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민간인 학살' 함병선, '바로 세운 진실' 내걸렸다

홍창빈 기자 2026. 3. 2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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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4.3유족회-평화재단, 역사 바로잡기 '두 번째' 조치
함병선 공적비·군경 공적비 이설...'4.3의 진실' 안내판 설치
오영훈 지사 "역사 왜곡·폄훼 시도, 도민과 함께 바로잡겠다”
함병선 비석 옆에 세워진 '바로 세운 진실' 안내판.  

제주4.3 당시 민간인 400여명을 집단 학살하고, 재판 없이 수 많은 민간인들을 처벌한 당시 제2연대장 함병선의 공적비 옆에 '바로 세운 진실'의 안내판이 함께 내걸렸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4・3평화재단, 제주4.3희생자유족회는 28일 제주4.3평화공원으로 함병선 장군비와 군경 공적비.충혼비를 이설하고, 제주4.3의 진실을 담은 안내판 '바로 세운 진실'을 세웠다.

지난해 12월 박진경 추도비 옆에 첫 번째 안내판을 설치한 데 이은 두 번째다.

이날 행사에는 오영훈 제주도지사와 김창범 4·3유족회장, 제주도의회 이상봉 제주도의회 의장, 박호형 행정자치위원장, 하성용 4·3특별위원장, 4·3평화재단 임문철 이사장 등 관계자 50여 명이 참석했다.
28일 열린 4.3역사 왜곡 비석 이설.안내판 설치 행사.
4.3역사 왜곡 비석 이설.안내판 설치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오영훈 지사.

4·3영령에 대한 묵념과 경과보고에 이어 김수열 시인이 4·3의 비극을 어미 잃은 병아리에 빗댄 시 '죽은 병아리를 위하여'를 낭송했다.

함병선 공적비는 1949년 6월 '제주도치안수습대책위원회 남제주군지회' 명의로 세워져 오등동 특수전사령부 훈련장 내에 있었다.

그러나 정부가 2003년 공식 확인한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는 함병선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는 제2연대장으로 부임한 뒤 1949년 1월 조천면 북촌리 주민 400명가량의 집단 학살을 주도했고, 두 차례 군법회의 최고지휘관으로서 재판 절차 없이 수많은 민간인을 처벌했다.

제주도는 이 사실들을 공적비 바로 옆 안내판에 적시했다.

군경 공적비·충혼비는 제주지방기상청 부지에 방치돼 있던 것을 함께 이설했다.

1949년 8월 세워진 공적비는 제2연대 장병과 경찰대원, 대한청년단, 민보단의 활동 성과를 기리는 내용이며, 이듬해 건립된 충혼비는 군경과 우익단체 희생자 860여 명을 추모하는 비석이다.

제주도는 4·3 역사의 진실을 바로 세우고자 '4·3역사 왜곡 대응 자문단' 논의와 관계기관 협의를 거쳐 제주4·3평화공원으로 이설했다.

김창범 4·3희생자유족회장은 "함병선 공적비를 4·3평화공원으로 옮긴 것은 그를 기리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라, 그의 죄상을 역사의 심판대 위에 올려 살아있는 '죄의 기록'으로서 후대에 준엄한 교훈을 남기기 위한 것"이라며 "다시는 이 땅에 4·3과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이 비석을 반면교사의 이정표로 삼겠다"고 말했다.

임문철 4·3평화재단 이사장은"정부 공식 보고서가 나온 지 23년이 지났지만 가해자의 책임을 철저히 묻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지적돼 왔다"며 "누가 가해자인지 역사 앞에 책임을 지울 수 있는 객관적 사료와 자료가 도민과 전 세계에 알려질 수 있도록 철저한 진상 규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오영훈 지사는 "김수열 시인의 시에 나오는 마을이 나의 고향으로, 그해 겨울 조부와 증조부를 잃었다"며 "이는 내 가족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희생자 한 분 한 분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어 "오늘은 제주4·3의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폄훼하려는 시도에 도민과 함께 바로잡기 위한 두 번째 자리"라며 "더 이상 희생자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유족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하며, 4·3의 가치를 훼손하려는 시도에 단호히 대응하고 진실을 알려나가는 노력을 멈추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제주도는 자문단 및 관계기관 협의를 거쳐 경찰지서 옛터 표지석 등 4·3 역사 왜곡 논란 시설물에 대한 안내판 설치 또는 이설을 순차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오는 4월 3일에는 제78주년 제주4·3 추념식이 봉행된다. <헤드라인제주>
28일 열린 4.3역사 왜곡 비석 이설.안내판 설치 행사.
4.3역사 왜곡 비석 이설.안내판 설치 행사.

다음은 함병선과 제주4・3(Ham Byung-sun and Jeju4・3) 안내판에 담긴 내용(전문).

제주4・3 당시 1948년 11월부터 제9연대에 의한 강경진압 초토화작전으로 중산간마을 95% 이상이 불타 없어졌고 많은 인명이 희생됐다. 초토화작전은 생활의 터전을 잃은 제주도 주민 2만 명가량을 산으로 내모는 결과를 빚었다. 그러나 미군정은 이를 `성공한 작전'으로 높이 평가했다.

1948년 12월 제주 주둔군이 제9연대에서 제2연대로 교체됐다. 제2연대는 여순사건을 진압한 실전 경험이 있는 부대로서, 제3대대는 서청 단원들로 구성됐다. 제2연대장 함병선(咸炳善)은 일제 지원병 출신으로, 일본군 시절 전투 경력을 인정받아 제주 진압 임무를 맡았다.

제2연대도 공개적인 재판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즉결처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함병선은 "미국의 원조를 받기 위해서는 악당을 가혹한 방법으로 탄압하여 제주사건을 발근색원하라"는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를 충실하게 수행했다. 미군 보고서는 제2연대의 작전에 대해 "마을 사람들을 재판의 혜택도 없이 즉석에서 대규모로 처형했다"고 기록했다.

1949년 1월 4일의 육・해・공 연합작전, 1월 12일의 `의귀리 전투', 2월 4일의 제주읍 봉개지구 작전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집단희생을 당했다. 대표적인 주민 집단총살 사건인 `북촌사건'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한 마을 주민 400명가량이 제2연대 군인들에 의해 총살당한 사건이다. 또한 함병선은 1948년 12월, 1949년 7월의 두 차례 군법회의 최고지휘관으로서, 수많은 주민들을 불법적으로 처벌했다.

이러한 사실들은 2003년 정부의 공식 보고서를 통해 이미 확인된 바 있다. 따라서 함병선이 연대장으로 재임 중이던 1949년 6월 1일 `제주도치안수습대책위원회 남제주군지회' 이름으로 세워진 공적비 내용에 대해 올바른 사실을 적어두고자 안내판을 세운다. 제주시 오등동 특수전사령부 훈련장 내에 있던 공적비를 `4・3역사 왜곡 대응 자문단'의 논의와 관계기관의 협의를 거쳐서 이곳 제주4・3평화공원으로 옮겼음을 밝혀둔다.

2026년  3월 28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4・3평화재단, 제주4・3희생자유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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