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모래가 들어가든 말든, 입 벌리고 보게 되는 장면

문진수 2026. 3. 29.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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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서부 탐방기 ③]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땅, 앤텔로프 캐니언

낯선 세상을 향한 동경은 인간의 보편적 정서인지 모릅니다. 인공의 때가 덜 묻은 원시의 자연을 느끼고 싶어 2026년 3월 3일부터 10일까지 미국 중서부 지역의 협곡(canyon) 여러 곳을 다녀왔습니다. 현지에서 보고, 관찰한 것들을 토대로 몇 차례 나누어 소개하려고 합니다. <기자말>

[문진수 기자]

지평선이 보이는 사막 한복판에 직선으로 길게 뻗은 왕복 2차선 도로를 2시간 남짓 달렸을까. 오른 편에 페이지(Page)라고 써진 입간판이 보였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30분 정도 통과하니 다시 평원이 펼쳐진다. '페이지'는 애리조나주 최북단에 있는 인구 7천 명의 작은 소도시다. 도시 형성 과정에 크게 기여한 인물(마이클 페이지) 이름을 땄다고 한다.
▲ 페이지(page) 위치 (구글 지도) : 애리조나주와 유타주의 경계에 있다
ⓒ 문진수
사막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어 늘 모래바람이 부는 이 황량한 땅에 연간 100만 명에 달하는 관광객이 찾아온다. 인근에 있는 특별한 사암(砂巖)을 보기 위해서다. 페이지라는 지명은 몰라도 물결 모양의 오렌지색 바위를 사진으로 접한 사람은 많을 것이다. 컴퓨터 바탕화면에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신비한 빛을 발하는 협곡과 바위. 이곳에 앤텔로프 캐니언(Antelope Canyon)이 있다.

앤텔로프는 원주민 말로 '바위 사이로 물이 흐르는 곳'이라는 뜻이다. 수백만 년 동안 빗물과 홍수가 바위 틈새를 휩쓸고 지나가며 독특한 모양의 협곡을 만들어냈다. 앤텔로프 캐니언은 연방정부가 관리하는 국립공원이나 기념물이 아니다. 이 협곡은 나바호족(Navajo)이 소유, 관리하는 부족 공원(tribal park)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곳은 나바호족의 땅이었다.

나바호족은 미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원주민 부족으로, 1860년대 초 정부가 강제로 땅을 빼앗기 전까지 이곳에서 양을 치고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강제 이주의 아픔을 겪었지만, 천신만고 끝에 고향으로 귀환한 유일한 원주민 부족이기도 하다. 나바호 자치구는 애리조나, 뉴멕시코, 유타 3개 주(state)에 걸쳐 있는 원주민 보호구역으로, 미국 땅에 속해 있지만 입법, 사법, 행정기관을 갖춘 엄연한 자치령이다.

자치구 면적은 7만 제곱킬로미터(㎢)로, 우리나라 국토 면적의 약 7할, 아일랜드나 조지아의 크기와 맞먹을 만큼 넓다(지도의 빗금 친 영역이 나바호 자치구 영토다). 현재 30만 명이 넘는 원주민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협곡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빨간색 간판이 서 있다. 자신들의 땅을 국가(nation)라고 명명한 대목이 인상적이다.
▲ 앤텔로프 협곡 입구에 서 있는 입간판 : 입장 시 발생하는 모든 위험은 본인이 감수해야 한다는 문구가 적혀있다
ⓒ 설지원
앤텔로프에 들어가려면 나바호족 안내인과 동행해야 한다. 인기가 많아 사전 예약이 필수다. 약속한 장소에 10분 일찍 도착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문이 닫혀 있다. 전화를 걸었다. 사정이 생겨서 어젯밤에 취소 메일을 보냈다며, 입금한 돈은 돌려주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급하게 근처에 있는 다른 운영사를 찾아가 빈자리가 있는지 물었다. 몇 자리가 비어 있단다. 다행이다. 잘못하면 시간을 허투루 낭비할 뻔했다.

앤텔로프 캐니언 중 탐방객의 출입이 허락된 곳은 두 지점이다. 위쪽(Upper)과 아래쪽(lower)이다. 지형적 특징이 비슷해서 어디를 가도 되지만, 위쪽이 길도 평탄하고 빛의 감도도 나은 편이어서 인기가 높고 가격도 상대적으로 비싸다. 우리도 위쪽을 선택했다. 참고로, 앤텔로프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햇빛이 가장 강렬한 시간대를 고르는 게 좋다.

다인승 버스를 타고 비포장 길을 10분쯤 달려 입구에 도착했다. 커다란 바위 사이에 사람 한 명이 들어갈 만큼 좁은 틈이 나 있다. 미지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같다. 안은 생각보다 훨씬 어두웠다. 안내인이 손으로 위를 가리킨다. 세상에나. 천장에 뚫린 틈새로 스며든 빛이 벽에 반사되어 신비한 색상을 연출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터졌다.
▲ 위쪽(upper) 협곡 안에서 촬영한 사진 : 천정에서 유입된 미세한 모래가루가 날리고 있었다
ⓒ 설지원
날씨가 흐려서 유입되는 빛의 양이 적었음에도 협곡 안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인공적인 기술로는 흉내 내기 힘든 신비로운 지형. 자연이 만들어낸 경이로운 예술 작품이다. 사람들이 어째서 이곳에 오고 싶어 하는지를,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에 앤텔로프를 찍은 사진들이 그토록 넘쳐나는지알 것 같다. 카메라 단추를 누르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상황이다.
나바호족의 후예는 동행한 이들의 휴대전화기로 카메라 렌즈를 조절하며 사진을 찍어주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어느 지점에서, 어떤 각도로 촬영해야 훌륭한 사진이 나오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앤텔로프 사진 전문가라고 할까. 덕분에 멋진 사진을 얻긴 했지만, 협곡이 간직하고 있는 역사와 지질학적 특성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듣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다.
▲ 위쪽(upper) 협곡에서 촬영한 사진 : 빛의 양, 찍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형상을 연출한다
ⓒ 문진수
앤텔로프는 물, 바람, 시간이 만들어낸 자연의 합작품이다. 수백만 년에 걸쳐 바위 속으로 물이 흘러들어 돌이 깎이면서 마치 물결이 치는 듯한 유선형의 독특한 곡면을 창조해 냈다. 협곡 안을 걷다 보면 위에서 작은 모래 알갱이들이 낙하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천장으로 유입된 모래가 아래로 떨어지는 현상이다.

홍수(flash flood)에 의한 침식(浸蝕)이 계속되고 있다고 하지만, 협곡 안 사암(砂巖)은 손톱자국이 생기지 않을 만큼 단단하다. 협곡의 너비가 종이 한 장만큼 넓어지는데 5천 년 이상이 걸렸다고 한다. 인간의 출입이 가능하지 않아 노출되지 않았을 뿐, 이 일대에는 놀라운 비경(祕境)을 간직한 곳들이 많을 것이다.

1시간 남짓 앤텔로프 탐험을 마치고 지역 명소로 알려진 홀슈밴드(Horseshoe Bend)를 찾았다. 500만 년 전, 콜로라도 고원이 솟아오르면서 강물이 갇히게 되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강이 융기된 사암층을 깎아 형성된 지형이다. 강원도 정선 병방치에 있는 한반도 모양의 말굽 지형을 빼닮았다. 관광객들이 계곡을 배경으로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는다.
▲ 홀슈 밴드 전망대에서 촬영한 사진 :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이 콜로라도강이다.
ⓒ 문진수
페이지에는 외부에 덜 알려진, 멋진 사진찍기 장소가 한 군데 있다. 인터넷에서 '비디 아치(Biidi the Arch)'라고 검색하면 장소를 찾을 수 있는데, 사암으로 만들어진 얕은 원형 동굴이다. 깊은 굴이 아니라 둥근 천장으로 만들어진 야외극장 무대를 연상하면 된다. 개인 사유지이지만 출입이 가능하다. 주유소 근방에 있어서 쉘 동굴(Shell Cave) 혹은 주유소 아치(Gas Station Arch)로 불린다.
▲ 페이지의 숨겨진 명소 중 하나인 Biidi The Arch 위치 : 쉘(shell) 주유소 근방에 있다
ⓒ 문진수
막상 이 장소에 도착하면 '이곳이 어떻게 사진찍기 좋은 장소지?'라는 의구심이 들 수 있다. 모래언덕 위에 얕게 패인 야트막한 원형 동굴이 보일 뿐, 주변에 근사한 장면이라고는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열쇠는 방향이다. 동굴 밖에서 안을 보지 말고 동굴 안에 서서 밖을 바라보시라. 상상하지 못했던, 전혀 다른 풍광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 Biidi The Arch에서 촬영한 사진 : 인근의 탐방객 여럿에게 비법을 전수해주었다
ⓒ 설지원
덧) 페이지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이 여럿 있다. 점심에는 볶음밥과 도시락을, 저녁에는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를 시켜서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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