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 사재기 부른 '나프타 수급난'…중동 의존 77%에 제조업 '비상'
여수 NCC 공장 가동 중단·불가항력 선언…재고 2주 남아
종량제 봉투 품귀에 배달용기 사재기…민생 물가 타격

중동 전쟁 장기화로 인한 ‘산업의 쌀’ 나프타(납사) 수급 위기가 국내 실물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정부는 우리 경제를 전시 상황으로 규정하고 지난 27일 자정부터 나프타 수출을 전면 금지하는 초강수를 뒀다. 이는 국내 생산 물량을 내수로 강제 전환해 산업 ‘셧다운’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기 위한 긴급 처방이다.
29일 석유화학업계에 따르면 국내 석화 산업의 심장부인 여수국가산단은 이미 설비가 멈춰 서는 위기에 직면했다. LG화학이 연간 80만톤(t) 규모의 나프타 분해 설비(NCC) 2공장 가동을 중단한 데 이어 여천 NCC도 연간 14만톤 생산 규모의 프로필렌 전용 공장(OCU) 가동을 멈췄다.
앞서 국내 최대 에틸렌 생산기지인 여천 NCC는 고객사에 ‘공급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선언하기도 했다. 롯데케미칼 역시 내달 중순으로 예정된 설비 정기보수 일정을 앞당기며 비상 가동 체제에 돌입한 상태다.
업계는 이번 사태가 국내 산업의 근본적인 취약점을 드러냈다고 지적한다. 한국은 나프타 수요의 45%를 수입에 의존하며 그중 77%가 중동 지역에 편중돼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불거질 때마다 우리 제조업 공급망 전체가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로 업계가 보유한 나프타 재고는 약 2주 분량에 불과하다. 나프타는 에틸렌과 프로필렌을 거쳐 비닐, 플라스틱, 합성섬유 등으로 가공되는 핵심 원료다. 이 뿌리가 마르면 자동차 부품과 전자제품 소재, 건설 자재 등 전방 산업 전반으로 생산 차질이 번지게 된다. 석유화학 비중이 높은 한국 산업 특성상 나프타 부족은 제조업 밸류체인 전체의 마비를 의미한다.
산업계의 충격은 시민들의 일상으로 즉각 전이됐다. 비닐 원료인 폴리에틸렌(PE) 공급이 흔들리자 전국 마트와 편의점에서는 ‘종량제 봉투 사재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평균 3개월분의 재고가 있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현장에서는 1인당 구매 제한 안내문이 붙고 수요가 평시 대비 최대 5배까지 폭등하는 등 혼란이 거세다.
외식업계도 비상이다. 플라스틱 배달 용기 가격이 50% 이상 폭등할 조짐을 보이자 자영업자들 사이에서는 용기 확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페인트와 세제 등 석유화학 기반 생필품 가격 역시 ‘도미노 인상’ 압박을 받고 있다.

황성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정부가 정부가 러시아산 원유·납사 도입 가능성까지 검토하고 납사를 경제안보품목으로 임시 지정한 것도 원료 조달 리스크가 현실화됐기 때문”이라며 “정유업도 단기적으로 유가·제품가격 상승 수혜를 볼 수 있지만, 장기화될 경우 내수 우선 공급과 가격 규제로 인해 마진 스퀴즈(수익 압착)가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정부는 사태의 엄중함을 고려해 지난 27일 자정을 기해 ‘나프타 수출 제한 및 수급 안정을 위한 규정’을 고시하고 즉시 시행에 들어갔다. 향후 5개월간 국내 생산 나프타는 승인 없이는 수출이 전면 금지되고 정부는 이 물량을 핵심 산업과 보건 의료 분야에 최우선 공급할 방침이다.
변수는 국제 정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의 석유 인프라 타격이라는 강경책을 언급하면서도, 동시에 ‘선(先) 휴전 후(後) 협상’ 카드를 제시하며 출구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이는 한 달 간의 한시적 휴전을 통해 협상의 물꼬를 트려는 시도지만 결렬 시 지상군 파병 가능성까지 열려 있어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은 여전한 상태다.
김기명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국내 산업 전반에 미치는 부정적 파급영향을 고민해야 할 임계점에 다다랐다”면서 “다만 일단 휴전에 합의하면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풀릴 것으로 보며, 불확실성이 큰 상태지만 국내 산업계의 생산 차질이 주요 기업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을 훼손하는 수준까지 악화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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