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이란 전쟁, 이유도 듣지 못 했다”…미국 전역에서 ‘노 킹스’ 역대 최대 시위
미국 전역에서 800만명 이상 시위 참석
“이란 전쟁 멈춰라” “트럼프를 탄핵하라” 손팻말

28일(현지시간) 오후 3시 미국 워싱턴DC 연방의회 의사당 앞. ‘노 킹스(No Kings·왕은 없다)’ 시위에 참여한 70대 여성 헬렌 머서(72)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그는 정보 부족으로 결코 시작해서는 안 될 이란 전쟁을 시작했고, 그로 인해 우리는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으며 사람들이 불필요하게 죽어가고 있다“며 “어머니들은 잃어버린 이들은 애도하고 있고, 모든 것이 파멸로 치닫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국민에게 할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미국인 모두가 트럼프와 같은 건 아니라는 점을 알아줬으면 한다”며 “우리는 그가 하는 일을 혐오한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존중하기를 원하고 세계와 함께 단결하기를 원한다”고 덧붙였다.

벚꽃이 만개한 수도 워싱턴 DC를 비롯해 미국 전역에서 또 다시 노 킹스 시위가 열렸다. 트럼프 2기가 시작된 뒤 지난해 6월, 10월에 이어 3번째 노 킹스 시위로 미국 전역의 광장과 거리에 인파가 쏟아져나왔다. 과격한 이민단속과 물가 상승, 권위주의적 통치 등에 대한 기존 비판에 더해 이번엔 이란 전쟁 반대 목소리까지 더해져 열기가 높아졌다.

의사당 앞에서 만난 시위대는 “이란 전쟁을 멈춰라” “왕좌도 왕관도 왕도 없다” “트럼프를 탄핵하라” 등의 문구를 적은 손팻말을 들고 트럼프를 비판했다. 특히 트럼프의 정치 구호인 ‘MAGA’를 비틀어 “Monsters Are Governing America(괴물들이 미국을 다스린다)”라고 적은 현수막도 눈에 띄었다.
참가자들은 트럼프가 이란 전쟁을 시작한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했다. 메릴랜드주에서 온 레이(65)는 “나는 우리가 이란 전쟁에서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된 설명을 들어본 적이 없다. 행정부가 이 나라를 전쟁으로 이끌고자 한다면 그럴 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우리는 아직 그 이유를 듣지 못했다. 과연 그런 이유가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지만 설령 있다 해도 우리는 분명히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우스꽝스러운 트럼프 가면을 쓰고 집회에 참석한 스털링(18)은 “그들은 이란이 핵무기 개발까지 불과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이란은 미국을 확실하게 타격할 수 있는 (지리적) 위치에 있지도 않다”며 “이것은 침략이다. 중동에서 더 많은 영향력을 확보하고 더 많은 석유를 장악하려는 제국주의적 팽창”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그(트럼프)는 거짓말을 지어낸다. ‘힘을 통한 평화’도 그렇다. 세상 어디를 봐도 ‘내가 강하니까 내 말을 들어야 한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 건 통하지 않는다”고 했다.
트럼프가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 파일과 물가 상승 등 국내 정치 실정에 대한 관심을 분산시키기 위해 벌인 전쟁이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버지니아주에서 온 앤젤라(37)는 “엡스타인 파일에 있던 성범죄를 은폐하기 위한 전쟁”이라며 “내 생각엔 이건 주의를 다른 데로 분산시키기 위한 수단이다. 그들이 왜 거기(이란)로 가서 누군가를 폭격해야 했는지에 대해 명확한 이유를 제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에서 너무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고 반대하는 사람들도 너무 많으니까 사람들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뭔가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했다.

데버라(46) 역시 “트럼프는 자신이 하는 어떤 일에 대해서도 증거나 명확한 계획을 보여준 적이 없으며 이란 문제도 예외가 아니다”며 “그의 접근 방식은 중동 전역과 전 세계에 훨씬 더 큰 불확실성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 내에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자 그는 자신의 의지를 전 세계에 강요하기 시작했고 그가 아는 유일한 방법은 폭력”이라고 했다. 그는 또 이민세관단속국(ICE)에 대해 “그들은 트럼프의 비밀경찰이 되어가고 있다. 그들은 어떤 실질적인 법이나 책임 규율에도 얽매이지 않는 것 같다”며 “트럼프는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들, 자신을 비판하는 누구든 공격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워싱턴 DC는 이날 한낮 기온이 영상 10도가 되지 않는 쌀쌀한 날씨였다. 꽃샘추위 속에도 수많은 시민이 참석해 트럼프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분노와 풍자, 냉소 등 저마다의 개성을 드러내며 트럼프를 비판한 이들은 조금씩 흩어져 관광객 사이로 퍼져갔다. 이날 워싱턴기념탑 주변엔 관광객이, 의사당 주변으로는 시위대가 집결하면서 온종일 내내 내셔널몰 인근엔 인파가 넘쳐났다.

시위 주최 측은 이날 워싱턴 DC와 뉴욕, 샌프란시스코 등 50개 주에서 총 3300여건의 집회가 열려 800만명 이상이 참가했다고 밝혔다. 특히 이날 시위의 중심은 지난 1월 ICE의 총격으로 미국 시민 2명이 숨진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였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미니애폴리스 집회에서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의 상징인 배우 제인 폰더가 연설했고, 싱어송라이터 브루스 스프링스턴이 두 희생자 추모곡 ‘미니애폴리스의 거리’를 불렀다고 전했다.
백악관은 앞서 이번 집회에 대해 “이런 ‘트럼프 증오 치료 세션’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돈을 받고 보도하는 기자들 뿐”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트럼프에 대한 비판 여론은 점점 커지고 있다. 지난 24일 발표된 로이터 여론조사에서 트럼프의 지지율은 2기 취임 이후 최저치인 36%에 그쳤다.
워싱턴=글 ·사진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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