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부자들의 격노...자전거 타고 등장한 신임 시장의 정체 [목수정의 바스티유 광장]
[목수정 기자]
지난 22일 열린 프랑스 지방선거는 좌파의 압승으로 끝났다. 파리시를 비롯해, 제2, 제3 도시인 마르세유, 리옹은 물론 인구 10만 이상 도시의 62%를 사회당·녹색당·공산당이 함께한 좌파연합이 차지했다.
공화당은 툴롱, 칸을 비롯 전체 19%의 도시에서 승리하며 지난 2020년 선거 때(25%)보다 한층 위축된 입지를 확인해야 했다. 특히 공화당의 아성이던 니스를 극우에 빼앗긴 지점은 가장 결정적인 출혈이다. 집권당 르네상스도 12%를 얻는데 그쳤다. 집권당이 거둔 성적 치곤 처참하나, 집권 이후, 마크롱의 정당은 어떤 선거에서도 이렇다할 성과를 거둔 적이 없다(대선에서 그의 재선만이 예외).
극우정당 국민연합(RN)은 4.7%를 얻었으나, 나름 선방한 것으로 평가된다. 전국적 지지율은 높지만, 프랑스의 결선 투표제 시스템은(극우 낙선을 위해 나머지가 연대하는) 극우가 결선에서 필패하도록 작동해 왔기에, 지금까지 극우 정당이 집권했던 10만 이상 대도시는 페르피냥(인구 12만) 한 곳뿐이었다. 이번엔 프랑스 제5 도시 니스를 추가함으로써 이들이 우세한 남프랑스 지역에서 도약의 발판을 얻었다.
극좌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는 이민자 도시 생드니와 노동자 도시 루베에서 시장을 배출하며 2.7%를 얻었다. 사회당에서 공산당까지, 범좌파 진영이 한 지붕 아래 뭉쳤으나, 최근 연이어 터져 나온 '굴복하지않는프랑스' 대표 장뤼크 멜랑숑의 실언들이 악재로 작용하며 연대에서 밀려나, 대부분 지역에서 독자 노선을 걸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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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2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26년 지방선거 2차 투표의 공식 개표 결과가 발표된 후 승리를 거둔 사회당의 에마뉘엘 그레구아르 후보가 벨리브 공공 자전거를 타고 파리 시청으로 향하며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
| ⓒ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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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2일 파리 시장 선거 2차 투표에서 패배가 확정된 후 열린 선거 유세 현장에서 기자단과 지지자들에게 연설을 마친 라시다 다티가 자리를 떠나고 있다. |
| ⓒ AFP/연합뉴스 |
판사학교 입학 시 제출했던 MBA 졸업증명서의 위조 논란, 뇌물 수수 혐의로 검찰 기소, 자택 압수수색, 9월에 시작될 재판… 도덕성과는 거리가 먼 후보이나 파리의 우파 부르주아들은 그녀를 간절히 필요로 했다. 그들은 노숙자·불법 이민자들을 파리에서 쫓아내고, 쾌적한 부르주아적 삶의 공간을 지켜줄 '냉혈의 마름'을 원했다. 이민자 출신이면서 동시에 이민자에 극도로 적대적인 그녀는 이런 일을 맡기기에 적합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파리 최고 부촌으로 꼽히는 7구청장을 지낸 다티가 부르주아들 입맛에 맞는 행정력을 입증해 보인 것도 그녀가 우파들의 폭넓은 환심을 샀던 이유다.
하지만 9%p 차(그레구아르 50.5% vs. 다티 41.5%)로 다티의 패배가 선언되자, 한편에선 그녀를 향한 거침없는 조소와 야유가, 다른 한편에선 우파들의 절규가 교차했다. 사회당이 집권해온 파리의 지난 25년은 자전거 천국과 임대주택 비율의 급성장, 끝나지 않는 도로 공사로 상징되는 시간으로, 상대적으로 청결과 질서·안전에 대해선 무심했던 시간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마치 그 두 가지가 병립될 수 없는 과제인 양.
파리의 신임 시장 에마뉘엘 그레구아르
파리시장에 당선된 에마뉘엘 그레구아르는 안 이달고 시장 밑에서 부시장으로 일하며 성과를 내온, 유연한 행정가로 평가받는다. 이번 파리 시장 선거는 다티의 파리 입성이 성공하느냐 저지되느냐에 초점이 맞혀 있던 탓에 정책 이슈는 크게 부각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공약을 들여다보면, 전에 없이 대동단결했던 파리 부르주아들의 결연한 태도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짐작할 수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공약은 '주거 정책'에 있다. 그레구아르는 6만 호의 공공주택 신규 공급을 약속했는데, 이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신규 주택을 짓는 대신 5년 이상 사용되지 않는 사무 공간이나 주택을 징발해서 공공 주거 공간으로 사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동시에 주민들의 주거 공간을 위협하는 에어비앤비에 대해 더욱 강화된 규제(이미 30~50%의 높은 수준의 세금 부과, 임대 기간도 120일 상한선)를 약속한다.
특히 임대주택이 들어서는 것을 완강히 거부하는 지역(파리 7구, 16구 등)에도 '공평하게' 임대주택이 들어서게 할 것을 천명하면서, 해당 지역 주민들과의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5년 이상 비어 있는 주택이나 건물에 대해 징발하겠다는 급진적 공약에 대해서는, '사유재산제' 자체에 대한 위협이라는 반발 여론이 우파 시민들 사이에서 들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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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 파리 시내의 한 거리에 과속 단속 카메라가 설치돼 있는 모습. |
| ⓒ 연합뉴스 |
전반적으로 미래 세대를 위해 바람직한 방향이다. 하지만 우파 성향 시민들에겐, 자전거 도로 확대와 공사의 연장과 녹지 확대는 곧 파리 시내에서의 승용차 주행과 주차의 어려움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회당이 임대주택 확충과 환경·생태 이슈에 몰두하는 반면, 청결하고 안전한 수도를 만드는 일에 상대적으로 무심했던 것도 우파 유권자들의 불만을 자극한 부분이었다. 이처럼 선거는 끝났고, 최악의 인물을 피할 수 있었으나 파리시는 그 어느 때보다 양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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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트라스부르그 신임 시장 카트린 트로트만 |
| ⓒ 카트린 트로트만 페이스북 |
1989년, 처음 스트라스부르그 시장으로 당선된 카트린 트로트만(Catherine Trautmann)은 이후 10년 동안 스트라스부르그를 유럽연합의 중심지(유럽의회 본부 위치)로 만들었다. 나아가 스트라스부르그를 우아한 도시 미관과 생태적 가치가 공존하는 아름다운 도시로 만드는데 초석을 닦았다. 문화부 장관을 지냈고, 이후 국회의원·유럽의회 의원 등을 역임했던 현재 75세의 그녀는 2001년 이후 25년 만에 다시 스트라스부르그 3선 시장(1989, 1995, 2026)으로 돌아왔다.
과거 시장이 된 그녀가 착수한 첫 사업은 트램이었다. 트램이 깔린 1994년을 기점으로 스트라스부르그는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도시가 되었다. 트램이 지나는 길의 자동차 통행은 금지됐고, 특히 도심의 클레베르 광장은 주차장이 사라지고 보행자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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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트라스부르그의 트램 |
| ⓒ 위키미디어 공용 |
이 도시의 공공 임대주택의 비율은 27%에 달한다. 트로트만은 임기 초부터 특정 지역에 임대주택을 몰아넣는 '게토화'를 철저히 경계해서, 새로 짓는 모든 아파트 단지에 일정 비율( 30~40%)의 임대주택을 의무적으로 섞게 했다. 외관상으론, 일반 분양 아파트와 전혀 구분이 가지 않는다.
트램 A선 종점엔 정보통신 중심의 첨단 산업이 모이는 테크노 파크를 조성하기도 했다. 현재 이곳엔 100개가 넘는 혁신 기업과 2000명 이상의 연구원이 상주하며, 암 연구소(IRCAD) 등 국제 연구기관들도 들어와 있다.
이번 선거에서 전임 녹색당 시장을 꺾고, 트로트만이 승리할 수 있었던 핵심은 '균형'에 있다. 전임 녹색당 시장의 급진적인 생태 정책에 피로감을 느낀 시민들은 '실용적이고 품격 있는' 절충적 공약들을 제시한 트로트만을 다시 시장 자리에 앉혔다.
전임 녹색당 시장이 자동차를 '적'으로 규정했다면, 트로트만은 '공존'의 해법을 제시했다. 노후 차량 운행 제한을 강제하는 대신, 소상공인과 서민들이 전기차로 바꿀 수 있는 보조금을 대폭 확대하고 유예 기간을 늘릴 것을 약속했다. 도심에 나무만 심는 게 아니라, 열섬 현상이 심한 광장들에 분수/인공 개울을 결합한 '쿨링 아일랜드' 조성안을 제시했다.
밤거리 안전을 위해 시립 경찰 인력을 확충하고, 외곽의 쓰레기 수거·거리 청소 주기를 앞당기는 '청결 프로젝트'를 제시하면서, 치안과 청결을 중시하는 우파 시민들의 마음도 얻었다. 유럽위원회가 있는 브뤼셀에 쏠린 유럽연합의 중심축을 다시 스트라스부르그로 끌어오겠다며 제시한 '유럽의 심장을 다시 뛰게' 슬로건도 시민들 마음을 흔들었다.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유럽의회 회기를 늘리고, 의원들이 머물기 좋은 최고급 컨벤션 센터·호텔 지구를 추가 개발할 것도 약속했다. 이 부분에서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물이기에 주민들은 그녀의 약속을 신뢰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18개의 노벨상을 배출한 스트라스부르 대학과 테크노파크를 연계해 전 세계 유학생들이 모이는 유럽형 실리콘밸리로 재도약시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환경을 지키되 시민 불편을 최소화하고, 변화를 추구하되 도시의 전통을 함께 살려내며, 혁신경제를 말하되 소시민들을 소외시키지 않는, 모두를 끌어안는 포용과 상생. 트로트만이 다시 시민들의 부름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다. 오는 6월 한국의 지방선거에서도 이런 지도자의 탄생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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