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홍천군 한 마을에서 홀로 사는 60대 F씨에게 병원에 가는 일은 하루를 온전히 소진하는 고된 여정이다. 수십 년간 농사와 건축 일용직으로 버텨온 F씨는 주 3회 신장 투석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시내 병원까지 가려면 하루 5대뿐인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을 가거나, 홍천군이 운영하는 취약계층 지원 차량을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 차량은 마을에 한 대뿐이다.
병원에 도착해 대기시간을 거쳐 투석을 시작하면 세 시간 넘게 기계에 몸을 맡겨야 한다. 집으로 돌아오면 기진맥진해 그대로 잠들기 일쑤다. 설상가상으로 최근에는 합병증으로 인한 시력 악화로 사람 얼굴도 희미하게 보인다고 한다. F씨는 익숙한 자리에만 물건을 두고 손끝으로 더듬어가며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한다. 보일러가 고장 나 집 안이 썰렁해졌지만 메모장에 적힌 수리 기사의 전화번호도 읽지 못해 취재진이 대신 전화해준 뒤에야 겨우 수리할 수 있었다.
경제 사정도 벼랑 끝이다. F씨의 월수입은 사실상 기초연금 30만원대가 전부다. 투석과 진료에 드는 병원비 일부는 몇 달째 외상으로 쌓여 있다. 그는 은행에서 500만원이라도 빌려보려 대출을 타진했지만 ‘상환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는 “앞이 안 보이는데 나갔다가 실수하면 안 된다”며 노인일자리나 경로당 이용도 꺼리고 있다.
같은 마을의 90대 G씨 역시 병원까지 가는 길이 하세월이다. G씨가 다니는 종합병원 두 곳은 각각 버스로 1시간, 혹은 두 번을 갈아타 2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그는 지난해 7월 밭에 전동차를 타고 나갔다가 도랑에 전복되는 사고를 당했다. 10월에는 마트 인근 도로에서 교통사고로 다리를 크게 다쳤다. 이후 거동이 어려워져 집 안에서도 휠체어에 의존하고 경로당에도 나가지 못하게 됐다.
그의 요양보호사는 “G씨가 거동이 불편해진 뒤로 ‘이게 사는 거냐’며 한숨을 푹푹 내쉬는 일이 잦다”며 “우울 증세가 있는지 주의 깊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G씨는 그 외에도 위장질환, 골다공증, 치질, 신경계 질환 등 여러 질환을 앓아 하루에 먹는 약만 한 움큼이다.
이처럼 인구감소지역의 의료 접근성은 열악하다. 서울(605.2㎢) 면적의 약 80%에 달하는 충남 청양군(479.2㎢)에는 보건소를 제외한 병원은 지난해 12월 기준 26곳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26곳 중 22곳(84.6%)은 청양읍에 집중돼 있다. 병원 중 정신의학과는 단 한 곳도 없다.
서울 면적의 3배가 넘는 홍천군(1820.3㎢) 역시 병원 60곳 가운데 정신의학과는 1곳에 불과하다. 정신과 전문의는 단 2명이다. 서울 시내 전체 병원이 1만420곳이고, 이 중 정신의학과는 628곳, 정신의학과 전문의는 1264명이 활동하고 있어 확연한 대비를 이룬다.
2024년 기준 충남 청양군·강원 정선군·경북 봉화군·충남 태안군·강원 영월군 등 자살률 상위 10개 지역 가운데 절반은 정신의학과 전문의가 아예 없다. 국내 인구 10만명당 평균 정신의학과 의사 수는 8.3명이지만 인구감소지역 89곳 중 63곳(70.8%)은 이 평균에 미치지 못했다.
의료뿐 아니라 일상 인프라 역시 부족하다. 취재진이 찾은 청양군과 홍천군은 마트와 세탁소 등 기본 생활시설이 부족해 몸이 불편한 노인들은 장을 보기 위해 읍내까지 이동해야 하거나 복지사의 도움을 받는 처지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교통 취약계층을 위해 택시를 운영하기도 하지만, 현장에서는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천군은 ‘희망택시’로 불리는 취약계층 택시를 운영하지만, 10개 읍·면 71개 마을에 마을당 1대씩 배치돼 있고 인당 이용은 월 최대 8회로 제한하고 있다.
박지영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29일 “농촌은 도시에 비해 기본 인프라의 형평성이 심각하게 뒤틀려 있다”며 “이는 지역소멸과 맞닿아 있는 돌봄 인프라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어 “정신의학과가 부족한 상황에서 노인이 주로 찾는 정형외과 등 1차 의료기관이 자살 예방에 대한 인식을 갖고 기본적인 개입을 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 109 또는 SNS상담 마들랜(마음을 들어주는 랜선친구)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본 기사는 자살예방 보도준칙 4.0을 준수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