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고 자는 애들이 내 등급 받쳐줘요"... 인문계고 교실의 민낯

서부원 2026. 3. 29.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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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특성화고 선호 현상이라는 긍정적인 변화의 이면

[서부원 기자]

 엎드려 자는 학생. AI생성 이미지
ⓒ 오마이뉴스
이제 '쌍봉낙타'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그만큼 학교 교육은 힘들어졌고, 교사의 무력감은 더해져만 간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교육부와 교육청은 실효성도 없는 엉뚱한 대책만 늘어놓는가 하면 학교와 교사가 해결해야 할 몫이라고 떠넘기고 있는 형국이다.

'쌍봉낙타'는 아이들의 성적 분포가 양극화하고 있는 현상을 빗대는 표현이다. 점수 분포를 그래프로 나타냈을 때, 상위권과 하위권이 불룩하고 평균 점수 주위가 되레 오목한 형태를 띠어 흡사 쌍봉낙타의 등 모양을 연상시킨다. 중위권이 사라진 인문계고의 현실을 보여준다.

최근에 치러진 3월 전국연합 모의평가의 결과를 자체적으로 분석했다. OMR 답안 카드를 교육청으로 송부하기 전에 학교가 연도별, 과목별 아이들의 성적 추이를 미리 살펴보려는 것이다. 전국 단위의 비교는 추후 교육청으로부터 배부된 성적표를 받아본 뒤에야 알 수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과목이나 영역에 상관없이 평균 점수 주위가 불룩한 정규분포곡선이 그려지는 게 보통이었다. 시험의 난이도에 따라 곡선이 오른쪽, 또는 왼쪽으로 약간 치우칠 뿐 곡선의 형태가 흐트러지진 않았다. 국어나 수학, 탐구 영역 등의 상대평가 시험과 영어와 한국사 영역 등의 절대평가 시험에 별반 차이도 없었다.

오해할까 싶어 덧붙이자면, 내신 등급을 기준으로 뭉뚱그린 게 아니다. 9등급제인 현 고3에선 1등급과 2등급이 각각 4%와 11% 이내이고, 5등급 구간이 40~60%이니 어떻게든 정규분포곡선이 그려질 수밖에 없다. 5등급제인 고1과 고2에서도 큰 차이가 없다. 1등급이 10% 이내인 반면, 중간인 3등급 구간은 34~66% 구간이어서다.

여기서 말하려는 건, 아이들의 뭉뚱그려진 '등급'이 아니라 개별적인 '점수'다. 절대평가의 필수 영역인 데다 출제 문항의 내용과 패턴이 정형화되어 있는 한국사 영역마저 '쌍봉낙타'로 변해가고 있다. 한국사 시험은 '국적 판별 시험'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평이하다.

3월 모의평가는 중학교 때 배운 내용을 출제 범위로 하고 있다. 시험의 형식만 수능에 맞춰져 있을 뿐, 문항의 난이도는 중3 수준이다. 배정된 아이들의 학업 역량을 대강 파악하는 지표로 활용되며, 문항별 정오표 분석을 통해 교과별로 취약한 부분을 확인하는 기회가 된다.

"중학교 때 뭘 배웠기에"... 3월 모의평가가 드러낸 충격

"대체 중학교 때 뭘 배웠기에, 그 쉽다는 한국사마저…"

결과표를 받아 든 순간, 나도 모르게 탄식이 터져 나왔다. 국어, 수학, 영어 영역 시험을 차례로 치르고 난 뒤 4교시를 시작하는 한국사는 이른바 '쉬어가는 코너'다. 사실상 당락을 결정하는 주요 과목을 끝냈으니, 잠깐 한숨 돌리고 탐구 영역을 준비하라는 나름의 '배려'다.

아이들의 성적은 실로 처참했다. 10점대가 전체 응시생 대비 20%에 육박했고, 한자리 점수의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 10점대 점수라면 시험지를 받자마자 그냥 '찍고 잤다'는 뜻이고, 한자리 점수라면 그들 중에 '운이 나빴던' 경우다. 이 정도의 비율은 근래 보지 못했던 사례다.

이 와중에도 상위권의 성적은 탄탄하다. 1등급으로 분류되는 40점 이상이 30%를 넘고, 50점 만점인 아이들도 여럿이다. 굳이 해석하자면, 성적 분포상 다수여야 할 20~30점대 아이들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한국사 영역이 이럴진대, 다른 과목은 '안 봐도 비디오'다.

주요 과목인 국어와 수학, 영어의 '쌍봉낙타'는 그 형태가 더욱 뚜렷하다. 중위권이라는 말 자체가 불필요한 상태다. 국어, 수학과 달리 영어는 절대평가 방식인데도 큰 차이가 없다. 비유컨대, 10~20점대와 80~90점대가 각각 '한라산'과 '백두산'처럼 봉긋하고 나머진 야트막한 '구릉 지대'다.

기실 정도가 심각해서일 뿐, 예상하지 못했던 바는 아니다. 시험일 감독교사로 교실에 들어가 보면 알게 된다. 실제 응시생이 몇 명인지를. 특히 수학 영역의 경우엔, 시험지는 펴보지도 않은 채 답안 카드에 한 줄로 긋고 곧장 엎드려 잠자는 아이들이 교실에 20% 가까이는 된다.

최근 달라진 게 있다면, 수학 시험에서 주로 보이던 '한 줄 긋기'가 과목과 상관없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쉽다는 한국사 영역마저 그 비율이 엇비슷하다. 그들끼리의 등급과 석차는 순전히 시험일 당일의 '운'이 결정하는 셈이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할 따름이다.

3월 모의평가 성적 분포표를 잠시 접어두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고1 신입생의 중학교 시절 내신 성적을 살펴봤다. 학교로 배정될 때 인계되는 개인별 신상 자료에는 출신 중학교의 이름과 함께 상위 퍼센트의 오름차순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등학교의 그것과 동일한 방식이다.

0점대의 최상위권도 있고, 90점대 후반의 최하위권도 보인다. 0점대라면 중학교에서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는 뜻이고, 90점대 후반이라면 반대로 뒤에서 1등을 독차지했다는 의미다. 기존의 한 줄 세우는 내신 성적 평가 방식에서 0점대와 90점대의 공존은 필연적이다.

정작 눈에 띄는 건, 40~70%대 중하위권의 숫자가 예상외로 적다는 점이다. 언뜻 통계적 오류 등으로 인해 해당 구간이 통째로 비워져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그러다 보니 출신 중학교와 상관없이 80~90%대 아이들의 이름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이고, 예년에 견줘 그 수도 많다.

이유가 있었다. 중하위권 아이들의 특성화고 선호 현상 때문이었다. 관내 중학교에 근무하는 중3 부장 교사의 협조로 최근 3년의 특성화고 진학 관련 정보를 살펴볼 수 있었다. 거기엔 학과별 정원과 합격자의 최고점, 최저점, 평균점과 변동의 추이 등이 자세히 안내되어 있었다.

확연히 달라진 특성화고 위상, 휘청이는 인문계고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 시행일인 2024년 6월 4일 오전 서울 송파구 방산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답안지를 배부받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마이스터고로 지정된 곳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 특성화고의 '커트라인'이 대폭 상향되어 있었다. 중학교 내신 성적 기준 50~60% 학생이 대부분인 곳도 있고, 식품과학과나 반려동물과의 경우엔 10~20%대의 상위권 학생도 드물지 않다. 아예 70% 바깥이면 응시가 불가하다고 못 박은 곳도 여럿이라고 한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특성화고는 내신 성적과 상관없이 진학할 수 있는 곳이었다. 정원을 채우지 못해 교사들이 원서 꾸러미를 들고 관내 중학교를 찾아가 '영업'을 해야만 했다. 지금은 확연히 달라졌다. 80% 바깥이면, 사실상 진학할 수 있는 곳이 없을 정도로 특성화고의 위상이 높아졌다.

어쩌면 이는 우리 교육, 나아가 대한민국 사회에 긍정적인 신호일 수 있다. 아이들 각자가 일찌감치 자신의 진로를 정하고 직업 전문성을 키운다는 차원에서 바람직한 변화다. 특성화고 출신이라고 해서 향후 대학 진학에 장애가 되는 시대도 아닐뿐더러 학교마다 대학 진학반을 따로 운영하는 곳도 적지 않다.

선호도가 높아진 만큼 특성화고의 교육 수준도 덩달아 높아지게 될 테다. 상위권 학생이 많아지고 최하위권 아이들이 없다는 것보다 내신 성적이 엇비슷한 아이들이 모여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교육의 수월성와 효율성 측면에서 보면 '대상의 균질성'보다 중요한 요인은 없다.

특성화고 진학을 희망했지만, 탈락한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인문계고로 배정될 수밖에 없다. '쌍봉낙타'에 직면한 인문계고의 현실은 애초 피할 수 없는 결과였던 셈이다.

'쌍봉낙타'의 등쌀에 인문계고 교실이 휘청이고 있다. 교사들은 수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하고, 아이들은 학교 수업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는다. 그나마 상위권 아이들이 하위권 아이들의 존재를 고마워하는 구석이 있다. 우리 교육의 난맥상이 이 말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찍고 자는' 그들이 내신 등급을 받쳐주잖아요. 다다익선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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