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는 써야 늘어요… 부족해도 일단 뱉어보는 경험이 우선”
채널 ‘라이브 아카데미’ 운영자
신용하
많은 한국인은 오늘도 유튜브에 접속해 정보를 얻고 음악을 듣고 뉴스를 보고 위안을 받습니다. '유튜버'와 '인터뷰'의 첫 자음을 딴 'ㅇㅌㅂ'은 이렇듯 많은 이의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유튜버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유튜브 채널 ‘라이브 아카데미’에는 없는 게 많다. 인트로(도입부)나 주요 장면을 미리 보여주는 ‘30초 요약’이 없고 채널 주인의 자기 소개도 등장하지 않는다. ‘구독·좋아요·알림설정’ 요구도 없다. 구독자들이 재생 버튼을 누르는 것과 동시에 마주하는 것은 오늘 배울 영어, 그것뿐이다.
조회수를 위해 자극적인 요소를 앞세워 관심을 유도하지도 않는다. 조회수가 높은 순서로 정렬했을 때 상위 4개 영상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would와 could 올바르게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법’, ‘알다-영어로 know 말고 8가지나 더 있다’, ‘아까·이따가 영어로’ ‘내가 알기로는·내가 듣기로는·내가 보기에는-자연스러운 영어를 위한 필수 표현 3가지’.
이 같은 담백함에 반해 채널을 구독한 이는 이미 105만명에 달한다. 영어 초급자를 위해 개설된 ‘라이브 아카테미 토들러’ 채널까지 더하면 구독자 규모는 더 늘어 166만명을 웃돈다.
군더더기를 덜어낸 방식이 정체성이 됐지만 의도한 건 아니었다.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에서 만난 채널 운영자 신용하(44)씨는 “낯간지러운 걸 싫어해서 구독을 부탁하거나 의도적으로 시선을 끄는 방식이 맞지 않았다”며 “결국 내가 편하게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영상을 만들다 보니 지금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채널의 상징처럼 된 신씨의 ‘빨간 모자’ 역시 의도한 게 아니었다. 첫 영상을 올린 2017년, 신씨는 학원 강의와 유튜브 제작을 병행하느라 이틀에 하루는 밤을 새울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촬영을 앞두고 머리를 정리할 여유조차 없었는데, 그때 손에 잡힌 게 빨간 모자였다. 구독자들은 이때부터 그를 ‘빨간 모자를 쓴 선생님’이라는 의미에서 ‘빨모쌤’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당시 신씨는 10년차 영어 강사였다. 그는 학생들의 입에서 나오는 영어를 모두 받아 적고, 수업이 끝나면 이 중 틀린 부분을 교정해 나눠주는 식으로 수업을 했다. 인기는 많았지만 한계를 느낄 때가 많았다. 들어가는 시간과 노동에 비해 ‘도달 범위’가 너무 좁다는 답답함이 컸다. 훨씬 더 많은 사람에게 영어가 가닿기를 바랐다. 온라인 유료 강의도 생각했지만, 접근성은 유튜브가 더 좋겠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만든 채널은 빠르게 성장했고, 그는 2018년 3월 전업 유튜버의 길을 택하게 됐다.
신씨가 영어 교육 콘텐츠로 명성을 얻게 된 비결이 궁금하다면 우선 그의 인생 스토리부터 알아야 한다. 그는 다섯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갔다가 열세 살에 다시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두 번의 언어장벽을 경험해야 했다.
“여덟 살쯤이었을 거예요. 학교 운동장에 수도가 있었어요. 점심시간에 너무 목이 말랐는데 먹어도 되는 물인지를 모르겠는 거예요. 영어를 모르니 한국말로 이야기를 했는데 선생님이 못 알아들으시니 답답해서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나요.”
1994년, 겨우 영어를 익혔더니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한국어는 대충 알아들어도 ‘한글’은 모르던 상태였다.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두 달 전에 아버지가 종이에 기역, 니은, 디귿 써주면서 ‘이게 한글이야’ 하시더라고요.”
초등학교 6학년 2학기, 또래들이 교과서를 읽고 이해할 때 그는 한글도 띄엄띄엄 읽는 수준이었다.
그의 영상에 유독 ‘실전력’이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 것은 이런 독특한 이력 때문이다. 어린 신씨에게는 교과서 속 문장보다 당장 학교에서 살아남는 데 필요한 말이 더 간절했다. ‘먹다(eat)’를 아는 것보다 ‘먹을 뻔했다’, ‘먹을지도 모른다’, ‘먹을 수도 있었다’처럼 상황에 맞춰 응용하는 법에 공을 들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예문 하나를 만들 때도 ‘배우는 사람이 당장 내일이라도 이 문장을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영어로 말을 하려면 결국 실전력이 필요해요. 어휘와 표현은 외우면 됩니다. 하지만 많은 분이 그걸 실제로 말로 꺼내 쓰는 법은 배우지 않아요. 요리에 비유하면 재료는 가득 쌓아두고도 요리하는 법을 익히지 않은 상태와 같습니다. 아무리 좋은 재료가 많아도 요리할 줄 모르면 식탁에 올릴 수 없잖아요.”




신씨는 한국인들이 영어를 어려워하는 것은 “영어와 맺어진 관계가 애초부터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우리가 영어를 학교에서 ‘학과목’으로 처음에 배웠어요. 그렇게 관계가 시작되니 평생 공부의 대상으로밖에 안 보이는 거예요.”
신씨는 영어 학습법을 묻는 이들에게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당신에게 똑같은 질문을 한다면 뭐라고 조언해 주겠느냐”고 되묻는다. “대부분은 ‘한국어 문법책 사서 공부해’라고 말하지 않을 거예요. 그냥 드라마 많이 보고, 못 해도 되니까 많이 쓰고 뱉으라고 하겠죠. 그런데 정작 본인들에게는 이 쉬운 진리를 적용하지 않아요.” 그러면서 그는 영어 교육을 ‘운전’에 빗대어 설명했다.
“운전을 배울 때 무서워서 집에서 운전 공부만 하나요? 아니죠. 욕도 먹고, 뒤에서 빵빵거리는 소리도 듣고, 가벼운 사고도 내고…. 그러면서도 핸들을 잡으니까 느는 거잖아요? 그런데 많은 사람이 ‘발음이 너무 별로야’, ‘너 영어 너무 못해’라는 소리를 들으면 영어를 포기해버립니다. 90%가 실패하는 건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겁나고 불편해서 핸들을 놓아버리기 때문이에요.”
실제로 그가 구독자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이렇게 말해도 되나요?”다. 과거에는 부자연스러운 표현에 대해 단호하게 “안 된다”고 답했지만, 지금은 최대한 그 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대신 “그렇게 말해도 소통은 되지만 이런 표현을 더 추천한다”고 에둘러 말한다. 조금 부족할지라도 일단 뱉어보는 ‘경험’이 우선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렇기에 신씨가 콘텐츠를 제작하며 가장 유의하는 점도 ‘이건 안 된다’는 식의 공포를 심어주지 않는 것이다. 유튜브에는 ‘원어민은 절대 안 쓰는 표현’ 같은 자극적인 조언이 넘쳐나지만 그는 이런 방식이 언어 습득의 가장 큰 적이라고 강조한다.
“조회수만 생각했다면 저도 그렇게 했을 거예요. 불안과 분노는 사람의 관심을 끄는 가장 쉬운 도구니까요. 하지만 ‘틀리면 어떡하지’라는 겁을 주는 순간 학습자는 입을 닫게 됩니다. 외국인이 한국말을 조금 틀리게 했다고 화를 내거나 비웃는 한국인은 없어요. 그런데 우리는 유독 영어에서만큼은 체면을 너무 따집니다. 문화적 예의나 완벽한 뉘앙스를 챙기는 건 나중 문제예요.”
신씨는 영어를 더 이상 ‘공부의 대상’에만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영문 뉴스 기사를 읽거나 소셜미디어에 짧은 영어 댓글을 다는 식으로 영어를 ‘활용의 영역’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휴대전화 설정과 구글 검색, 챗GPT에 하는 질문, 뉴스 소비까지 생활 전반을 영어로 한다. 실제로 이날 확인한 신씨의 유튜브 알고리즘 역시 영어 콘텐츠로 채워져 있었다.
“제가 유튜브 라이브나 영상에서 너무 자주 말해서, 아마 이 얘기 때문에 구독을 취소하신 분도 있을 거예요. 그래도 이게 제일 중요합니다. 영어는 써야 늘어요.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면 결국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해요.”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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