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맥]신현송 후보자의 문제의식과 글로벌 디지털금융 생태계의 현실

임춘한 2026. 3. 30.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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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2일 차기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로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통화경제국장을 지명했다. 대내외 불확실성이 높은 시기인 만큼 국제금융과 거시경제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 한국은행을 이끌게 됐다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신 후보자는 BIS 재직 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와 토큰화 논의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온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반면 스테이블코인에 대해서는 꾸준히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 왔다.

신 후보자는 BIS에서 작성한 보고서에서 메시지 전달과 자산 이전이 분절돼 있는 현재 금융 시스템의 한계를 명확히 지적한다. 예를 들어 신용카드로 물건을 살 때 결제는 즉시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결제 대금은 카드사, 은행 등 여러 단계를 거쳐 며칠 후에야 상점 주인에게 전달된다. 최근 이 대통령이 "주식을 오늘 팔았는데 왜 돈은 이틀 뒤에 들어오느냐"고 언급한 것도 결국 현행 금융 시스템의 내재적 한계에서 비롯된 문제다.

반면 스테이블코인은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전 세계 어디든 인터넷 위에서 이메일을 보내듯 실시간 낮은 비용으로 돈을 전송한다. 그렇지만 신 후보자는 스테이블코인이 발행 주체에 따라 완전한 1대1의 교환가치를 유지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화폐의 단일성을 흔들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대안으로 중앙은행 화폐와 은행예금, 국채 같은 자산을 하나의 프로그래머블 플랫폼 위에 올리는 '통합 원장' 구상을 제시한다.

하지만 이러한 해법의 현실성은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모두가 함께 쓰는 거대한 통합 원장은 이론적으로는 매끈해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단일실패지점 문제가 심각해진다. 금융 인프라에서 중요한 것은 효율만이 아니다. 해킹, 전쟁, 테러, 소프트웨어 결함, 운영 실수 같은 충격이 발생했을 때 실패가 시스템 전체로 번지지 않도록 막는 일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하나의 장부에 모든 것을 올리는 방식은 평시에는 편리할 수 있어도, 예기치 못한 지정학적 충돌이나 대규모 시스템 장애가 전 세계 금융망을 마비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누가 통제권을 가질 것인가도 큰 문제다. 중앙은행 화폐와 은행예금, 금융자산이 함께 올라가는 통합 인프라를 누가 설계하고, 누가 운영하며, 누가 최종 통제할 것인가. 이것은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권한과 책임, 나아가 통화 주권의 문제다. 실제로 BIS의 프로젝트 아고라는 한국은행을 포함한 7개 중앙은행과 43개 금융기관이 참여하는 대형 실험이지만 핵심 과제 중 하나로 여러 관할권의 법적·규제적 쟁점, 결제 완결성, 컴플라이언스 문제를 함께 점검하고 있다. 기술보다 먼저 정리돼야 할 것이 거버넌스라는 뜻이다. 더 나아가 어떠한 단일주체가 각국의 중앙은행 혹은 정부를 설득해 핵심 금융 인프라의 통제권 배분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공공과 민간의 혁신 속도도 극명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 프로젝트 아고라는 2024년 4월 시작돼 2026년 상반기 보고서 발간을 예고하고 있다. 반면 민간은 이미 훨씬 앞서 있다. 3월27일 기준 전 세계 스테이블코인 유통 규모는 약 3153억달러다. 이더리움 네트워크에만 약 1640억달러(52.6%)가 올라와 있고, 트론은 약 860억달러(27.3%), 솔라나는 약 152억달러(4.8%) 수준이다. 그리고 서클의 CCTP(Cross Chain Transfer Protocol)와 같은 브리지 기술을 통해 각각의 네트워크는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공공이 차세대 인프라를 실험하는 동안 민간은 먼저 서비스를 출시하고, 서로 다른 네트워크를 연결하고, 문제가 생기면 사후적으로 규칙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이미 거대한 글로벌 금융 생태계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미국의 움직임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2025년 1월 행정명령을 통해 연방 차원의 CBDC 추진을 중단하는 방향을 제시했고, 같은 해 7월 GENIUS Act를 통해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첫 연방 규제 체계를 마련했다. 이 법은 달러나 단기 국채 같은 유동성 높은 자산으로 100% 준비금을 갖추도록 하고, 준비자산 구성을 매달 공개하도록 요구한다. 백악관은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미 국채 수요를 늘리고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강화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모든 상황을 종합하면 현실적인 해법은 분명하다. 중앙은행이 보안, 확장성, 프라이버시, 상호운용성, 거버넌스 문제를 모두 해결한 거대한 통합 인프라를 직접 구축하는 것보다, 발행 주체에 대한 정교한 규제를 통해 스테이블코인이 언제든 액면가대로 교환될 수 있다는 신뢰를 만드는 편이 훨씬 실현 가능성이 높다. 준비자산 규제, 상환청구권, 공시, 자금세탁방지, 이용자 보호 장치를 촘촘히 설계해 민간의 혁신을 안전하게 제도 안으로 포섭하는 길이다.

신 후보자의 문제의식은 타당하지만 글로벌 디지털금융 생태계는 더 이상 공공이 완성된 설계를 내놓을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중앙은행의 역할은 변화를 막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변화를 예측 가능한 질서로 끌어안는 것이어야 한다.

서병윤 디에스알브이랩스(DSRV)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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