쐐기를 박는 3타점 3루타를 날려 뒤를 받쳤다.
그날 경기가 끝나고, 마치 여느 팀의 우승 장면처럼 삼미의 모든 선수들이 마운드 위의 최계훈에게 달려들어 부둥켜안고 환호하는 동안 관중석의 팬들은 주섬주섬 눈물을 닦아내느라 분주했다. 아무나 부둥켜안고 나누기도 좀 그렇고, 대놓고 보이기도 민망한 눈물이었다. 그 눈물에 감격이라든가, 자축이라든가 하는 이름을 붙일 수는 없다.
그보다는 다시는 이기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영원히 지기만 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드디어 멈췄다는 생각에 흘러나온 안도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혹은 생각의 갈피를 잡지 못해 잠 못 이루던 날들이 떠올린 새삼 서러운 눈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가끔 시간 맞으면 야구 중계방송을 봐도 되고, 또 연패를 당하더라도 한 17경기까지는 기다려볼 여유를 가져도 되고, 이제는 저게 다 내 죗값인가 싶어서 새삼 삶을 돌아보는 일도 멈출 수 있겠다는 생각에 녹아내린 마음속 응어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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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년 6월 13일 대전시 중구 한화생명 이글스파크 인근 대전광역시 체육회관 앞 네거리에 당시 18연패중이었던 한화 이글스의 승리를 기원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
| ⓒ 연합뉴스 |
아마도 그 이유가 어떤 즐거움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 내가 응원하는 팀이 승리할 때 얻을 수 있는 쾌감이 가장 큰 이유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그때 처음 해볼 수 있었다. 비록 그 팀이 삼미 슈퍼스타즈가 아니더라도 승리가 패배보다 더 많을 거라는 기대는 위험하니까. 야구와 연결된 뒤 대부분의 시간은 패배와 실망으로 채워지며, 그 안에서도 뭔가 찾지 못한다면 도저히 견딜 수 없으니까.
그래서 어쩌면 우리가 붙들고 있는 것은 승리가 아니라 그저 함께 웃고 함께 애태웠던 시간들 자체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할 수 있었다. 밤잠 설치게 하던 고통스러운 날들도, 언젠가 우승이라도 하는 날에는 그 기쁨을 더해줄 멋진 전주곡이 되어줄 테니까. 혹은, 버티다 보면 언젠가는 함께 웃는 날도 오겠지만, 함께 눈물 흘린 기억 없이 맞이하는 그 순간은 그다지 짜릿할 리 없을 테니까.
18번의 패배 끝에 1승을 거둔 그날, 그러니까 1985년 4월 30일 밤. 삼미그룹은 야구단을 매각하기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연패를 끊은 기쁨과 그래도 여전히 2승 18패라는 성적에 대한 참담함 사이를 오가며 이런저런 생각으로 밤을 보낸 팬들이 새로운 기분으로 맞이한 5월 1일, 저녁 뉴스를 통해 삼미 슈퍼스타즈의 시대는 이제 영원히 끝나버렸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2020년 5월 23일부터 6월 12일 사이에 한화 이글스가 18연패를 했다. 그리고 2002년 6월 2일부터 6월 26일 사이에는 롯데 자이언츠가, 2010년 6월 18일부터 7월 8일 사이에는 기아 타이거즈가 각각 16연패를 했다. 그 시간 동안 각 팀의 팬들이 역시 안타까워하고 탄식하고 분노하다 지쳐 기도했고, 삶을 돌아보고, 착하게 살고자 했으며, 기나긴 연패를 마감하는 1승을 지켜보며 조용히 눈물 흘렸다. 선수들이 머리를 깎고, 바짓단을 양말 속으로 넣고, 네잎클로버를 찾아 헤매며 '무슨 일이 있어도 삼미 슈퍼스타즈를 넘어설 수 없다'는 비상한 결의로 전쟁터 같은 그라운드로 몸을 던졌던 것도 물론이다.
롯데와 한화는 지금까지 승리보다 패배를 더 많이 했던 대표적인 팀들이며, 타이거즈도 해태 시절을 지낸 뒤로는 패배가 조금 더 많다. 하지만 세 팀은 가장 많은, 그리고 가장 열정적인 팬을 가진 것으로도 알려져있다. 그런데 그 많은 팬들 중에서도 18연패와 16연패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을 가지지 못한 팬들은, 그것을 가진 팬들 앞에서 일단 한 수 접고 들어가는 것이 '국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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