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의료공백으로 아들 잃은 엄마가 매주 5년 동안 한 일
[신나리 기자]
|
|
| ▲ 이지연씨가 아들 유엽이와 행복했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만든 작품들. |
| ⓒ 신나리 |
2020년 3월 18일 아들을 잃은 엄마는 그해 여름부터 흙을 만지기 시작했다. 공방에서 우연히 아기 예수를 품은 성모자상을 보고 나서다. 그의 아들 정유엽군. 당시 열일곱 살의 유엽군은 코로나19 감염으로 강력히 '의심'된 채 14번의 검사를 받으며 격리조치됐다. 최종 결과인 음성 판정을 받기 전까지 병원을 전전하던 유엽군은 결국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코로나19 환자로 의심받았기에 엄마인 이지연씨를 비롯해 가족들은 유엽군이 떠나기 전까지 마음껏 곁에 있어 주거나 안아줄 수 없었다. 병원 주차장에서 그리고 집에서 유엽군의 상태를 알리는 전화 한 통만 기다리고 있었다. 가족 누구도 아들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아들을 향한 그리움, 의료 공백을 향한 원망, 남겨진 가족들의 서러움, 언제 어떤 종류의 팬데믹이 또 시작될지 모르지만 제2의 유엽이는 없어야 한다는 다짐을 엄마는 흙을 어루만지며 풀었다. 동시에 유엽군의 죽음을 둘러싼 진상규명을 함께 해준 사람들을 떠올렸다.
김밥을 만들고 썰며 팔던 그는 2020년 여름부터 일주일에 한 번은 꼭 공방을 찾았다. 1년여 얼굴없는 모자상을 만들다 조금씩 눈·코·입을 새기기 시작했다. 부서지고 깨어진 것들을 그대로 버린 적은 없다. 어떻게든 수정해가며 부서진 마음을 메우듯 부서진 조각들을 이어 붙였다.
그렇게 5년여 만든 작품들을 지난 20일부터 오는 29일까지 서울 명동성당 내 갤러리에서 전시한다. '엄마의 기도가 하늘에 닿으면-슬픔으로 빚은 위로'라는 이름을 달았다. 이 전시회에는 50여 점의 모자상이 있다. 지난 22일 갤러리에서 만난 유엽군의 엄마 이지연씨는 "이제야 우리 아이를 마음껏 안아주지 못해 생긴 마음의 한이 조금은 풀리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
|
| ▲ 이지연씨가 작품 '생명의 온기'를 설명하고 있다. |
| ⓒ 신나리 |
처음엔 속이 막 상했는데, 어쩌겠어요. 고민하다 그 사이를 살살 메웠어요. 엄마랑 아이가 떨어지지 않게 더 단단히 붙이고 색도 칠했어요. 그래서 사진으로 남긴 금이 간 본래 작품에 '상처와 회복'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완성품은 '생명의 온기'라고 붙였어요. 그렇게 딱 이 작품을 완성하고 나니까 '깨질 테면 깨져라, 깨져도 나는 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위로받고 용기도 생기고요."
이지연씨가 푸른색 옷을 입은 엄마를 그린 '생명의 온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가마에서 나온 작품이 금이 간 덕분에 아이는 엄마 품에 더 단단하게 붙게 됐다. 언제든 품에 안을 수 있었던 아들은 곁을 떠났지만, 이 작품에서만큼은 엄마와 아이는 꼭 붙어있다.
|
|
| ▲ 이지연씨가 만든 '엄마 엄마야'라는 이름의 모자상. 그는 전시를 마치고 대구의 한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에 이 작품을 기부할 예정이다. |
| ⓒ 신나리 |
"요즘에는 젊은 사람들도 정신과를 많이 찾는다고 들었어요. 각자 사정이 있고 이유도 다 다르겠죠. 살면서 연약해진 순간도 있을거 고요. 근데 제 작품들이 다 안아주는 거잖아요. 그래서 병원에 놓이면 병원을 찾는 환자, 보호자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싶어요. 병원에서 삭막함이 아니라 다 괜찮다고 안아주는 엄마의 품을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나의 껌딱지', '행복했던 그날들', 누워서 함께 놀자' 등은 작품의 이름처럼 아이가 엄마의 등에 엉덩이에 팔에 꼭 붙어있다. 그는 "3~4살 아이들한테는 엄마가 전부니까, 엄마에게 꼭 붙어있다. 엄마는 큰 나무이자 그늘"이라고 부연했다. 모래 알갱이를 섞어 튼튼하고 형태 유지에 좋은 조형토를 섞어 아이를 지키는 엄마의 단단함을 표현했다.
작품 속 아이의 표정은 모두 해맑다. 눈이 보이지 않게 활짝 웃고 있다. 엄마의 얼굴도 모두 미소를 띤다. 모두 같은 얼굴인가 싶었지만, 실은 다 다른 얼굴이다. 아들을 잃고 어려워하는 시간 동안 그를 위해 기도해 주고, 밥을 챙겨주고,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던 사람들을 어떤 작품에서는 엄마의 표정으로 어떤 작품에서는 아이의 얼굴로 담았다.
의료 공공성 확대, 몇 년간 기도
"나는 미처 웃지 못하는데, 내게 미소를 보내준 사람들이 있어요. 저는 그게 그렇게 고맙더라고요. 누군가 하루아침에 아들을 잃었는데 신이 원망스럽지 않느냐고 묻더라고요. 그런데 저는요, 정말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물론 억울하죠. 내 새끼 아깝고 억울한데 그건 정말 이 시스템의 문제였잖아요. 유엽이 일이 터지자 주위에서 얼마나 많이 함께 기도해주고, 또 대책위 만들어서 활동해주고, 그랬는데요. 제가 너무너무 도움을 많이 받았죠. 제가 늘 '세상은 좋은 사람들이 훨씬 많다'고 말해요. 이 작품들이 다 편안한 미소를 띠고 있는 것도 모두 그분들에게 도움받은 덕분이에요."
이지연씨가 언급한 사람들은 전국 곳곳에 있다. 유엽군의 아버지 정승재씨는 유엽군 사망 1주년에 '공공의료' 확대를 요구하며 도보행진(총 375.4㎞)을 했다. 24일간 이어진 여정에서 사람들은 정승재씨와 함께 걸으며 힘을 보탰다.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와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정유엽희망대책위원회도 꾸려졌다. 유가족과 대책위는 2020년부터 정부와 병원을 상대로 의료공백의 원인과 책임 규명,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요구해 왔으나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유엽군의 가족은 물론 함께하는 사람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2023년 1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의 지원받아 정부와 지자체, 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은 3년 넘게 지연되고 있지만, 대책위는 이 소송을 '모두가 건강하게 살 권리 침해 국가배상 청구 소송'이라고 정의하며, 우리 사회에서 안타까운 죽음의 재발을 막아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정부와 병원, 우리 사회 전체가 코로나19의 교훈을 새길 수 있게 판결하는 것이 사법부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이지연씨는 아직 아파도 쉽게 병원에 가지 못한다. 수납을 재촉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삭막한 공간이라 느껴져서다. 하지만 "의사를 대표해서 사과한다"고 머리를 숙인 의사도 만났고, 민간 병원이지만 공공성을 생각하며 취약계층을 위한 진료를 이어가는 병원 이야기도 들었다. 직장암 투병 이후 폐암으로 전이돼 곧 항암을 시작하는 정승재씨 담당의의 살뜰함 덕분에 의사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바뀌기도 했다.
아들의 6주기가 있는 3월, 엄마는 미움보다 희망을 품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위로와 힘을 전해준 이들을 떠올렸다. 그중에도 아이들을 앞세운 엄마들이 있었다. 유엽이의 추모제에 기자회견에 찾아와주고 손을 잡아준 엄마들.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이태원 참사 유가족,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하청 노동자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다. 경북 경산에 사는 그가 서울 명동에서 전시회를 여는 것도 모두 이들 때문이다.
"사실 우리 유엽이 얼굴을 만들고 나서 다 됐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계속 작품을 만든 건요. 사실 다른 참사 유가족들 때문이에요. 제가 유엽이 보내고 청와대 앞에 가서 기자회견 하러 갔는데, 거기에 세월호 엄마들이 있었거든요. '시간이 지나면 좀 잊혀지냐' 물었더니 '시간이 갈수록 더 힘들다'고 하셨어요. 그렇게 힘든데도 우리 유엽이의 일도 챙기고 또 이태원 참사도 챙기고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힘을 보태잖아요.
하루아침에 자식을 잃은 부모들 마음은 똑같을 거예요. 내 새끼 한 번이라도 더 안아주고 싶어요. 그래서 저도 모자상을 빚기 시작했고요. 제가 전공자도 아니고 작가도 아니고 작품이라고 하기에도 부끄럽지만, 다만 우리 어머니들이 우리 새끼들 한 번 안아주는 거 같다고 느끼고 가셨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경남에서 전시하면 이분들이 오기 힘들잖아요.
서울 사는 친구에게 물었더니 여기(명동성당 내 갤러리)는 지하철역에서도 가깝고 오기 편한 곳이라고 해서 대관했죠. 어제도 세월호·이태원 참사 어머니들하고 우리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님이 다녀가셨어요. 다행히 좋았다고 하시고, 고맙다고 하신 분도 계셨고요. 저는 그걸로 충분해요."
갤러리 한쪽에 세워진 입간판에 '엄마의 기도가 하늘에 닿으면'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이지연씨는 참사를 겪은 아이를 잃은 '엄마들의 기도'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몇 년 동안 내 기도는 의료 공공성 확대였다. 지역의 소외된 사람들이 찾을 병원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엄마는 소외된 지역과 그 곳에 사는 아이들을 그리고 사람들을 위해 매일 기도를 이어간다. 기도하듯 두 손을 모은 그가 "적어도 앞으로는 유엽이처럼 의료 공백 사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서 의료 대응의 실패로 사람이 죽는 일은 없어야 한다"면서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96년 만에 생산 종료" 싱가포르 국민 맥주 덮친 파도
- 10건 중 4건은 거래 취소...강남 아파트 신고가 파동의 전말
- '뉴이재명', 분열이 아니라 확장이 돼야 한다
- "딱 맞는 사람 없는데" 왜 사랑에 빠지고 싶어 안달일까
- 들판 한가운데 직사각형 건축물, 세모난 문을 열면 딴 세상
- 경기도교육감 민주·진보 단일화 경선, 여론조사 45%-선거인단 55%
- 대구 동구청장 출마 민주당 예비후보, 선거 유세 중 폭행 당해
- 10년 노력 끝에 '반헌법행위자열전' 나온다... 대통령·판검사 81명 수록
- 25, 15, 3, 0.... 남성 정치인들은 이 충격적인 수치를 보라
- 주요 군 지휘관 만난 이 대통령 "전작권 회복, 조속히 추진될 것"


